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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예화)짐승들은 물에 집어넣어도 물에 빠져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수영할 줄 모르면 허우적거리다가 금방 빠져 죽죠.
그런데 수영 한 번 배운 적이 없는 개나 고양이는 어떻게 죽지 않고 체험을 잘 치는 걸까요?
과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짐승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물에 몸을 맡기고 발을 움직이기 때문이죠.
제 고향 후배가 트랙터로 밭을 갈 때 수영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자기 동생에게 수영을 가르쳐 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물에 뜨는 것 하나에다 자기 동생의 손을 모두 묶어서 깊은 저수지에 놔두고 나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 동생이 수영을 잘 하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수영을 쉽게 배우는 방법은 물에 자기 몸을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엔 가라앉을 수 있지만 그럴수록 물에 몸을 맡기면 조금 후에는 물 위에 뜨게 되죠.
그때부터 손발을 저으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만큼 물에다 몸을 맡기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깨달음)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좇아 살던 기준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뜻이죠.
그때부터 크리스천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 안에서 죽고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이죠.
그만큼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맡길 때 크리스천으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을 신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단계에서도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할 때 영적으로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죠.
중국내지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선교사 생활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아서 너무 고민한 나머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죠.
몸과 마음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영국에 있는 누나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그 누나가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너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푹 쉬는 법을 배워라.”
“포도나무 가지가 원줄기에 잘 붙어 있기만 하면 영양분이 올라와 꽃필 때 꽃피고 열매 맺을 때 열매맺게 되는 거야.”
허드슨 테일러는 그 편지를 받고 난 후에 그래도 했더니 마음에 평안을 되찾고 몸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도 자신의 선교활동 자체를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겼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적용)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모습도 그와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크리스천의 믿음은 수액을 흘러보내는 소나무와 같습니다.
소나무에 수액을 잘 흘려보내려면 속에 가로막힌 게 없어야 합니다.
그만큼 육에 속한 자아나 고집이나 교만을 깨트리고 오직 하나님께 내어맡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는 자들을 열매 맺게 하시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2023년 송년주일을 보내며 새로운 2024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요한복음은 A.D.90년경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 섬길 때 소아시아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구원자임을 천명코자 쓴 것이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밝히고자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7가지 기적’과 ‘7가지 존재증명’을 밝혔죠.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요2:1-12)이 첫 번째 기적입니다.
두 번째 기적은 왕의 신하가 앓고 있는 병을 예수님께서 직접 가지 않고 원격으로 고치신 기적(요4:46-54)입니다.
세번째 기적은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친 기적(요5:1-9)입니다.
네 번째 기적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토막으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요6:1-14)입니다.
다섯째 기적은 물 위를 걸으신 기적(요6:16-21)입니다.
여섯째 기적은 소경을 고친 기적(요9:1-7)입니다.
마지막 일곱번째 기적은 죽은 지 나흘 돼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살려내신 기적(요11:1-44)이죠.
사도 요한이 그와 같은 7가지 기적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사물의 질도, 양도, 공간도, 시간도, 자연법칙도, 타고난 운명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초월하는 분임을 알려주고자 함이죠.
예수님이 만약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아들이라면 결코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없지만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충분히 그런 기적을 행하신 분이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그런 기적과 함께 ‘예수님의 7가지 존재증명’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밝혀줬습니다.
존재증명이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εἰμι〜 ἐγὼ’를 말하는 것이고 영어로는 ‘I am that I am’(나는 –이다.)하는 말이죠.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41,48,50,51,58)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9:5,12:46)
“나는 양의 문이다”(10:7,9)
“나는 선한 목자다”(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5)
그리고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나는 왕이다”(18:37) 하는 존재증명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물론 ‘에고 에이미’ ‘나는 나다’하는 그 말씀은 예수님이 처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게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한다고 말씀할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할까요, 하고 물었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הָיָה הָיָה하야 하야, I am that I am-나는 나다)”(출3:14)하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히브리어를 70인역 성경에서 “에고 에이미(εἰμι〜 ἐγὼ)”로 번역했는데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자신에게 적용해서 사용한 것이죠.
요한복음 13-16장은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강화의 시간을 가진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간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가 가까이 온 상태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신 것이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고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그 발을 밝을 닦아주셨죠.
그러며서 너희들도 서로 섬기는 자가 되라(요13:12-17)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35)하셨죠.
그러면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서 너희의 거처를 예비할 것이다(요14:1-1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데 보혜사 성령님이 너희에게 올 것이다(요14:15-31)고 말씀하셨죠.
(본문)그리고 요한복음 15장을 통해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통해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에 대해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후 40일간 제자들과 지내다가 승천하게 되죠.
그 후에 나와 너희들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돼야 하는지를 본문의 포도나무와 가지를 통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깨달음)무슨 뜻입니까?
“너희들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로 그 안에 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지금 너희들을 떠나가지만 너희들과 나의 관계는 정말로 밀접한 관계임을 알라”는 뜻입니다.
“너희들은 나와 항상 긴밀하게 연합돼 있지 않으면 안 된다”하는 것이죠.
“포도나무와 가지가 완전히 붙어 있어야 하나의 유기체가 될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나와 너희의 관계가 그래야 된다”하신 뜻입니다.
(깨달음)그런데 왜 하필 ‘포도나무’를 예로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까?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로 이야기 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져온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시편 80:8-11)
그런가 하면 예레미야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그들이 악한 가지가 되었다고 탄식하죠.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더욱이 이사야 5장을 통해 그포도나무가 극상품포도열매를 맺기를 바랐는데 그들이 들포도를 맺었다고 실망합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사5:2)
(원해)‘극상품 포도나무’란 히브리로 ‘쇼레크’(שׂרֵק)로 ‘최상의 포도’라는 뜻과 함께 ‘붉다’(שָׂרֹק reddish)는 뜻이 있는 단어죠.
그만큼 좋은 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을 뜻하기도 하는데 예루살렘 바로 언덕 밑에 있는 마을이 그런 지역이라고 하죠.
우리나라로 치면 ‘이천 쌀밥’을 알아주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극상품 포도는 ‘쇼레크’지방의 붉고 탐스러운 포도인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극상품 포도나무처럼 이스라엘 선택하셔서 최고 선민이 되는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머리가 세계 최고인 이유도 그런 차원이죠.
미국을 이끄는 석학들과 경제계 인물들이 대부분 유대인들이죠.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바로 그것이 극상품 포도열매를 바랐는데 도리어 들포도를 맺었다고 탄식하는 것과 같은 격이죠.
그런 포도나무 가지라면 황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사야 5장 4-7절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사5:4-6)
(적용)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포도열매를 맺지 못한까 결국은 울타리를 걷어 짓밟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짓밟힌 가지처럼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떠나 가나안의 원주민들의 삶에 동화되고 애굽 방식과 세상 왕들의 방식을 좇아 살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맡기기 보다 이 세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를 좇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탐스러운 포도열매를 맺는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들포도에 불과하다고 탄식한 것이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너희를 떠나갈지라도 너희들은 나와 관계를 맺는 가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삶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하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로 이것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는 삶이요 주님 안에서 열매맺는 삶”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선택한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누구든지 수영을 잘하고자 한다면 그 몸을 온전히 물에 맡겨야 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자녀가 극상품포도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그 몸과 영혼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보다 가나안 방식과 세상 방식에 빠져 산 것 아니었더냐?”
“하나님께서는 그걸 탄식하셔서 그들이 들포도열매를 맺었다면서 이방 민족에게 짓밟히고 불탈 것을 말씀한 것 아니더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가면서 포도나무의 가지로 제자들이 붙어 있을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한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안에 네가 거하고 있는지 너 스스로 점검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만약 주님께서 네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너와 주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성립될 수 있겠느냐?”
“네가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겪어도 주님께 너의 몸과 영혼을 맡긴다면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부어주지 않겠느냐?”
“주님께서는 네가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느냐보다 네가 주님 안에 더 거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 귀히 보시는 분이지 않겠느냐?”
“바로 그런 자들을 통해 주님께서는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지 않겠느냐?”
(찬양)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전개)오늘 1절부터 5절까지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면 ‘내 안에 거하다’하는 단어입니다.
‘거하다’는 헬라어 ‘메노’(μένω)는 ‘머물다’(abide) ‘기다리다’(await)는 뜻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단어는 “생명이 끊임없이 흐르다”는 뜻입니다.
나무에 수액이 흘러야 그 생명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요한복음 15장에만 13번이나 나옵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는 이 단어가 120회나 기록될 정도죠.
그만큼 주님 안에 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제자들에게도 그리고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생명이 끊임없이 흐르기 위해서는 그분의 존재 앞에 나아가야 하고 그 분을 갈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그 원나무를 붙잡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화)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이 발뒤꿈치를 붙잡고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버리고 야곱을 택하셔서 12족속과 이스라엘 민족을 잇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이 에서보다 더 능력이 있고 더 월등해서 그런 것입니까?
야곱이 잘한 것은 집안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는 것뿐입니다.
에서처럼 들판에 익숙한 사냥꾼도 아니었고 뛰어난 업적과 능력을 자랑하던 아들이 아니었죠.
그런데도 야곱이 이스라엘의 12민족을 잇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의 생명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기꾼 기질을 갖고 태어난 야곱이 온갖 흠결 속에서도 이스라엘 12민족의 열매를 거둔 비결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적용)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자기 부족함과 허물이 있음을 알고서도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자식이 잘못했을 때 꾸중 들을 게 뻔하지만 그런데도 부모 앞에 나아오는 자식을 어떤 부모가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자녀들에게는 더 많은 것들을 해 주고 싶어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바라보시고 복을 주시고자 하는 마음도 그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비록 에서처럼 능력도 자랑거리가 없어도 야곱처럼 아버지의 품 안에 거하고자 하는 자녀들을 주님께서는 더욱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 삶이 하나님의 생명 안에 머무르는 삶이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맺는 삶의 비결이라는 점입니다.
(발췌)연동교회를 섬겼던 이성희 목사님이 1971년 군대에서 겪은 일입니다.
그 당시 퇴계로에 있는 대연각에 크리스마스 아침에 큰 불이 났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은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대 졸병으로 군 생활을 하고 있던 때였죠.
밤새 헌병들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막 잠을 자려고 하는 데 곧바로 비상이 걸린 것이었습니다.
모두 화재 현장으로 출동하라는 것이었죠.
모두 잠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그날 온 종일 현장에서 거리 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묶고 있던 투숙객들이 옥상으로 피신했고 곧바로 헬리콥터가 출동하는 것이었죠.
그중 한 투숙객이 헬리콥터에 매달려 가는데 그만 공중에서 밧줄을 놓쳐버렸습니다.
그 일로 그 몸이 길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그 자리에 있던 헌병대원들이 모두 목격한 것이었죠.
그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한결같이 비명을 지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고 매달려 있었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말이죠.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사건입니까?
그 투숙객이 붙잡은 헬리콥터 줄은 생명줄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단단히 매달려 있다려 있는 것만이 그가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었습니다.
(적용)그것은 크리스천에게도 똑같은 영적 원리이지 않겠습니까?
수영을 잘하라면 몸과 마음을 물에 맡겨야 하듯이 헬리콥터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그 밧줄을 놓치지 않아야 되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원하는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참 생명이신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디모데후서 4장 9절은 너무나도 서글픈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할 가지가 스스로 주님을 떠난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스스로 나무를 버리는 것은 자살 행위와 같은 격입니다.
그런 가지는 더 이상 가지로서 살 수가 없는 것이죠.
(찬양)그래서 복음찬송 가운데 너무나도 은혜로운 찬송이 있지 않습니까?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주님여 날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험악한 세상에서 영생이신 주님의 손길을 놓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주님 안에 거하는 삶뿐입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주님의 가지로 붙어 있어야만 이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승리할 수 있는 거죠.
수영을 잘하는 비결도 그 물에 자기 몸과 영혼을 맡기는 것 아닙니까?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비결도 오직 주님께 우리의 몸과 영혼을 맡기는 주님의 가지로 사는 길 뿐입니다.
헬리콥터의 밧줄을 호텔투숙객이 놓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죽지 않고 생명을 건져올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에 이 세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가 유혹해도 오직 주님 안에 붙어 있는 가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자녀들에게 주님께서 극상품 포도열를 맺게 하시도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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