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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발췌)제가 존경하는 박순영 목사님이 주간기독교에 쓴 글입니다.
그 목사님의 아내는 어릴 때부터 빈혈이 심했다고 합니다.
건강이 더 악화되기 전에 수술을 받고자 계획을 세워놨습니다.
병원에서는 그 분에게 두 달 동안 조혈제를 계속 먹으라고 했습니다.
수술 전후에는 수혈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의 막바지 때 국제구호단체에서 간호사인 그 분의 아내에게 제1차 긴급구호단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고 수술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전쟁이 끝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에 간다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분의 아내는 수술을 미뤘고 2001년 12월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분의 아내는 그로부터 한 달간 고된 의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공항에서 기다리던 그 목사님은 아내의 달라진 얼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아내의 얼굴이 수척하고 또 기운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전혀 뜻밖의 얼굴이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이었죠.
늘 창백하던 두 볼이 발그레 기운이 넘쳐나는 모습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분의 아내는 현지에서 겪은 ‘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그곳에는 미국에서 온 한국인 한의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로 그 한의사 곁에서 협력사역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가 떠들썩해서 나가봤습니다.
그랬더니 그곳 현지인들이 곰을 잡아 온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산악지대라 곰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의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200불 곧 우리나라 돈으로 2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그 곰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웅담과 비장만 꺼내고 나머지는 다시금 되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한의사는 싱싱한 비장을 꺼내 사모님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모님 이것을 잡수세요”
그러자 그 사모님은 비위가 약해서 도저히 생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의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사모님, 사모님 얼굴을 보니 빈혈이 심한데, 빈혈 치료에는 이게 최곱니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해요”
그렇게 억지로 강권하자 그 사모님은 그 웅담과 비장을 콩알만 하게 썰어서 한 조각씩 입에 넣었습니다.
역겨운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도 쉬지 않고 꿀꺽 삼킨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곰이야기를 남편인 목사님에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귀국한 후에 그 목사님의 아내는 몇 번에 걸친 혈액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모자라던 모든 수치가 충족되었고 수혈 없이도 수술을 잘 마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흔히 임산부나 빈혈이 심한 분들은 조혈제나 빈혈 치료제를 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약을 만들 때 대부분 말의 비장을 쓴다고 하죠.
그 목사님의 아내는 전쟁 난민을 돕고자 의료봉사차 아프카니스탄으로 날아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남을 돕고자 갔지만 그곳에서 자기 수술을 대비한 수혈을 받고 온 셈이었죠.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눈길이 머문 곳에 순종하고 섬기고 봉사할 때 주님은 그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주님 안에서 누군가를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되게 하신다는 뜻이죠.
주님 안에서 심은 일은 반드시 거두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죠.
(적용)어떻습니까?
바로 그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자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마음과 시선이 머문 곳에 순종할 때 주님은 그 길을 통해 놀라운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2023년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요한복음 15장은 요한복음 13장부터 16장까지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강화를 통해 하신 말씀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 앞에서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 다음 수건으로 발을 닦아 주셨죠.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섬기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섬기는자가 돼야 한다(요13:12-17)고 하셨죠.
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너희에게 주는 새 계명이다”(요13:34-35)하는 뜻이었죠.
이어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로 먼저 가서 너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할 것이다(요14:1-14)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내가 떠나가면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오실 것이고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요14:16-26)하고 말씀하셨죠.
그것이 요한복음 13장과 14장에 나온 제자강화의 핵심 말씀이라면 이제 15장에 이르러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하고 말씀한 것이었습니다.
왜 포도나무에 대해 말씀한 것이었습니까?
본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나무였는데 하나님께 선택받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극상품 포도열매가 아닌 들포도를 맺고 말았죠.
그같은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율례와 법도의 말씀을 주셨는데도 그들이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를 본받아 이방 가지로 살았기 때문이죠.
그러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가지를 찍어 불태워버린다고 이사야서 5장에서 말씀하신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제자들에게 상기시켠서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하고 말씀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후에 40일이 지나면 하늘로 떠나가게 되는데 그럴지라도 나와 너희는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가지로 살 때 형편없는 열매를 맺고 찍어 불태움을 당한 걸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만큼은 절대로 그런 전철을 밟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야 극상품포도열매와 같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한 것이었습니다.
(본문)그런 뜻을 새기면서 오늘 본문의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원해)여기에 ‘내 안에’ 할 때 ‘안에’라는 말은 헬라어로 ‘ἐν’(엔)입니다.
그 뜻은 ‘지역적으로’ ‘-에’(in by with)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사람과의 관계(in by with)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기도를 통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할 때 ‘하늘에’ 할때도 ‘ἐν’(엔)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죠.
그렇게 지역적인 의미로 ‘ἐν’(엔)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ἐν’(엔)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할 때 ‘안에’라는 말이 계속사용되는데 바로 ‘ἐν’(엔)이죠.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떠나가도 너희들은 성령을 통해 “내 안에”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깨달음)그렇다면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죠.
나의 자아와 나의 고집을 내려놓는 것, 내 육체의 소욕을 내려놓고 성령의 소욕을 쫓아 사는 것을 말하죠.
바울이 말한 것처럼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거기에도 ‘내 안에’ ‘믿음 안에’라는 단어가 본문에 사용된 ‘ἐν’(엔)입니다.
그것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도 마찬가지죠.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에는 세상에 속한 자요 마귀에게 속한 자였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부터 새로운 피조물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이죠.
그 말씀 속에도 ‘그리스도 안에’라는 단어 곧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가 사용된 것이죠.
(적용)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는 새롭게 된 피조물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성령께서 인치신 자요 성령님께서 그 안에 내주하시는 자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요 육체의 소욕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사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예수의 영을 받은 사람 성령이 내주하시는 사람의 차원은 달라진다는 뜻이죠.
그 전까지는 자기 자아가 모든 삶의 주체가 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주님의 눈과 마음이 머문 곳에 그의 삶을 새롭게 살게 된다는 것이죠.
그 목사님의 사모님이 빈혈로 인해 수술을 예약해 놨지만 아프카니스탄의 의료요청 앞에 그곳에 주님의 마음과 눈길이 쏠려 있음을 보고 순종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육체의 사람과는 다른 성령의 사람이 행하는 모습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인 줄 믿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열매를 거두는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2023년 송구영신을 맞이하여 이 밤에 주님께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2024년 한 해에는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의 은혜 곧 주님 안에 거하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2023년을 주님 안에서 살아온 삶이었는지 아니면 주님 밖의 삶을 좇아 살아왔는지 돌아봤으면 좋겠구나.”
“주님과 무관한 자의 삶은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눈길이 쏠린 그 시선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삶이지 않겠느냐?”
“그러나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매사에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눈길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이지 않겠느냐?”
“그 사모님도 빈혈 때문에 수술을 예약해놨지만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눈길이 쏠린 아프카니스탄에 의료봉사로 참여할 때 뜻밖의 웅담을 준비하셔서 그 피를 채워주지 않았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2023년 한 해를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간에 2034년 한 해에는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 네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너의 자아와 같은 육신의 소욕보다 오직 성령의 소욕을 좇아 순종할 때 너를 통해 2024년 놀라운 축복의 통로로 삼지 않겠느냐?”
“네가 십자가에서 죽고 십자가를 통해 다시 살 때 보혜사 성령께서 네 안에 내주하셔서 2024년 더욱더 선한 길로 친히 인도하시지 않겠느냐?”
(찬양)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발췌)이 이야기 역시 박순영 목사님이 주간기독교에 쓴 내용입니다.
중병에 걸린 선비 한 사람이 당대의 명의를 찾아가 치료법을 물었습니다.
진맥을 마친 의사는 선비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대의 병은 7년 묵은 쑥이 있어야 고칠 수 있소.”
선비는 “엄동설한에 쑥이라니, 더구나 7년이나 묵은 쑥을 어떻게 구한단 말입니까?”하고 절망했습니다.
대문을 나서기만 하면 지천으로 깔린 게 쑥이라고 하지만 이 겨울에, 더욱이 7년이 묵은 쑥을 구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처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죽을 날만 기다릴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보자”하고 봇짐을 싸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는 전국 방방곡곡을 ‘7년 묵은 쑥’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 누구에게서도 7년 묵은 쑥은 없었습니다.
1년 또는 2년쯤 묵은 쑥은 간혹 있었지만 해마다 흔하게 나는 쑥을 7년씩 묵혀 보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병을 얻은 지 7년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선비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박한 죽음을 앞둔 선비는 불현듯 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아, 의원이 처방을 내려주던 그해에 내가 그렇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내 집 앞에서 쑥을 뜯어 잘 갈무리해 두었다면 지금 7년 묵은 쑥을 써서 나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 같습니까?
귀하고 소중한 것은 항상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지금’ ‘여기에’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내가 죽을 날이 되거나 그 몸에 병들어 약할 때가 되면 그때 가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겠다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때 가서 예수님을 영접하겠다는 사람과 7년된 쑥을 구하러 찾아다니다 한탄한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후회는 지나간 기회를 다시금 오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잃은 것을 다시 찾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떠나간 이와의 관계를 다시금 회복시킬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지금부터 2024년이 밝아오는 이 시간부터 ‘주님 안에’ 거하는 삶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것만이 2024년 한 해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은혜의 비결인 줄 믿습니다.
(적용)그래서 성경은 고린도후서 6장 2절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2024년이 밝아오는 지금 이 순간부터 저와 여러분 모두가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좇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그 은혜가 임하는 때요 지금부터가 그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때요 지금부터가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는 때인 줄 믿습니다.
그와 같이 주님 안에서 살고자 결단하는 자녀들에게 주님께서 그 사모님보다도 더욱 놀라운 일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내기도)그렇기에 2024년을 바라보는 우리가 주님께 기도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네요.”
“7년된 쑥은 다른 지역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근처에 있었네요.”
“나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회복해 주시고 치료해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길도 지금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 달려 있었네요.”
“주님. 2023년 한 해를 주님 밖에서 살아왔다면 2024년은 주님 안에서 살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그것도 2024년 내가 깨지고 넘어지고 쓰러질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새 해가 밝아오는 지금 이순간부터 그런 삶을 결단하길 원합니다.”
“그런 저에게 보혜사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시고 나의 연약함도 나의 무능함도 성령님의 권능안에서 새롭게 빚어주시고 새 힘을 공급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2024년 한 해에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 주님 안에서 살아갈 때 그 사모님과 같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님의 지혜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없으면 나는 한순간도 못 삽니다 주님의 생명이 없으면
이제 내가 사는 것 아니요 그리스도 내 안에 사시니 오직 그의 생명이 나의 생명 나의 모든 날들도 주의 것
나는 오직 한 분 바랍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구원 나의 주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실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서 내 안에 살 때 내가 이 세상에 생명력을 지닌 능력을 지니며 살 수 있는 것이죠.
2023년을 어떻게 살아왔든지간에 이제 밝아오는 2024년을 ‘‘εν χριστω’(엔 크리스토) 주님 안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뭔가 살아보고 몇 개월 살아보고 그래서 코가 깨지고 넘어지고 쓰러질 때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그 삶을 결단하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임하길 축복합니다.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게 소원이시듯이 그 은혜를 저와 여러분들에게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리하여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도록 주님 앞에서 2024년의 고백의 기도 다짐의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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