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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누가복음

말씀이 감취었으므로(눅18:31-43)

by 똑똑이채널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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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장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할 것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인 31절의 말씀이 시작이 되는데, 본문의 내용은 다시금 예수님께로 초점이 모아지는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에게 당신이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과 3일 만에 다시금 살아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와 같은 수난에 대한 예고는 이미 누가복음 9장 22절, 9장 44절에서 각각 밝혀주셨습니다. 오늘 본문까지 합한다면 세 번째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본문 31절을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내용이죠. 예수님께서 장차 당하실 수난도 구약에 이미 기록돼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성취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씀은 이후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누가복음 24장 44-47절까지에도 나와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실 것과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면 이 땅에 다시금 주님의 재림이 임할 것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과연 제자들은 주님의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모두 믿었습니까?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따르던 제자들은 우리 주님을 그런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 메시아로 믿고 따랐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와 사망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인데도, 제자들은 전혀 그런 관점으로 주님을 바라본 게 아니었습니다.

그와 같은 제자들의 마음을 우리 주님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34절에서 이렇게 증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제자들이 주님의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주님의 그 말씀이 그들의 심령에 감추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주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도, 주님의 말씀에 깨닫고자 하는 것도,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도, 주님께서 열어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우리의 믿음도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믿음을 불어넣어주셔야 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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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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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세 번이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 했다고 해서,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며 살아간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심령 안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희롱, 능욕, 침 뱉음, 채찍질, 그리고 죽음까지도 예수님을 위해서는 기꺼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죠. 왜죠? 그의 심령이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의 심령이 주님의 은혜 안에 거했기에, 그들의 자기 집을 주님을 위해 내어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주님께 기억되는 삶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도 처음에는 주님께서 죽은 자기 오라버니를 살려내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했지만, 나중에 주님께서 살려내실 것이라고 말씀할 때 뭐라고 고백합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7)하고 고백했던 것이죠. 그 고백이야말로 주님께서 그녀의 심령을 열어주셨을 때, 그녀에게 믿음을 불어넣어주셨을 때, 주님께 향한 온전한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까? 그 고백은 베드로만 하는 줄 알았지만, 마르다도 주님을 향해 그런 고백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모두가 인간의 육신적인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고백이요,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의 심령을 열어주셨을 때 고백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35-43절까지는 소경에 관한 말씀입니다. 물론 이것은 대조를 이루는 말씀이죠. 예수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을 따랐지만 정작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대조되는 참 믿음을 소유한 사람의 이야기 말입니다. 누가 영적으로 소경인지 우회적으로 깨닫게 해 주는 말씀이죠.

본문에 나오는 소경은 아무런 희망이 없이 길가에서 구걸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던 사람이죠. 이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귀가 어느 날 쫑긋 세워지게 됩니다. 그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37절의 말씀처럼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앞을 볼 수 없었기에 절망가운데 살아갔는데, 지금 자기 앞에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그도 평소 듣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분이 귀신도 좇아내고 중풍병자와 문둥병자도 고쳐내고,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질병도 고쳐내고, 과부의 죽은 외아들도 살려내셨다는 주님의 그 능력을 말입니다. 그러니 소경인 그 사람에게도 주님께서 낫게 해 주실 수 있는 소망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앞을 보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그 길목을 지나가실 때 얼마나 더 간절한 소리로 주님을 불렀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죠.

마침내 주님께서 그 사람과 마주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지금 주님 앞에 있는 사람에게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으십니다. 그러자 그는 주님께 집중한 채, 그의 간절한 소원이 ‘보는 것’이라고, 그러니 제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요청하죠. 그 때 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그 사람을 고쳐 주시고, 그가 구원을 얻도록 해 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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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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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은 기도와 관계된 내용들이 많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에게 자신의 문제를 강청하는 과부의 기도도, 또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세리의 기도도, 그리고 본문에 등장한 소경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절망스런 문제를 오직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간절히 간구하는 모습이 마치 기도하는 모습과 같죠.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해 주시는 아바 아버지요, 나의 모든 문제를 기억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그와 같은 은혜의 역사, 주님의 은총의 역사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않는 게 중요하죠. 주님의 능력을 우리의 지식이나 생각으로 제한하지 않고, 오직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 말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셔서 우리에게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 사람의 회복과 구원을 통해 본문 43절의 말씀처럼 주변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의 역사가 임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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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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