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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살펴 본 주님의 세 가지 비유가 있었죠.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 비유, 그것은 하나님은 분명코 불의한 재판관과 대조되시는 분으로서, 당신의 자녀들이 겪는 작은 신음에도 응답해주시는 분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비유였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스스로 죄인이라고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세리의 기도였죠.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기도는 세리의 기도요, 그것이 곧 우리의 기도여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세 번째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들처럼 계산적이지 않는 순전한 믿음을 지닌 자들의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린 아이들처럼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이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라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18-30절 말씀은 어제 읽은 1-17절에 연이어서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추구해야 할 영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18-23절에 한 부자 관리와 예수님의 대화 장면이고, 둘째는 24-27절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듣는 자들의 의아한 반응,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28-30절 말씀으로서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묻는 상급이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상급이 무엇이냐는 것 말이죠
첫째로,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 관리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부르면서 물었습니다. 18절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왜 부자 관리는 예수님을 향해 “선한 선생님이여”하고 불렀던 것일까요? 자신에 대해 좋은 대답을 기대 했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히 답하셨습니다. 19절에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그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기대하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그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대답하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자관리의 의도를 아셨기 때문이죠. 자신의 선함을, 자신의 의를 인정받고자했던 그 의도를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선하시다고 말한 것이었죠. 이에 예수님은 십계명 중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십계명의 순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왜 출애굽기를 비롯해 구약의 율법에 나오는 십계명의 순서와 오늘 본문의 십계명 순서가 다른 것입니까? 이유인 즉 예수님께서 부자 관리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돈”이죠. 그가 “소유”한 재산 말이죠. 위에 언급된 5계명의 순서는 바로 “물질”을 삶의 우선순위로 둘 경우 넘어지기 쉬운 유혹들의 순서입니다. 그러자 어떻습니까? 그 부자관리의 대답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자기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있게 대답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의 말을 들은 우리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이제는 정말로 말씀하고자 하신 말씀을 전하십니다. 22절에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어떻습니까? 그 부자 관리의 급소를 찌른 것 아닙니까? 칭찬을 받기 위해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부르며 찾아갔는데,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는 비결이라고 말씀하셔서, 그것들은 어려서부터 지켰다고 자기 자랑을 하고 있으니, 그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으니, 완전히 허를 찌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부자 관리가 어떻게 합니까? 본문 23절입니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무엇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 물질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삶을 결단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부분은 청중들의 반응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무슨 말씀입니까?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그 부자 관리를 두고 하신 말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26절에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것은 부자 관리를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곁의 청중들의 주님께 질문한 거죠.
과연 그들이 왜 그런 질문을 한 것이었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으로 부자가 되었다면, 당연히 영생을 얻을 것이라 생각한 것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부자 관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누가 과연 들어 갈 수 있겠냐는, 그런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관점들, 그 부자 관리도 그렇고 그 청중들도 그렇고,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의 관점이 어떤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당시의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조건은 세상적이고 외적인 것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는지, 또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인 복을 받아 편안하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그 기준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속 중심을 보시는 분 아닙니까?. 무엇을 얼마만큼 했는지, 또 무엇을 가졌는지, 바로 그 기준이 아니라 어떤 성품으로 살아가는가를 보시는 분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 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구원은 무엇을 했는가? 무엇을 가졌는가? 그것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지 인간의 의나 행위에 기반을 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곧 구원의 요건이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세 번째 내용은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 예수님께 묻는 모습입니다. 부자관리와 예수님의 대화가 끝나고, 청중과 예수님의 대화가 끝나고, 드디어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 묻는 장면이죠. 28절입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이 질문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은 부자관리가 실패한 시험에 패스 한 거지요?” “있는 것을 다 팔고 따르라는 테스트 합격한 거지요.” 하는 뜻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질이나 소유가 아닌 관계적 차원에서 답을 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부자관리가 소유한 돈과 물질로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과 나누지 못한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신 말씀이죠.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 자신과 자기 가족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을 품고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30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무슨 뜻입니까? 영생은 죽어 저 세상에서 누리는 소유의 복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백성들과 더불어 사는 삶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것이요, 그런 자가 저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속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 그렇기에 우리가 무엇을 소유했는가에 관심을 두시기보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그의 백성들과 함께 가족처럼 더불어서 살아가는가, 그것을 보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 삶에 얼마나 사랑하며 인내하며 헌신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나의 작은 떡이라도 나누고 있는지 말입니다. 오늘도 그런 은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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