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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들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4-7절), 두 번째 비유는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비유(8-10절), 그리고 세 번째 비유는 탕자의 비유로 유명한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비유(11-32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잃어버렸다가 되찾는다는 비유들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 시대에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주류를 형성하면서 정통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생각, 자신들의 본성, 자신들의 판단, 자신들의 의로움, 곧 자기 자아가 얼마나 어긋났는지를 일깨워주기 위함이죠.
본문 1-2절입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루살렘의 선교여행 중에 있는 예수님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거기에는 세리와 죄인들도 함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죄인이라고 소개된 사람들은 당시의 종교적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 혹은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키죠. 일반적으로 세리와 창녀와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용어죠. 보통 이 사람들을 “땅의 사람들”이라 불렀으며 불결한 사람들로 취급했습니다.
반면에 그곳에 누가 함께 하고 있었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있었죠. ‘바리새인”이라는 단어는 ‘구별되는 사람’, ‘분리된 자’라는 말입니다. 이른바 세리나 창녀나 이방인들과 함께 섞일 수 없는 구별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기 행위를 강조하며 그렇지 못한 이들은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필사하던 서기관들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세리나 창녀나 이방인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고결하고 깨끗한 사람들, 곧 종교적인 자기 열심과 자기 의로움을 갖췄다고 자부하던 자들이 서기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평가, 곧 우리 주님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마음은 스스로 죄인이라는 세리나 창녀나 이방인들을 더 긍휼히 여겼습니까? 아니면 스스로 의롭다고 자기 자아를 강조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더 품으셨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분명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랑 곧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서는 무지한 자였습니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긍휼을 보여주시고자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조차 그들은 전혀 무지했던 자들이었죠. 그러니 자신들이 의롭다고 여기는 그들의 정통만 최고로 간주할 뿐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불의로 간주하던 자들 아닙니까? 그래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들 곁에 있는 세리나 창녀나 이방인들을 부정했고, 그들을 옹호하고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조차도 철저하게 거부하고 원수처럼 여겼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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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 우리 자신들은 그 두 종류의 사람들 중에 어느 편에 속합니까? 세리와 죄인들처럼 자기 부족함과 자기 연약함 곧 목마른 자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나의 의로움 나의 자아의 깨끗함만을 내세우면서 세리와 죄인들을 정죄하고, 예수님의 말씀조차 거부하는 자들입니까?
우리의 심령 속에는 늘 그런 고백이 그런 믿음이 깃들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가? “주님, 저는 목마른 자입니다. 나 스스로는 그 어떤 것도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더러운 죄인입니다. 이 세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이 나를 유혹하고 흔들어대는, 그래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죄인입니다.”하고 고백하는 자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저는 목마른 자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생수, 주님의 회복의 생수가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연약한 자입니다.”하고 고백하는 세리와 죄인들의 심령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목말라 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품어주시고,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시고, 능력을 부어주실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금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괜히 질투심이 생겨서, 그 일이 부당하다고 수군거리고 비난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것처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한다면 하늘에서 회개 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더욱더 기뻐하지 않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아 너희들이 의롭다고 여기고 세리와 같은 이들을 죄인이라고 여기는데, 정말로 그들이 죄인이라면 차라리 그들이 회개하여 하늘나라의 참 생명이 되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욱더 기뻐하지 않겠느냐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죠.
그처럼 이 첫번째 잃은 양의 비유에서 우리 주님은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라도 그 잃은 것을 발견하기까지 찾아다니시는” 애틋한 목자의 심정을 엿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의 마음 곧 본문 8-10절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입니까? “고귀한 가치를 지닌 영혼에 대한 간절함”을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비유, 곧 집 나간 둘째 아들의 돌아옴을 반겨주는 그 아버지의 태도에 대해 무엇을 일깨워주고자 하신 것입니까?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는데, 그 모습을 바라본 첫째 아들이 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을 보고 불쾌하면서 반항했던 그 큰 아들의 언행을 통해, 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생각과 행동을 고치도록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하신 주님의 비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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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비유는 모두 잃어버린 소중한 것에 관한 주님의 심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물론 잃어버린 것에 대한 내용은 같지만 단순히 그 내용을 세 가지 방법으로 반복하신 것은 아니죠.
양이 길을 잃어버린 것은 순전히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 분별력이 없기에, 갈 길을 몰라 헤매는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위해서도 주님은 찾고자 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두 번째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드라크마 자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죠. 움직일 수 없는 것, 스스로 없어지거나 도망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그 드라크마를 놓쳤거나 흘렸기 때문에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과오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 다른 원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길로 끌려갔거나 잃어버리게 된 것이죠. 주님은 그렇게 과오로 인해 잃어버린 사람조차도 귀하게 찾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집 나간 둘째 아들 곧 아버지께 고의적으로 등을 돌리고 떠나버린 그 아들을 향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그 집안에서 지낸 첫째 아들 곧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은 이들을 향해서도 주님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구조적인 타락과 고의적인 타락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품안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은혜를 부어주시길 원하시는 분이란 사실이죠. 이런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보다도 훨씬 더 정다우신 분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죠.
오늘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목말라 하는 자에게, 자기 스스로 세리와 죄인과 같은 연약함 속에 있는 자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크신 은혜의 생수를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힌 그 큰 아들과 같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주님께 되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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