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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1:27-29)_2024년 3월 17일 사순절다섯번째주일설교

by 권또또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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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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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노아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실 때 방주를 만들어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세상의 죄악이 가득했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악한 것을 알고 심판하신 것이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멸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 노아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6장 8-10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고 생각하는 것마다 악했는데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로 노아는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은 것이었죠.

그 말씀만 놓고 보면 노아만큼 의인도 없었고 완전한 자도 없어서 방주를 짓게 하셨겠구나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노아가 의롭다고 인정받고 완전하다고 인정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은혜란 할아버지 ‘므두셀라’(מְתוּשֶׁלַח)를 바라보며 살게 하신 것이었죠.

므두셀라란 이름의 뜻은 ‘창을 던지는 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란 의미입니다.

노아는 할아버지가 죽는 날이 세상의 끝을 향해 창을 던지는 심판의 때임을 내다보며 살게 한 거죠.

그러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요 자신의 본분임을 노아는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베푼 은혜요 그 은혜 안에서 노아는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았고 완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깨달음)크리스천으로 사는 우리도 이 땅을 목적으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머잖아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믿고 천국에 입성할 때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는 자들이죠.

그런 믿음으로 이 땅에서 예수님의 생명싸개(삼상25:29) 속에 사는 삶 자체가 주님의 비밀과 신비 속에 사는 은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나서 그렇거나 우리가 능력이 있거나 우리가 완벽해서 그런 게 전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할때도 하나도 잘 난 게 없고 완전한 게 하나도 없는 우리 자신들이죠.

허물많고 죄많은 욕심많은 우리 자신인데도 주님께서 전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여 불러주신 것이죠.

그와 같은 주님의 은혜 안에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 사람과 비교하여 완전한 믿음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노아가 ‘완전하다’고 말하는 히브리어 ‘타밈’(תָּמִים)의 뜻입니다.

나 스스로 죄가 없고 악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바라보며 살 때 그것이 온전한 믿음의 삶이라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말씀도 없고 비전도 없으면 방자(잠29:18)하고 결국 멸망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나라를 목표로 삼고 천국의 상급을 잊지 않고 살 때 그것이 온전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적용)나의 믿음이 올 해 더 믿음의 진보를 이루고 있다면 그것이 온전한 믿음의 삶이지 않겠습니까?

나 보기에 좋은 길만 좇던 예전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길에 순종하며 살고 있다면 말입니다.

내가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살던 예전과 달리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내어드리며 살고 있다면 말입니다.

주일날 예배드린 후에 세상에 들어가면 똑같이 죄를 짓고 살지만 그게 죄임을 깨닫게 하실 때 회개하는 은혜 안에 살고 있다면 보다 온전한 믿음을 좇아 사는 삶인 줄 믿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것을 목표로 하던 삶에서 하나님나라와 그 분의 상급을 고대하며 사는 삶이 온전한 믿음의 삶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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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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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골로새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의 가택연금에 처했을 때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써 보낸 편지라고 했습니다.

A.D.60-62년경의 일이었죠.

골로새교회는 고린도교회나 에베소교회처럼 바울이 직접 그곳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세운 교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골로새 출신의 상인인 에바브라가 에베소의 두란노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던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골로새에 돌아가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태동된 교회가 골로새교회였습니다.

골로새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부터 사람들이 모여 태동했는데 그 후 에바브라는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교회를 세웠죠.

 

그런데 골로새 도시는 ‘리쿠스강’을 무역로로 끼고 있어서 검붉은 모직천과 올리브와 무화과를 생산하는 도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번창한 도시였는데 그리스인과 유대인과 해외 상인들까지 몰려들었습니다.

그만큼 골로새 지역은 다문화 중심지가 됐고 유대교와 헬라철학과 황제숭배사상까지 판치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골로새교회 안에도 그런 혼합주의 종교관으로 골머리를 앓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이요 그 믿음의 삶이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는 삶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이었죠.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원론 사상이 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깨끗하고 육은 더럽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영혼만 구원받으면 됐지 육신은 아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냐는 것까지 확대되는 것이죠.

그러니 교회 안에서 예배를 잘 드리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만 세상 밖에 나가면 믿지 않는 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현대판 구원파가 그런 문제를 노출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있었습니다.

이른바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이들 가운데도 이전의 율법주의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이들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율법을 통해 제정하셨다는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것이 교회 내에 구원의 기준점이 되고 있었으니 바울이 전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요 교회를 영적으로 어지럽힌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조차도 이전의 율법주의와 금욕주의자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또 하나가 있다면 당시에 로마 황제의 지배 속에 살고 있는 시대라 골로새교회에도 황제숭배사상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로마 황제를 통치를 받는 지역들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며 절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 안에도 그렇게 황제을 신으로 절을 해야되지 않겠냐 하면서 세상 유혹에 노출된 이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깨달음)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골로새교회 창립자 에바브라는 로마에 있는 바울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교회의 문제를 알게 된 바울은 편지를 써서 골로새교회와 그 인근의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도 돌려가면서 읽어볼 수 있도록 편지를 써준 것이었죠.

 

우리가 3주째 살펴 본 말씀의 핵심은 그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한 이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복음의 삶 때문에 핍박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요 오늘날 크리스천으로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죄악을 이기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핍박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핍박의 삶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기 몸에 새기며 채우는 삶이라고 권면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살펴본 말씀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위해서 먼지를 뒤짚어 쓰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었죠.

골로새의 상인 에바브라도 자기 사업을 해야 하고 자기 일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하나님의나라와 교회를 위해 그 시간과 물질까지 헌신한 일꾼이었죠.

그것은 바울도 마찬가지요 빌레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고린도의 외항에 있는 뵈뵈라는 여인은 교회와 주변 사람들 중에 힘들고 고난한 이들의 보모요 울타리요 버팀목이 되어준 일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고 세상 것만을 좇던 사람이 위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아래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의 일꾼인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바로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혀주고 세상에 녹아드는 주님의 일꾼 아니겠습니까?

 

지난 시간 살펴본 말씀은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 자체가 주님의 비밀과 주님의 신비 속에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성육신하셔서 살아간 모든 삶이 주님의 비밀과 신비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식을 통해 주님과 연합하는 삶이 비밀과 신비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을, 많은 것이 아닌 작은 것을 지향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주님의 비밀과 신비 속에 사는 삶입니다.

바울처럼 이전에는 세상 출세와 성공만을 목적으로 살았지만 주님을 만난 이후에 하나님의나라와 교회를 세우는 삶의 목적을 갖고 산다면 그것이 주님의 비밀과 신비 속에 사는 삶이죠.

에바브라와 빌레몬처럼 자기 사업과 자기 일로 시간과 물질을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던 이가 이제는 하나님의나라와 교회를 위해 사용한다면 주님의 비밀과 신비 속에 사는 삶이죠.

누가 봐도 그 전과는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고 있다면, 그의 말이나 그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고 있다면 그야말로 주님의 비밀과 신비 속에 사는 삶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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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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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말씀인데 28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원해)바울이 골로새서를 쓴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목적 하나를 밝혀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친 이유를 밝혀주는 것이죠.

이른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한다는 것 말입니다.

 

여기에서 ‘완전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텔레이오스’(τέλειος)는 ‘끝’과 ‘목표’를 뜻하는 ‘텔로스’(τέλος)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맨 마지막에 뜨는 자막이 있습니다.

‘The End’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그처럼 ‘텔로스’라는 단어는 종말을 내포하는 단어입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 지구상의 종말을 내다보는 그 끝을 바라보며 살 때 완전한 자 곧 온전한 자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할아버지의 죽음이 하나님의 홍수심판의 때임을 알고서 온전한 자로 살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텔로스’라는 단어는 또 하나의 뜻이 있는데 ‘목표’라는 뜻이 그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목표나 뜻한 바를 성취했을 때 ‘이제 다 끝났다’하는 말을 씁니다.

사람이 목표나 뜻한 바가 없이 살면 방자하고 방탕하게 살게 됩니다.

하지만 성취하고픈 목표나 뜻을 세우고 살아가면 한 눈 팔지 않고 정한 목표를 갖고 성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의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상급을 목표로 살 때 하나님께서 온전한 자라고 완전한 자라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성)이 ‘텔로스’라는 단어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십자가 위에서 7마디를 남기셨는데 그 마지막 말에도 사용됐습니다.

“다 이루었다”(요19:30) 하신 말씀이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지만 원형이 ‘텔로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다 이루었다’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목표를 삼은 인류의 대속을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낸 그 목표와 뜻을 드디어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있기에 피곤하고 지칠때면 너무 괴로울 때 왜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의교회를 바라보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생각하며 살았기에 한 눈 팔지 않으신 것이었죠.

그만큼 고난이 닥쳐오고 핍박이 몰려와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목표와 그 뜻을 바라보고 사셨기에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완전한 삶 온전한 모습인 것입니다.

 

(깨달음) 바울도 에바브라도 빌레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목표와 뜻을 좇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삶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권면한 것 아니겠습니까?

비록 골로새교회에 영지주의가 판을 치고 유대율법주의와 금욕주의가 판을 치고 황제숭배를 해야 한다는 혼합주의가 밀려와도 말입니다.

그 속에서 누가 완전한 그리스도인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이 땅의 것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삼고 그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는 뜻을 갖고 사는 자만 주님의 온전하심 주님이 완전하심 속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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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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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릴때는 내 영이 바로 선 것 같지만 세상 속에 살 때는 내 육신도 세상 속에 파묻히는 것 같은 모습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신문지의 운세를 보고 타로 같은 점을 볼 때 재미삼아 보려고 하는 크리스천들도 많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좇아 살다가도 큰 일을 앞두고는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는 크리스천들도 많습니다.

어려운 일만 잘 해결해 주면 더 믿음의 삶을 살겠노라 다짐하고 기도하지만 그 일이 잘 해결되고 나면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그리스도인들 말입니다.

 

그 모든 게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명확한 주인임을 고백하며 살지 않기 때문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상급을 목표로 삼지 않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우리 스스로는 완전할 수도 완벽할 수도 없지만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삼고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며 살 때 흔들림 없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삶이 노아처럼 당대의 의인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요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삶 온전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지금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원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주문)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사는 은혜를 베풀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러니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를 바라보시는 주님께서도 네가 당대에 완전한 자로 당대에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사는 걸 원하지 않겠느냐?”

작년보다 올해 더 믿음이 깊어지고 예전보다 주님과 더 가까이 하는 그 은혜 안에서 세워지는 것 말이다.”

노아도 스스로 완전하거나 온전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할아버지 므두셀라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의 때임을 알고서 예배자로 온전히 서지 않았더냐?”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도 완전한 자로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길 바란 것도 똑같은 이치이지 않더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힘겨웠지만 끝내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목표를 바라보셨기에 가능한 것 아니었더냐?”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영지주의와 유대율법주의와 금욕주의와 영적인 혼합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질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이 땅의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적인 상급을 바라보며 살 때 주님 보시기에 완전한 삶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네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완전한 삶 온전한 믿음의 삶이지 않겠느냐?”

작년보다 더 주님을 가까이하고 작년보다 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작년보다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더 내어 맡기는 그런 믿음의 삶으로 세워지는 것 말이다.”

세상은 여전히 너를 죄악으로 끌어당기고 너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심판과 그 상급을 바라볼 때 네가 좀더 완전하고 온전한 믿음의 삶으로 세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

예수님도 그 고통스런 십자가 죽음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뜻하고 원하신 목표요 부활의 영광을 내다보셨기에 끝까지 그 사명을 완수한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네가 그런 믿음을 좇아 살 때 나는 네가 그런 믿음을 좇아 온전하게 사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주님께서 너에게 말씀하지 않겠느냐?”

 

(찬양)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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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줌, 그 깊은 사랑 | 권성권 - 교보문고

안아줌, 그 깊은 사랑 | 작은 교회의 목사가 길어올린 영감의 글이 책은 자유로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쓴 ‘2019년도 목회일지’입니다. 교우들과 함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눈 ‘묵상일지’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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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성프란시스에게 어떤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생애에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선생님을 보면 성자 같은 인격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비밀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프란시스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간단한 거야.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내려다보시고 사람을 찾고 계셨어.”

“가장 추한 사람이 누군지, 가장 불결한 사람이 누군지, 고통 가운데 고민하는 사람이 누군지, 가장 병든 인생이 누군지 찾고 계셨어.”

“그런데 그 하나님의 눈길이 나에게 머무른 것이지.”

“그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난 후에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을 붙들어 내가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줘야겠어’라고 생각하시고 나를 선택하신 거야.”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까?

성프란시스 같은 성자도 본래부터 그렇게 완전하게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노아도 그 스스로 완전하고 완벽한 게 아니듯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우상을 좇던 아브라함을 찾아와 선택해주시고 형편없는 믿음을 보인 그를 빚어주셨기에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프란시스도 가장 추한 사람 중의 하나요 가장 불결하고 가장 고민이 많고 가장 병든 심령의 인생 중의 하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렇게 믿음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빚어졌다는 뜻입니다.

 

(적용)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온갖 유혹과 핍박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길을 누가 완전하게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의 자아나 의지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자 다짐하지만 매 번 넘어지고 쓰러질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내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다시금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것은 머잖아 재림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종말의 때에 천국으로 입성하게 하신다는 목표를 놓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년보다 올 해 더 믿음의 삶을 깊이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재림과 하늘나라의 상급을 목표로 하기 때문 아닙니까?

노아가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 살 수 있었던 것도 므두셀라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의 때임을 바라보며 살게 하신 것 때문이죠.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완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길 바라는 것도 주님의 재림과 하늘의 상급을 목표로 살 때 가능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세사 사람과 비교할 때 잘 난 것도 지식도 가진 것도 자랑할 게 없지만 믿음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심판과 하늘나라의 상급을 목표할 때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꿈이 없으면 비전이 없으면 방자하게 방탕하게 살지만 꿈과 비전과 목표가 있으면 성실하게 살 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연약함 가운데서도 작년보다 더 깊은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주실 주님을 바라보는 목표가 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러니 우리가 주님앞에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성프란시스도 본래부터 믿음의 성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보기에도 형편없는 사람이었네요.”
그러나 주님께서 그런 그를 선택해주셨고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주셔서 누가 보기에 온전한 믿음의 성자가 되었네요.”

주님 세상 사람들과 저를 비교해도 가진 것도 지식도 능력도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죄인일 뿐이에요

그런데도 제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듯 저를 선택해주신 은혜 때문이에요.”

제가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은 노아처럼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목표로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 때문이에요.”

주님. 제가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신앙생활하는 것 때문에 어떤 유혹과 핍박을 받아도 믿음으로 온전히 이겨내며 설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모든 것은 나의 의로움이나 나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주님의 전적인 은혜요 하늘나라와 그 상급을 바라보며 살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찬양)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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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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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종교혼합주의에 빠지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안에서 완전한 믿음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자아나 의지나 결단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이라는 목표를 잃지 않을때에 가능한 것이죠.

노아가 완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산 것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도 그들 스스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빚어진 것입니다.

성프란시스도 스스로 보기에도 허물많은 죄인이고 세상에 고민이 많은 병든 인생이었는데 주님의 선택하신 은혜와 주님께서 온전하게 세워주신 은혜로 성자의 믿음으로 살게 된 것이죠.

주님게서는 저와 여러분들도 이 세상의 어떤 유혹과 핍박 속에서도 완전한 믿음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작년보다 올 해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있는 길, 예전보다 더 깊은 믿음의 사람으로 흔들림 없이 십자가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그 분의 상급을 목표로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그 은혜 속에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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