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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누가복음 1-8장까지를 통해 예수님의 행하신 갈릴리 사역을 살펴봤고, 누가복음 9장에서부터 19장까지를 통해 예수님의 예루살렘 선교여행의 모습 속에 있었던 일을 살펴봤습니다. 그 중에 어제 읽은 누가복음 19장의 후반부에는 드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신 장면을 살펴봤고, 성전을 정화하신 장면도 살펴봤죠.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신 후에, 성전 안에서 사고파는 사람들을 모두 내쫓으셨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질타하셨습니다,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21:13) 하시면서 말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그 말씀에 그 누구도 저항할 수가 없었죠.
이것은 요한복음 7장에 나오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맞이해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유대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른바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신 것이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는 말씀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루살렘의 대세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모략을 꾸민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서 그가 신성모독하는 죄를 범하거든 당장 체포해 오라고, 아랫 사람들을 보냈던 것이죠.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그 가르침들을 모두 듣고 난 뒤에 그 상전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는 보고가 무엇이었습니까? 요한복음 7장 45절 이하에 이렇게 보고하죠.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하나님의 신성한 권위가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붙잡아 올 수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속된 가르침과는 달리, 진정으로 신성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그들이 맛보았던 것이죠.
그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도 마찬가지죠. 예수님께서, 당시의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에 비해 어쩌면 새파랗게 젊은 그 예수님께서 성전의 장사치들을 다 내좇으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어찌하여 너희들이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것이냐’하고 호통을 치는데도, 누구 하나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신적인 권위로 호통치고 있었으니, 그 말씀이 진리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누구 하나 나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 본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어떻겠습니까? 전에도 아랫 사람들을 시켜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들먹여서 체포해 오라고 했는데, 그때도 못했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야말로 성전의 장사치들, 자신들의 이권과 결탁돼 있는 그 장사치들을 아주 당당하게 호통을 치면서 내 쫓고 있으니, 그것은 곧 자신들을 향한 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여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상태로 예수님을 내버려뒀다가는, 자신들의 입지가 더욱 크게 흔들리게 되고, 급기야 자신들이 성전에서 그리고 유대 사회에서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나서서 예수님께 나온 것이죠.
본문 2절입니다.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자신들의 크나큰 영적 권세가 무너진다고 생각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 한통속이 되어 주님을 공략한 것입니다. 도대체 네가 호통치고 있는데, 누가 너에게 그런 권한을 준 것인지,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질문한 그들의 의도가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셨다”하고 답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겠습니까? 당장에라도 “하나님께서 네게 권위를 준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신성모독죄를 들먹여서 죽여버릴 생각이었겠죠. 그러나 만약 ”사람이 주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치적으로 로마의 황제가 예수님에게 그런 권위를 준 일이 없는데, 네가 그렇게 한 것이냐 하면서, 반정치적이라고 몰아서 죽여버릴 생각이었겠죠. 그렇게 벼르고 벼른 질문인데, 과연 예수님께서 그들의 의도를 모르셨겠습니까?
아니죠. 그들의 완악한 속 마음을 예수님께서 이미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그들에게 대답지 않으시려고 하시죠. 다만 한 가지, 저들의 질문이 진실인가를 물으십니다.
본문 3절에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이를테면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알려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4절에 질문을 하죠.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하고 말입니다.
그때 어떻게 저들이 대답합니까? 그들 역시 아무런 대답을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5-6절의 말씀처럼, 만약 그들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하고 대답한다면, 예수님께서 분명코 “그럼 왜 믿지 않았느냐”하고 말할 것 같고, 또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한다면 요한의 권위를 뭉개는 것이기에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돌로 칠 게 뻔하기에, 그들도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짜 맞춘 말이 무엇입니까? 7절에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그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물어오는 그들을 향해서 “너희에게 나도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씀하시죠.
그러면서 이제 비유로 주님의 권위에 대해 일러주십니다. 직설적인 방법이 아닌 간접적인 방법인데, 포도원 농부의 이야기(마21:33-46,막12:1-12)가 그것입니다.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놓고 맡겨주면서 농부들에게 잘 관리하라고 하고 타국에 갔습니다. 오래 지나서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종들을 3번씩이나 보냈죠. 그런데 그때마다 농부들은 그 종들을 잡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후에는 그 주인이 자기 아들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저희가 내 아들은 존대하지 않겠냐’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이가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하고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비유를 들면서 주님께서 거기에 있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질문을 던지죠. 본문 15절 하반절에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말이죠. 저와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아니 그 자리에 있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다들 똑같이 대답하겠죠. 그 악한 종들을 잡아 죽이고 새로운 종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 속내를 알고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16절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어떻게 말합니까? 16절 하반절에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이른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하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본문 17-18절 말씀을 통해 자신이 바로 그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라는 것, 주님 자신이 건축자들의 버린 돌 중에 모퉁이 돌과 같다고, 직접적으로 밝히죠. 그러자 그 비유가 자신들을 향해 하신 것임을 안 그들이 예수님을 잡고자 하지만,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잡지 못하죠.
아무리 하나님과 성전과 관계된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욕심에 빠져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주님의 생명과 진리를 못 알아본다는 것, 오히려 자기 욕심으로 주님의 진리와 생명을 짓누르려 한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혹여라도 내가 그리고 있는 그 욕심의 허상으로 인해 주님의 진리와 생명을 짓누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참된 주님의 진리와 생명을 깨닫는 은혜를 부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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