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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오십견에 걸린 집사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그 분에게 뭐라고 했겠습니까? 그분의 담당의사는 첫째도 자세, 둘째도 자세, 셋째도 자세라고 권면했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집사님에게 평소 일을 할때나 책을 볼 때, 몸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점검하면서 살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자세가 바르지 않는 삶이 일상이 되면 몸에 금방 이상이 온다는 사실이죠.
몸의 자세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바른 마음의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야 할지,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작은 자 중의 하나를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바른 마음의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곧 지극히 작은 한 영혼에 대해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는 마음이라고 말입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작은 자 하나를 실족시킨다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라는 말씀이죠. 물론 이것은 과장법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아니죠. 물론 실제로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연자맷돌은 무게가 수백킬로그램이 나가기 때문에 나귀가 원형궤도를 따라 돌려야만 돌아갈 수 있는 연자맷돌이죠. 실제로 제가 그 연자맷돌을 봤을 때 남자 장정 10명도 못 들 정도로 엄청나게 큰 맷돌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것을 매고서 바다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그만큼 작은 영혼이라도 실족시킨다면 얼마나 큰 심판을 부를 것인지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무시하고 죄짓게 하고 고통을 주는 자는 주님의 심판 아래 거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통해,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일은 없는지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죠.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미국 청교도의 유명한 부흥강사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설교에 회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담배 골초였죠. 만약 그것을 부흥회 때 참석한 새신자가 은혜를 받고, 화장실에 갔는데, 스펄전 목사님이 그 화장실에서 담배를 뽀끔뽀끔 피고 있는 모습을 봤다면 어떻겠습니까? 비록 자신은 피고 있을지라도, 어떻게 부흥강사님이 그럴 수 있냐면서, 실족하지 않겠습니까?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고린도전서 8장 7절 이하에 나오죠.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음식 먹는 것 때문에 다들 시험이 든다는 것입니다. 왜죠? 먼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하면서, 우상 앞에 드린 시장 음식을 마음대로 사 먹는 그 모습 앞에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8:13절) 그만큼 먼저 믿는 자들, 성숙한 신앙인들이 연약한 자들의 믿음 앞에서 실족시키는 일이 없도록 늘 살피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형제에 대해 경고하고 그가 돌이켜 회개하면 용서하도록 가르치십니다. 본문 3절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이와 동일한 말씀이 마태복음 18장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본문은 ‘경고’라고 하는 단어를 ‘권고’라 바꿔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권고’하셨다는 뜻이죠.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경고를 할 때에는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죠. 하지만 권고라는 것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롬12:1) 하는 말씀처럼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차원이 권고요 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말을 하십니다. 4절 말씀에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당시에 교육받은 종교적인 유대 랍비들은 세 번까지는 용서하라는 가르침을 받아서 실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하루에 일곱 번이라니요?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서는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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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심성이 연약한 자라 두 번 까지는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 번 네 번 정도 지나치면 머리가 핑 돌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례하게 주차해서 피해를 주는 것도 못 참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도 참지 못하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어떻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은 정말로 예수님과 같은 분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은 정말로 성자와 같은 사람,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싶죠.
그 까닭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요청하는 게 있죠. 본문 5절 말씀처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저 자신처럼, 예수님의 큰 능력과 믿음 안에 있을 때에만 그렇게 용서할 수 있지 않겠냐, 하고 물어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대답을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용서는 믿음의 크기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용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만 있으면,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비유를 읽으면 마치 마태복음 18장에 등장하는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한 달란트가 한 사람이 일평생 쓰지도 먹지도 않고 모아도 절대 모을 수 없는 가치의 돈이죠. 일만 달란트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억만금의 액수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억만금을 탕감받고 용서받은 사람이 누구를 만납니까? 길을 가다가 백 데나리온 빌린 사람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것이었죠. 왜죠? 자신에게 만 달란트 빚을 갚지 않는다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그 소식을 들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 준 임금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주 괴씸하게 생각하겠죠. 나는 그에게 일만 달란트 빚을 갚아줬는데, 그는 자신에게 겨우 백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의 멱살을 잡고 난리야?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마태복음 18장 33절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말씀하죠. 바로 그런 마음으로 용서하면서 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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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도 바로 그와 같은 말씀입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은혜 앞에 서면, 어찌 내가 주님의 그 은혜로 용서하지 못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나의 본성, 나의 자아, 나의 기준으로는 쉽지 않지만 주님의 은혜 앞에 바르게 서면, 그 믿음과 사랑 앞에 서면, 충분히 용서하고 품을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님의 은혜를 통해 누군가 용서하려 할 때, 생색을 내거나 선심 쓰듯 하지 말아야 함을 본문 10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감싼 것을 생색내거나 자랑하듯이 떠벌리고 다니지 말라는 것이죠. 그것이 너의 의가 될 수 있고, 그것의 너의 율법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저 무익한 종이 주님의 은혜를 따라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하는 믿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어쩌면 그런 부분이 하늘의 상급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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