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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어제 제73회기 전남서지방회가 있었습니다.
1년간 행한 일들을 보고하고 새로운 회기의 일들을 구상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를 위한 일꾼도 새로 선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다는 점은 평신도 주체로 개최한 성결인대회가 가장 뜨거웠다는 평을 했습니다.
그를 위해 평신도 부장이 가장 많은 수고를 했다는 점이었죠.
그것이 지난 회기를 돌아보면서 가장 뜻깊은 일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회기를 내다보며 지방회장이 추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1년에 네 차례에 걸친 성결인대회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각 감찰회 별로 진행하고 그를 위해 예산도 800만원을 책정했습니다.
물론 그 예산과 함께 증액된 예산액이 24%에 달해서 각 대의원들마다 너무 과다하는 지적을 해서 결국은 예산안 편성을 공천부에서 다시 결의하기로 했습니다.
(깨달음)제가 지방회를 보고 깨달은 점이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이제 2년 안팎에 남은 원로급 목사님 한 분이 자발적으로 대의원을 포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은 물러나고 이제 후배들을 위해 그 일을 터주는 입장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분은 성결교단의 총회를 위해서도 또 지방회를 위해 충성스런 일꾼이셨는데 이제 그걸 내려놓고 젊은 분들에게 위임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너무 보기에 좋았습니다.
물론 이번 지방회 때 좋지 않는 점도 있었습니다.
올해 지방회 전반을 위한 행사 예산액을 24%가량 올린 점인데, 신임회장이 기도하면서 추진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과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마치 회장이 새롭게 추진하는 일에 다른 대의원들은 무조건 따라와야 한다는 입장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아무리 명분과 실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다른 대의원들이 납득이 되고 공감을 가져야 하는 일인 것이죠.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일을 한 두 가지만 추가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산도 한 꺼번이 24%를 올리게 아니라 5% 정도 올리는 방안을 모색했다면 다른 대의원들도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용)이것은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세워가는데 중요한 원리이기도 합니다.
복음사역자들은 주님나라를 위한 일꾼이자 사역자들인데 함부로 종처럼 다뤄서도 안되고 또 함부로 왕이나 주술사처럼 행동해도 안된다는 점입니다.
총회나 지방회나 각 교회를 위한 일꾼으로 직분을 맡기면 모든 사람의 종이라면서 그 사역자들을 종처럼 부리고 싶은 사람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 사역자들이 마치 왕처럼 함께 하는 동역자나 성도들 앞에서 권위자처럼 내세우고 주장하려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맡았던지 주님나라와 주님의교회를 위한 충성스런 일꾼이요 겸손한 일꾼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다툼과 분열을 책망하면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장 18절부터 써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3장 후반부를 통해 살펴본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세상 지혜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움켜 잡게 유혹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교회 안에 가져오면 분란과 다툼만 일으킨다고 했죠.
그와는 달리 하나님의 지혜는 생명을 얻게 하는 지혜로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지혜가 되는 것이죠.
이 세상에 그 어떤 지혜로도 하나님의 생명의 비밀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여도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의 비밀인 것과 같은 이치죠.
그래서 바울은 세상 지혜는 사람의 높고 낮음 사람의 잘 나고 못 나고 하는 차이로 판단하는 것인데 그걸 교회 안에 가져오면 문제가 생긴다고 했죠.
세상의 판단기준 자체로 교회를 판단하고 성도들을 판단하고 지도자를 판단한다면 그 기준 잣대에 다 평가절하당하고 말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죠(고전1:27-28).
(깨달음)그러니 모든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런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성령을 모신 성전이요 유기적으로 관계속에서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라고 했죠.
그러니 이 세상의 욕심이나 탐욕에 이끌려 세상 지혜를 좇는 자들이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서로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넓은 관점 속에 살라고 하는 것이었죠.
그야말로 이 세상의 작은 것을 얻고자 영생하는 하나님나라의 가장 귀하고 가장 작은 것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본문)오늘 본문도 계속해서 분열을 일삼은 이들을 책망하고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도 교회 지도자들의 직분이 어떤 것인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원해)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복음 사역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꾼’으로 번역된 헬라어 ‘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는 ‘-아래에’라는 ‘휘포’와 ‘노를 젓다’는 ‘에렛소’의 합성어입니다.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subordinate rower)를 뜻하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 세계에 있어서 이 일은 중죄인이나 가장 비천한 노예가 감당했던 일입니다.
한 번 노를 젓는 노예로 전락하면 일반적으로 죽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가 없었죠.
그러나 이 단어가 점차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충성을 다하는 일꾼이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관리들과 행정 장관들의 수행원들과 같은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마5:25)
그런 점에서 볼 때 3장 5절에 언급된 ‘디아코노이’와 표현은 달라도 그 의미는 차이가 없는 것이죠.
본문을 통해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에서 ‘비밀’로 번역된 헬라어 ‘뮈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은 ‘입문자’를 뜻하는 ‘뮈스테스’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구원의 복음이 은밀한 지식이고 구약에서는 감춰졌지만 신약시대 이후에는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이죠.(고전13:2, 14:2,15:51).
그 비밀을 ‘맡은 자’로 번역된 헬라어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는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οἶκος)와 ‘관리하다’는 ‘노모스’(νόμος)의 합성어입니다.
집안이나 어떤 공동체의 행정과 재정을 관리하는 관리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깨달음)과연 바울이 ‘일꾼’이라는 말과 함께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한 말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까?
고린도교회의 복음사역자들이 주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나라의 영적인 권위를 청지기라는 것이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일꾼인 동시에 하나님나라의 관리자로 맡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교회에 일꾼이라면서 자동차 기사와 같이 함부로 일꾼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실제로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운전기사처럼 여기며 두세 사람의 성도들 모임인데 목회자에게 전화를 걸어 운전을 부탁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일꾼으로 부른 것은 아니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관리자로 불렀다고 해서 제왕처럼 군림하려고 하는 목회자가 돼서는 안되는 것이죠.
목회자를 왕이나 주술사처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실수하고 허물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지적했다가는 벌을 받는다면서 그냥 속앓이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적용)그렇다면 주님나라의 일꾼이자 하나님나라를 위한 맡은 자로서 복음사역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주님의 비밀’을 위임받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에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에게도 말씀하셨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하고 말이죠(요21:15-17).
그만큼 복음사역자들인 목자는 양에게 푸른 꼴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서 먹이고 돌보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먹이고 마시게 할 푸른 꿀과 맑은 물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 곧 구원의 진리죠.
그 사역을 위해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고자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도 그걸 게을리한 채 인간관계만 잘 맺으면 된다고 하는 목회자들도 많습니다.
골방의 말씀연구나 묵상 없이 수시로 친목을 도모하는 목회자들 말이죠.
물론 인간관계도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말씀연구와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해서 어찌 푸른 초장의 꿀과 맑은 물을 마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만큼 주님께 위임받은 부분에 책망받지 않으려면 더 말씀을 가까이하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운행하심을 위해 기도하는 삶으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죠.
그것이 복음사역자들이 감당해야할 삶의 몫이요 주님께 부름받고 위임받은 일입니다.
(원성)“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본문2)본문 2절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원해)우리말 ‘충성’으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토스’(πιστός)는 ‘믿을 만한’(trusty) ‘신실한’(faithful)이라는 뜻입니다.
일꾼이나 청지기나 맡은 자는 오직 주인 앞에서 신실한 자로 인정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죠.
(깨달음)그리스도의 일꾼이자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 섬기는 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좋은 언변이나 세상 지혜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것은 충성이라는 것이죠.
그만큼 바울도 세상적인 판단기준에 따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사도성을 의심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색하게 할 만큼 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충성스런 일꾼이요 사역자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들에게 왜 그런 충성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바울의 요구가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을 보면 그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가 나오지 않습니까?
거기에 착하고 충성된 두 종이 나오고 또 악하고 게으른 한 종이 나오죠.
다섯 달란트 받은자 와 두 달란트 받은 자가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장사해서 각각 받은 달란트만큼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드렸는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걸 땅에 묻어두었죠.
자기 생각에 주인은 엄한 사람이라 그걸 잘 보관해 두면 되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인은 열심히 충성한 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맡겼고 악하게 게으른 종에게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렸죠.
(적용)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받았든지 간에, 어떤 달란트를 얼마큼 받았든지 간에 우리가 해야 할 게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교회에 충성스런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 일을 하면 얼마나 많은 영광과 보상이 내게 돌아올까?
그런 기대보다도 ‘휘페레테스’처럼 위에 계신 주님께서 이끄시고 원하시는대로 ‘노를 젓는’ 충성스런 일꾼으로 사는 것이죠.
영화 ‘벤허’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영화에서 주인공 벤허는 억울하게 죄수로 끌려가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돼 노를 젓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죄수와 노예로 부름받은 게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영광스런 직분자로 일꾼으로 불러주셨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달란트를 주신 주님께 나의 달란트로 충성하는 삶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원성)“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눅19:17))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10-11)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나라와 주님의교회를 위한 충성스런 일꾼이요 직분자로 부름받은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주님께서 세상 가운데 있는 너를 지명하여 불러내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위한 일꾼이죠 맡은 자로 세우지 않았더냐?”
“벤허의 그 주인공도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였지만 주님의 자녀들은 모두 주님나라를 위해 노를 젓는 휘페레테스들이지 않더냐?”
“그렇게 하고서도 자기 주장이나 자기 영광이 없이 오직 배 갑판 위의 선장에게 돌리듯이 너도 주님께 충성을 다한 후에 그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주님께서는 너를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교회에 일꾼이요 사역자로 부르셨다면 무엇보다도 신실함과 성실함의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
“세상에 똑똑하고 잘나고 유능한 사람을 기준으로 주님께서 뽑으신 게 아니라 오히려 무능하고 연약한 자를 필요해서 뽑으시지 않았더냐?”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더욱 충성스런 일꾼이자 사역자로 성실을 다했으면 좋겠구나.”
“말씀을 맡은 자는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다고 누군가의 종처럼 살아서도 안 되고 또 누군가를 군리하려는 제왕처럼 행세하려고 하지도 말고 말이다.”
“오직 하나님의 교회에 필요한 구석구석에 주님을 위한 충성스런 일꾼으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게 준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웃에게 전하여라
그러면 네가 짓지 않은 큰 집을 주리라
네가 심지 않은 과실을 먹게 하리라
그러나 한 가지 잊지는 말아라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위해 일꾼으로 뽑아 당신의 도구로 통로로 쓰시는 분이십니다.
지방회를 위한 일꾼도 지교회를 위한 일꾼도 필요한 법이죠.
그 지교회에서도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 재정을 보는 사역자로 차량과 식당을 돌보는 사역자로 각각 달란트대로 부르신 주님이십니다.
그 직임에 필요한 것은 세상의 지식이나 학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충성스런 마음과 자세죠.
주님께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는 바깥 어두운데로 쫓아내셨지만 착하고 충성스런 종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맡도록 상급을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이 땅에서서 주님나라와 주님의교회를 위한 일꾼으로 부르셨다면 그 일에 충성을 다하는 일꾼으로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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