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고전4:14-16)

by 권또또 2024. 3. 6.
728x90
반응형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hwp
0.16MB

 

(설교열기)(예화)요즘 총선 정국이라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은 각 정당의 어른을 찾아가 인증샷을 찍습니다.

국민의힘당에서는 대통령의 인기가 높으면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대문짝하게 올리겠지만 지지율이 좋지 않아 그렇게 못하죠.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나오는 후보자들은 문재인 전대통령과 사진을 찍고 그것을 홍보수단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그런 어른들의 말에도 귀담아 듣고 실행하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각 정당의 어른이 한 말이 영향력이 있다면 그렇게 순응하고 행동하는 게 맞겠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더욱이 자기 자신이 판다해서 옳다고 믿는 바를 소신있게 밀어붙이는 경우도 많죠.

 

(깨달음)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그만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정당의 지도지가 된다고 해서,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언행일치를 보이고 삶의 모본을 보이는 게 어렵다는 뜻입니다.

가던 길을 잘 가는 사람이 있을 때 뒤따라가는 사람이 그 길을 보고 잘 쫓아갈텐데 말이죠.

 

(적용)이것은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바이지 않겠습니까?

우리 시대의 비극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이 없는 것입니까?

아니죠.

말씀은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말씀의 본을 삶으로 실천하는 어른 곧 스승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문제는 말씀의 단절에 있는 게 아니라 모본의 단절에 있다는 점입니다.

머리로는 진리를 알지만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의 어른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신앙교육은 영혼을 낳고 키우는 일과 동일합니다.

주일학교를 나와 중고등부와 청년부를 거쳐 장년에 속하기까지 산모의 고통을 낳는 것과 같죠.

그런데 누구에게 배웠는지, 누구로부터 그 본을 본받아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지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죠.

먼저된 자가 나중된 이에게 바른 본을 보여주지 않으면 나중된 자가 실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참된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어른이나 스승은 중요합니다.

더욱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나중된 이들을 바르게 훈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죠.

그래야 나중된 이들이 바른 자세와 방향을 갖고 그 길을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3605319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book-product.kyobobook.co.kr

(역배)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다툼과 분열을 일삼기보다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장 18절부터 계속 써내려왔죠.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은 그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의 고난과 겸손을 열거함과 동시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교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이나 사도들은 부요함과 왕노릇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과는 달리 비참한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삶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진심으로 헤아린다면 어떻게 자신들의 부요와 교만을 자기 자랑과 파벌 수단으로 삼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죠.

 

자신을 비롯해 사도들은 끄트머리와 같은 낮은 자리에 있고 경기장의 구경거리가 되어 죽어가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어떠한가 하는 것이었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부요함과 배부름 속에서 다툼과 분열을 일삼고 저마다 왕노릇하고 있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어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을 책망하고 하나가 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일단락되는 그 끝부분에 달한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서부터 시작된 그 내용이 4장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본문 14-16절은 교회 분열을 종식시키고자 바울이 부성애적인 권면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앞에서 말한 책망과는 달리 사랑이 넘치는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이죠.

 

바울이 그와 같은 사랑의 권면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 대해 믿음의 아버지와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직접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양육했습니다.

그래서 아비와 같은 심정으로 성도들을 향해 자신을 본받으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와 같이 자기 파벌을 만들고자 한 게 결코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을 본받아 서로가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섬기라는 차원에서 한 말이죠.

 

본문 14-16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원해)여기에 부끄럽게 하려고로 번역된 헬라어 엔트레포’(ἐντρπω)부끄러워하다’(to be ashamed)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고린도전서 65절과 1534에도 기록돼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한다는 경고의 말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부정어 오우’(οὐ, no, not)와 함께 쓰여 있어서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쓴 것 아니냐하는 의미죠.

그만큼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비난하고 책망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바로 세우고자 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깨달음)사실이 그렇죠.

누구든지 악심을 가지고 책망하면 책망받는 자에게는 치욕이 뒤따르고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죠.

바울은 그걸 알기에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사랑으로 책망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치욕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 스스로 바른길로 돌이키도록 하게 말이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지만 그것은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처럼 권면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더욱이 권하다는 헬라어 누쎄테오’(νουθετω)는 권하다 권고하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가 부성애를 갖고 훈계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만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기 지혜와 지식과 은사를 내세우며 왕노릇하는 모습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훈계하고자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토록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입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5116349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book-product.kyobobook.co.kr

(원해2)본문 15절의 스승으로 번역된 헬라어 파이다고고스’(παιδαγωγς)후견인’ ‘가정 교사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 명칭은 헬라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서 귀족 계급에 속하는 어린 아이들의 생활과 품행을 지도하는 종들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24절에 그 단어를 사용했는데 개역한글판에서는 몽학선생으로 개역개정에서는 초등교사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파이다고고스라는 스승은 부모와 아버지의 마음이 없이 그저 종이 길잡이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은 해산의 수고도 없고 자식이 아파할 때 제 몸이 아픈 것처럼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집안의 종들 가운데 조금 똑똑한 종에게 자식을 가르치도록 한 것 뿐입니다.

그만큼 인격이나 언행이나 삶의 본을 보일 수가 없는 스승이죠.

 

(깨달음)그런 스승들과는 달리 바울은 아비의 마음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낳았다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는 해산의 수고와 고통이 있었고 자식을 양육하는 수고와 고통을 감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고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은 이미 11-13절을 통해 자신이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종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은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를 자신이 본받았듯이 너희들도 그걸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최종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데 있다는 뜻입니다.

그걸 닮으라고 권면하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언젠가 우리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빠졌을 때 한 시국 토론회에서 어느 정치가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이토록 어지럽고 시끄러워진 이유는 한마디로 이를 진정시켜 줄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하고 말이죠.

무슨 뜻입니까?

진정으로 존경할만하고 그 말에 누구라도 승복할 만한 분이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뼈아프게 들어야 할 사람들이 누굽니까?

우리 신앙인들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어 진리의 빛을 밝혀줄 곳은 말 그대로 최고의 가르침을 뜻하는 종교(宗敎)’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모본을 보여주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인으로서 말은 많이 하지만 그 삶의 본을 보여주고 있는지 말입니다.

바울처럼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어서 누군가 그릇된 모습을 보일 때 아비의 마음으로 훈계할 수 있는지 말이죠.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3613992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성경으로 문화읽기2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ebook-product.kyobobook.co.kr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일만 스승이 아니라 참된 아비의 마음으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국회의원에 나오는 후보자들이 각 정당의 어른을 찾아가고 이전 대통령의 후광을 얻고자 하는데 안간힘을 쓰지 않더냐?”

하지만 그 어른들의 말을 얼마나 경청하고 그 본을 따라 행하고 있는지는 다른 모습이지 않더냐?”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일만 스승은 많지만 아비의 마음으로 바른 본을 보이는 이는 적지 않냐고 말하지 않더냐?”

그것은 바울을 내세워 파벌로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생명을 내주신 주님을 궁극적으로 본받도록 한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날의 신앙인들의 문제는 말씀이 없어서 갈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본을 보이는 어른이 없는 게 문제이지 않더냐?”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말솜씨 때문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 때문이요 그 길은 입으로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줘야 되는 것 아니더냐?”

지금 네 주변에 너보다 나중된 이가 네가 보여주는 믿음의 본을 보고 본받고 싶어하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해산의 수고와 고통을 안고 있었기에 그들을 아비의 심정을 책망하고 권고하고 있는 것 아니더냐?”

너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네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면 누군가 너를 보고 그 본을 본받아 살려고 하지 않겠느냐?”

 

(찬양)나는 거짓을 기뻐할 수 없어서 매를 맞으면서도 외면했건만

너희는 담대하여 거짓 속에 사는구나

나는 거짓을 기뻐할 수 없어서 창을 맞으면서도 외면했건만

너희는 거짓과 함께 손을 잡고 사는구나

정직하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내 딸들아 정직하라

나의 가슴을 치며 너희에게 구하노니 구하노니

나는 불의를 기뻐할 수 없어서 온갖 조롱받으며 외면했건만

너희는 담대하여 불의 속에 사는구나

나는 불의를 기뻐할 수 없어서 침 뱉음을 받으며 외면했건만 너

희는 불의와 함께 손을 잡고 사는구나

진실하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내 딸들아 진실하라

나의 가슴을 치며 너희에게 구하노니 구하노니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59805

 

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book-product.kyobobook.co.kr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입으로만 믿음의 길을 제시한 게 아니라 그 삶의 본을 보이며 십자가 죽음을 통해 믿음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일만 스승처럼 초등교사의 길잡이 역할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을 믿음으로 낳고자 해산하는 고통과 수고를 아낌없이 감당했고 낮고 천한 구경거리가 되는 삶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울이 그들을 향해 쓴소리를 해가면서 책망하고 권고할 수 있는 것도 아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 자신이 그런 어른으로 그런 본을 보여주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