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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27:32-56)

by 권또또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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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빌라도 총독의 군병들, 곧 로마 군병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당장 벗기고, 대신에 홍포 곧 유대인의 왕을 상징한다는 그 붉은 왕의 관포를 입혔죠. 그리고 왕의 면류관이긴 하지만 진정한 면류관이 아닌 십자가 가시 면류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죠. 더욱이 왕이 지녀야 할 ‘금 홀’ 또는 ‘금 규’를 들려드린 게 아니라 ‘가느다란 갈대 홀’을 오른손에 들려줬죠. 그리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어제 읽은 29절의 끝 절 부분처럼 그들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을 했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침을 뱉고, 그 갈대 홀을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쳤죠.

그런 로마 군병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죄수를 처형하는 망나니들의 의식과 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칼을 위 아래로 흔들고, 또 거기에 물 한 모금을 마신 그 물을 칼에 붓고, 그리고 죄수를 한 바퀴 돌면서 희롱하는 모습 말입니다.

그들이 희롱을 끝낸 다음에는예수님에게 입혔던 홍포를 벗기고, 다시금 예수님이 입었던 옷을 입히고, 그리고 이제 십자가에 못 박는 현장, 곧 골고다 언덕길로 향하죠. 그런데 오늘 본문 32절은 뜻밖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길로 향하게 하는데, 그 중간에 구레네 사람 시몬, 곧 북아프리카 출신의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억지로’ 가게 한 모습이죠. 여기에서 ‘억지로’ 짊어지게 했다는데, 그 ‘억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가레오우’(ἀγγαρεύω)는 페르시아의 특사를 의미하는 단어로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말을 타고 신속하게 전달한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이 부분을 새번역성경에서는 ‘강제로’라고 번역해 놓고 있는데, 실은 그게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억지로’라는 의미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뜻이 반영된 단어지만, ‘강제로’라는 의미는 로마 군병들의 뜻이 더 반영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가 볼 때 그가 억지로든, 강제로든, 그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힘들고 고달픈 일이지만, 먼 훗날 그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짊어주시는 주님의 십자가가 있다면, 그것을 억지로든 강제로든 짊어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 우리도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각자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나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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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북팟- 교보ebook

하루 한 장 욥기서 읽고 묵상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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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 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다는 이 부분에 대해 무슬림들, 알라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그들, 자신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여기는 이스마엘의 후예들인 그 무슬림들은, 지극히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고 그래서 예수님을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보고 있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믿지 않고 있는 그들은 그래서 그들의 성경으로 여기는 ‘쿠란’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게 아니라 본문의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죽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이제 골고다 언덕, 본문 33절의 해골의 곳이라는 골고다 언덕에 올랐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함이죠. 그런데 왜 하필 해골을 칭하는 그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만 했을까요?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 골고다가 해골의 뜻을 지닌 이유는 그곳이 해골 모양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곳에 아담의 묘지와 해골이 있었다는 까닭에, 그리고 그곳에 수많은 시체들의 해골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곳이 해골 곧 골고다로 불린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우리도 실은 아득한 옛날에 사람들의 해골이 묻혀 있는 그런 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경우일지도 모른다고 했죠.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내가 살고 있는 집도 그 아득한 옛날의 선조들의 무덤 터였을지, 혹은 이름 없는 나그네의 묘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이 세상이 실은 다 해골의 무덤터와 다르지 않고, 나도 언젠가 해골에 처해진다는 사실이죠. 그런데 그 해골이 산적해 있는 골고다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당신의 십자가 보혈을 흘리실 때 그 보혈을 정수리에 적시는 해골마다 다시 살아나는 은총을 덧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 자신도 죽을 수밖에 해골 바가지에 불과하지만 주님의 보혈의 은총을 나의 정수리에 받으면 해골 바가지에 불과한 나 자신도 진정으로 살 수 있는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이죠. 그것이 골고다 언덕이 주는 진정한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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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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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4-37절까지는 골고다 언덕 곧 수많은 해골들이 산적해 있는 그곳 위에다 십자가를 내려놓은 로마 병사들이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도록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른바 유대인들의 관습으로서 고통을 덜게 해 줄 때 포도주에 쓸개를 타서 마시게 했다고 하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셨죠. 온전한 고통을 다 받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예수님의 옷을 벗겨서 제비 뽑아 나눠 가졌고, 또 머리 쪽 윗 편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 패를 붙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장면에서 두 명의 강도도 예수님처럼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이 나오고, 그리고 그 곁을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는 모습도 나오죠. 본문 40절의 후반부처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말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42절 말씀처럼 “저가 남은 구원했어도 자기는 구원할 수 없구나”하고 희롱하고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죠. 그리고 43절의 말씀처럼 또 다른 이들은 “저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만일 하나님이 원하시면 아마 살려주지 않겠느냐”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도 실은 진정으로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비아냥거리고 희롱하고 조롱하는 목소리죠. 그런데 본문 44절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고들도 이와 같이 하더라”, 곧 오른편 강도도, 왼편 강도도, 그 사람들처럼 함께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두 강도가 똑같이 희롱하고 조롱했지만 누가복음 23장 42절에 보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걸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두 강도 모두 처음에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른쪽 강도의 심령에 변화가 생긴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죠. 그에게 임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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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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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오른편 강도만 그렇게 변화되었습니까? 십자가 아래의 로마 군병도 그렇고, 거기에 있는 어머니들도 분명 변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45-54절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제 육시 우리 시각으로 오전 9시에 못 박히시고, 제 9시 곧 오후 3시에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때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러자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는 일들도 일어나고, 무덤이 열리고 자던 자들이 일어나는데, 그때 로마 백부장 그 군병들의 총 책임자가 그 모든 일들을 목격하면서 고백을 하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 55절-56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 갈릴리에서부터 따라 온 여인들 곧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또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실은 이 마리아들, 곧 그 어머니들이 서로 이질적인 분들이죠. 태생도, 삶의 과정도, 배경도 전혀 다릅니다. 심지어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을 영의정 좌의정 자리를 탐하던 그 어머니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이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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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줌, 그 깊은 사랑 | 권성권 - 교보문고

안아줌, 그 깊은 사랑 | 작은 교회의 목사가 길어올린 영감의 글이 책은 자유로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쓴 ‘2019년도 목회일지’입니다. 교우들과 함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눈 ‘묵상일지’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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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본문을 대할 때 느끼는 게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그 어머니들이 적어도 한 마음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나도 부모님을 위해 나의 십자가를 질 때 부모님의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위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부모로서 자식의 십자가를 헤아리며 사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런 은혜의 하루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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