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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고린도전서

우리를 끄트머리에 두셨으매(고전4:9-13)

by 똑똑이채널 202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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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끄트머리에 두셨으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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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한 국제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지구상의 3분의 1일 곧 20억명이 1달러 미만의 돈으로 하루를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한 끼 식사는 물론이고 깨끗한 물조차도 마시기 어려운 형편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 혜택은 꿈과 같은 일이요 어쩌면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죠.

 

반면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사회의 한 켠에서는 건강과 몸매 관리를 위해 헬스클럽과 사우나와 다이어트 식품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가의 공교육이 부실하다면서 고액을 들여서 과외를 하거나 해외유학을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깨달음)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풍요를 누리며 사는 것은 누구 덕분입니까?

전쟁의 폐허 속에서 숙명처럼 여기던 가난을 극복해보겠다면서 이를 악물고 땀흘려 수고한 부모와 선배들의 노력 덕분이죠.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은 그런 사실도 잊은 채 오늘날의 풍요가 마치 자신들이 잘나고 똑똑해서 얻은 것인양 착각과 자만 속에 살고 있죠.

자식 하나 잘 되기를 바라면서 자신들은 먹을 것도 못 먹고 배우고 싶은 것도 못 배우며 살았는데 되레 무식하다며 핀잔과 수모를 주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부모의 수고와 은혜는 까맣게 잊은 채 자기들만의 행복과 쾌락을 좇아 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용서받지 못할 패역한 불효자의 모습이 아닐 수가 없죠.

 

(적용)이것은 신앙생활의 모습에도 적용이 됩니다.

영적인 차원에서도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같은 사도들에 의해 복음을 듣고 교회를 세워왔는데 바울과 사도들의 수고과 수모는 잊은 채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은사와 지혜와 풍요가 자신들이 잘 해서 그런 것인양 착가하며 사는 게 그것이죠.

그야말로 영적인 불효자요 은혜를 모르는 패역한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믿음의 삶을 살기까지 나를 전도하고 나를 돌보고 믿음으로 중보하며 살아온 영적인 부모와 같은 목회자와 신앙선배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늦게 된 자가 먼저된 자처럼 행세하며 자기 믿음과 신앙을 자랑하려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사용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걸어가시는 십자가 고난의 길이 그런 발자취의 길이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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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묵상하기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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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다툼과 분열을 일삼기보다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장 18절부터 계속 써내려왔죠.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은 그것이었습니다.

스스로 왕 노릇하는 고린도 교인들과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도들의 모습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이었죠.

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경쟁이나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동반자관계로 살아왔고 그 본을 보여주지 않았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 하고 꼬집는 이야기였죠.

더욱이 바울이나 아볼로는 기록된 구약의 말씀밖으로 넘어가지 않았는데 왜 너희들은 말씀밖으로 나가고 있느냐 하면서 질책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7절을 통해 말하는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들이 받은 지혜나 지식이나 은사가 실은 하나님께서 거저 베푸신 은혜이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도 그걸로 우월감을 삼아 다른 사람을 차별화하고 무시하고 파당을 짓고 있는데 과연 올바른 일이냐 하는 것이었죠.

바울이나 아볼로는 결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지 않느냐 하는 뜻이었습니다.

 

더욱이 8절을 통해 말하는 바도 그것이었죠.

바울이 보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미 배가 불렀고 벌써 부자가 된 것처럼 행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바울이나 아볼로와 같은 사도들과 지도자들을 제쳐놓고 왕이 된 듯 행세한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바울이 보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영적으로 어린이와 같은 수준이었죠.

왜냐하면 하나님께 받은 지혜와 지식과 은사를 앞세워 스스로 교만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자기 마음에 맞는 지도자를 내세워을 서로들 편가르기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수준으로 어찌 왕된 구실을 할 수 있겠느냐, 어찌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죠.

 

(깨달음)그래서 지난 시간에 깨달은 바가 있었죠.

성경과 말씀을 가르치는 이의 입장과 자세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배우고 듣고 순종하는 성도들의 입장과 자세는 더더욱 중요하다는 것이었죠.

아무리 지도자가 성경을 잘 가르치고 참된 본을 보일지라도 배우는 성도가 자기 교만과 자기 지혜만을 내세우며 영적으로 교만한 왕노릇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분열과 다툼을 일으키고 파벌을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것이죠.

 

(본문)오늘 읽은 본문 9-13절까지는 사도들의 고난과 겸손을 열거함과 동시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교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이나 사도들은 부요함과 왕노릇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과는 달리 비참한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삶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진심으로 헤아린다면 어떻게 자신들의 부요와 교만을 자기 자랑과 파벌 수단으로 삼을 수 있겠냐는 것이죠.

 

9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보시겠습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원해)여기에 ‘끄트머리’로 번역된 헬라어 ‘에스카토스’(ἔσχατος)는 시간이나 서열로 마지막(the last)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도들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겸손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닙니다.

바울은 “사도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15:9)라고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엡3:8)라고 고백한 바 있죠.

그것은 겸손한 고백이지만 오늘 본문에 사용된 ‘끄트머리’란 표현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당하는 고통과 고난의 낮은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구경거리’로 번역된 헬라어 ‘데아트론’(θέατρον)은 극장(a theatre)이나 구경거리 장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바로 그런 고난과 조롱 속에서 온 세상의 구경거리가 된 이들이 사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그렇게 낮은 자리에 있고 경기장의 구경거리가 되어 죽어가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부요함과 배부름 속에서 다툼과 분열을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저마다 왕노릇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죠.

그것이 어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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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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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이런 대조적인 모습은 10-13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미련하고 약하고 비천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 지혜에 대해 스스로 무지한 자(고전1:17-21, 고전3:18)로 약하고 비천한 자로 핍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직접 손으로 텐트를 만들면서 일하면서 복음을 전해 왔죠.

열두 사도 가운데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은 엄청난 박해 속에서 순교를 당해야 했죠.

그것이 실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살아온 삶이었다고 13절에서 밝혀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원성)실제로 바울이 다른 사도들처럼 어떤 고난과 고통을 겪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을 통해 밝혀줍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깨달음)바울은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그와 같은 고난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이렇게까지 수모와 수치를 당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죠.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1-1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바울이 주님과 복음을 위해 미련스럽게 살아오고 만물의 찌꺼기처럼 산 이유가 주님의 당부에 순종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더욱이 태장을 맞고 돌팔매질 당하고 강과 동족의 위험과 춥고 눌리는 상황을 이겨내며 산 것도 보혜사 성령님이 동행해주셨기 때문이죠.

 

그런 바울과 사도들의 삶에 비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어떤 상태 속에 있다는 것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이나 바울에 비해 지혜롭고 강하고 존귀한 자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에 비해 훨씬 똑똑해 보이고 강해보이고 존귀한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스스로 판단자가 되어 왕노릇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바울이 왜 이런 식으로 자신을 비롯한 사도들이 당하는 고난과 그렇지 못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교만한 모습을 자각해서 사도들을 본받고 다툼과 분열에서 돌아서도록 하기 위함이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똑똑한 것 같고 지혜롭게 판단하여 왕노릇하는 데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좇아 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좇아 살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는 자처럼 말이죠.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를 본받아 사는 길이지 않냐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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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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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주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바울과 사도들의 삶을 본받듯이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본받아 사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부요하고 지혜롭고 똑똑한 것처럼 왕노릇하면서 살고 있는데 과연 주님께서 기뻐하는 모습이겠느냐?”

그들과는 달리 바울과 다른 사도들은 주님과 복음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고 원형 경기장의 구경거리와 사자의 밥이 되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지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겸손한 자들로서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발자취를 따르는 소수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신 것 아니겠느냐?”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그렇게 십자가에 죽고 원형 경기장에서 죽는 죽음을 감수한 것은 모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함이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사도들이 걸어간 고난의 길을 뒤좇아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와 같은 십자가 고난의 길이 아니라 지혜롭고 부요하고 존귀한 자리만을 원한다면 너도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

언제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스스로 지혜롭고 똑똑한 척 교만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겸손한 자리를 추구하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성숙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자들을 통해 한 층 한 층 세워지는 것 아니겠느냐?”

 

(찬양)약할 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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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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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 부임하게 된 한 젊은 교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교사는 부임을 앞두고 처음 서게 될 강단과 그를 기다리고 있을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학생들을 기대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죠.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었습니다.

처음 부임해서 강단에 서던 날 학생들의 태도와 수업 분위기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젊은 선생님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교무실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이 지긋하신 교장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며 그렇게 말씀하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 학생들 가운데에는 단 몇 명 이나마 선생님의 수업을 제대로 듣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몇 명의 학생이 우리 학교를 빛내고 나아가서는 이 사회의 기둥이 되지요.”

“나머지 학생들은 그저 그 학생들을 따라가는 거구요.”

 

(적용)교회도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 세상의 모든 죄가 정결케 되었습니다.

복음 역시 소수의 헌신된 제자들 사도들 선교사들을 복음전파자들을 통해 오늘 이만큼 퍼지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 소수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나는 어떠한 성도가 돼야 하는가?”

그저 값싼 은혜를 받은 자처럼 교만하고 자고하고 스스로 왕된 위치에서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을 것이 아니라 믿음의 참된 선배들을 본받아 묵묵히 헌신과 희생을 감수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말이죠.

주님은 그런 자들을 통해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워가시는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스스로 교만하고 왕노릇 하려는 사람이 되기보다 언제 어디서나 겸손하게 주님의 십자가를 좇아 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해 주세요.”

“새로 오신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보다 기쁘게 해드리는 학생처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지도자를 기쁘게 하는 자로 살게 해 주세요.”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제게 부여하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그 한 사람으로 살게 해 주세요.”

“바울에게 필요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젊은 집사 뵈뵈처럼 실라와 누가처럼 그런 성숙한 동역자로 살게 해 주세요.”

“그것은 나의 힘이나 내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약할 때 강함되게 하시는 주님의 십자가 능력에서 나오는 줄 믿습니다.”

 

(찬양)약할 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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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볼 수 있어요 | 권성권 | 유페이퍼- 교보ebook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너무나 답답했다. 지금도 그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들도 꿈을 꿀 수 없는 상태다.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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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의 믿음은 나 홀로 세워진 게 아니라 누군가 나를 전도하고 이끈 믿음의 선배 믿음의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선배를 뒤좇아 나도 십자가의 길을 걷는 신실한 믿음의 일꾼으로 살 때 믿음의 선배와 지도자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나 실라와 누가를 바라보는 바울의 모습이기도 하고 바울을 바라보는 주님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교만하거나 자고하지 말고 믿음의 선배와 지도자들이 걸어간 십자가 길을 겸손하게 따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나를 이끈 믿음의 선배와 지도자에게도 참된 기쁨을 주는 신실한 동역자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끄트머리 그 낮은 자리를 취하며 나보다 남을 더 높게 여기는 신실한 그리스도으로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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