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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바둑의 원리나 지침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위기십결’(圍模十訓)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온다고 하죠.
“소탐 대실(小貪大失)이니 사소취대(推小取大)하라”하는 말 말이죠.
(깨달음)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작은 것을 욕심내면 큰 것을 잃게 되니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하는 뜻입니다.
바둑의 하수는 눈 앞에 작은 돌을 집어 삼키려 하다가 정작 튼 대마를 잃고 패하는 것이죠.
바둑의 고수들은 아흔아홉가지 길이 있는데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 단 하나의 길로 가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적용)이것은 하나님나라의 관점도 마찬가지죠.
오늘 새벽에도 살펴봤지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막12:17)라는 말씀이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살지만 두 나라를 살고 있는 자라고 했죠.
이 세상의 현실세계와 영원한 하나님나라 말이죠.
그런데 보다 영원하고 변함이 없는 세계는 하나님나라죠.
그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인데 이 세상의 탐욕에 휩쓸려 작은 것이 미혹당한다면 영원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그만큼 이 세상 지혜는 유한하기 짝이 없고 인간의 영화도 10년이면 끝이 나고 꽃도 10일을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영적인 눈을 뜨고 살아야 할 것이고 소탐대실하기보다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지난 시간 말씀을 통해 바울은 성도가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기 전까지는 짐승을 잡아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죠.
하지만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친히 십자가에 제물이 되셨기에 더 이상 제사가 필요치 않죠.
바로 그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칭하셨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들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시기에 성전된 몸이 되는 것이죠.
그만큼 우리 자신이 걸어다니는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뭔가 방언을 하고 입신을 하고 예언을 하는 게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증거이겠습니까?
성령님의 내주하심의 증거는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는다는 그 은혜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희한한 이적이 일어나고 소나기처럼 능력을 체험했어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십자가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고백하며 사는 자들이 성령의 내주하심 속에 거하는 자입니다.
물론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자들은 그 자신을 거룩한 성전으로 단장하고 가꾸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김칫독을 된장독으로 삼기 위해서도 그 안에 든 독을 다 빼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우리 몸을 거룩한 성전으로 가꾸어가야 하는 것(롬8:16,고전12:3, 갈4:6)
(깨달음)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성전을 더럽힌 지는 사형에 처하거나 공동체에서 추방토록 규정하고 있습니다(레15:31,민19:20).
나답과 아비후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불 곧 이교도의 불을 가져와 드리다가 불로 심판받은 일이 있습니다(레10:1-2).
더욱이 제사장도 아니면서 스스로 하나님께 제사를 주관한 사울 왕도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웃시야 왕도 심판받았습니다.
(적용)그렇듯 성전을 정결케 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우리의 몸과 마음도 정결케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실수로 죄를 범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걸 말합니다.
그것이 성령을 모신 성전된 몸으로 죄를 짓는 것이요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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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본문 18-23절까지는 바울이 1장 18절-2장 6절까지 논의한바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에 대한 언급입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고 세상 지혜는 세상 곧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나온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이 세상 지혜와 대립되는 것이죠.
그런데도 세상 지혜 곧 세상의 탐욕과 욕망과 자기 자아로 무장한 지혜를 옳은 것처럼 교회 안에 가져오면 분란과 분열이 생기는 것이죠.
그만큼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모신 성전이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고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공동체이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 18-2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원해)바울은 본문을 시작하면서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말을 권면하면서 시작합니다.
‘속이다’로 번역된 헬라어 ‘엑사파타오’(ἐξαπατάω)는 ‘기만하다’(to deceive)는 말입니다.
(깨달음)그런데 바울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남을 속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기 때문에 남을 속이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죠.
그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기 때문이죠.
자신이 지혜 있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거기에 속아 넘어가고 타인도 속이게 만드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세상 지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가져오는 지혜는 실은 사람을 속이는 지혜요 그 지혜에 자기 자신도 속고 타인도 속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리석은 자기 되라고 그래야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참된 지혜자가 되길 원한다면 세상 지혜에 어리석은 자가 되라는 역설적인 권면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세상 사람을 설득하고 이용하기 위한 지혜 아닙니까?
그런 지혜는 누가 더 높은지 누가 더 좋은 것을 취하는지 탐욕과 관련이 돼 있습니다.
그런 지혜를 교회 안에 가져오면 하나님의 선한 지혜가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분열과 분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미련한 자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고 자기 꾀에 빠지도록 하나님께서 관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관여한다는 것은 세상 지혜를 제일로 아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지혜가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므로 모두 거부하고 폐기하라는 뜻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죠.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볼 때 인간적인 지혜를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원해2)여기에 ‘자기 꾀에 빠지게 한다’는 이 말씀은 욥기서 5장 13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이것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한 말입니다.
세상 지혜를 추구하는 자는 썩어질 육신의 만족만을 도모하는 자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 파멸한다는 것이죠.
여기에 ‘꾀’로 번역된 헬라어 ‘파노우르기아’(πανουργία)는 긍정적인 의미는 ‘신중함’을 뜻하지만 부정적인 의미는 ‘교활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남의 것을 컨닝할 때 쓰이는 단어죠.
본문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는데 ‘겉만 번지르르한 거짓된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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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천정조 같은 이도 자신이 재벌3세라고 사칭하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을 홀렸습니까?
엊그제 신문에 보니까 자신이 사업을 크게 하는데 사귀는 여성들에게 선물로 유혹하고 통장잔고도 위조해서 보여주면서 수많은 돈을 갈취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넘어가는 여성이나 사람들도 실은 자기 탐욕에 이끌려 넘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세상에서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 없는 지혜요 오히려 남을 해치는 교활한 지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세상 지혜가 얼마나 무익하고 해로운 것인지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지혜가 헛되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0절의 ‘헛되다’는 헬라어 ‘마타이오스’(μάταιος)는 ‘무익한’ ‘쓸모없는’ 뜻입니다.
인간이 자기 힘과 자기 지혜로 만든 계획이나 생각들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도 한 순간인데, 자기 꾀로 권력을 잡은 것도 10년을 못하는 것이고, 화려한 꽃도 10일을 넘지 못합니다.
(적용)그와 같은 인간의 지혜의 어리석음 인간 지혜의 헛됨을 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 세상 지혜를 고린도교회에 가져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혼란케 하고 분열케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바울이 잘났고 높지 않느냐, 아볼로가 그렇지 않느냐, 베드로가 그렇지 않느냐, 하면서 말이죠.
누가 높고 누가 크고 누구를 조직적으로 앞세우는 것들이 세상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요 그런 일들은 다툼과 분열만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지혜에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 살라는 뜻이죠.
거기에 화평이 자리잡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계속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22-23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원해)22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읽으면 “사람 안에서 영광을 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너희 것이기 때문이다”하는 뜻입니다.
의역하면 사람에게서 영광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영광을 찾는 것은 세상 지혜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하나님나라에 속한 자들 아니냐, 그러니 이땅에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맡겨주신 것 아니더냐,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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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왜 그런 말을 권면하는 것입니까?
그 다음 구절에 나와 있듯이 바울이나 아볼로나 베드러ㅗ나 이 세계의 생명과 사망과 현재와 미래가 다 너희에게 맡겨준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죠.
그만큼 큰 눈을 뜨고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탐욕과 욕심에 이끌린 지혜에 미혹당하여 작은 것에 끌려다니지 말고 보다 넓은 세계를 보라는 것입니다.
유한한 이 세상 지혜에 현혹당하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본다면 어찌 이 세상 사람에게 영광을 찾으려 할 수 있겠냐는 것이죠.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소탐대실’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작은 것을 얻으려다가 큰 것을 놓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다가 영원한 세계를 놓치는 것 말이죠.
(적용)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속고 속이는 세상의 지혜를 들먹이며 서로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세상 지혜는 유한하기 짝이 없는 것이요 사람에게서 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만큼 이 세상 지혜는 작은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보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갈망하며 그 분의 세계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탐대실 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자요 하나님나라의 청지기로 함께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그 관점을 갖고 사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안에서 하나님나라로 연결된 지체로 산다면 어찌 자기 은사나 자기 자아를 강화하여 서로를 헤치는 분열과 다툼을 일삼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세상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어 서로를 품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세상과 사람에게서 찾는 지혜가 아니라 영적인 지혜를 구하며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속한 자로 화평케 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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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요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전임을 늘 기억하며 살고 있느냐?”
“큰 기적이나 유창한 방언이나 신유은사가 없어도 주님 안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며 몸과 영을 구별하여 산다면 성전이지 않겠느냐?”
“성전된 자녀들은 이 세상의 유한한 지혜나 인간에게서 영광을 찾으려는 자기 꿰를 좇는 자가 아니지 않더냐?”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여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 유한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이 세상 지혜와 이 세상 탐욕에 허덕이다 영원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았으면 좋겠구나.”
“고린도교회 몇 몇 성도들이 이 세상의 탐욕에 눈이 멀어 이 세상 지혜를 교회에 가져와 대립과 분열을 일으켰는데 너는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하지 않겠느냐?”
“이 세상의 것과 욕망에 눈이 멀어 소탐대실하기보다 오직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영원한 것을 구하며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 어떤 인간의 영화도 10년이면 끝이요 꽃도 10일이면 끝이니 오직 너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의와 희락과 화평을 좇아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것이 성전된 너의 몸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삶이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삶이 그 삶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길이지 않겠느냐?”
(찬양)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 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면 사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큰 물결이 뛰놀아도 주를 더 찬양하는가 큰 환난이 닥쳐와도 주를 더 찬양하는가
깊은 잠에 빠진 영혼 주님 만날 수 없어 근심 걱정 많은 자는 찬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찬양하는 마음 금보다도 귀하다
언제 다시 주 오실지 아는 이가 있는가 신랑으로 오실 주님 맞을 준비 되었는가
기름 없는 등불 들면 주님 만날 수 없어 재림 나팔 소리 나면 예비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맞을 준비함이 금보다도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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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나는 주님 앞에 죄인이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자녀들이 곧 성령을 모신 성전으로 사는 자들이죠.
그런 자들은 자기 몸과 마음을 구별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간에도 서로 화평을 구하며 주님 안에서 섬기는 삶을 사는 자들이 돼야 하죠.
그런데도 세상 지혜를 좇아 사람에게서 영화를 구하고자 한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있는 돈과 명예와 권력은 10년이면 끝이 나고 죽으면 다 놓고 가야할 것들입니다.
그러니 세상 탐욕을 부추기는 지혜는 유한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그것들을 얻으려다가 영원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님의 내주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그 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구하며 살 수 있는 축복의 증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주님 앞에 각자 다짐의 기도 고백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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