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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마27:57-66)

by 권또또 202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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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골고다, 히브리어 음역 그대로 ‘갈보리’, 곧 해골 더미가 쌓여 있는 그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금요일 날 새벽에 빌라도 공관의 법정에서 온갖 심문과 희롱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그날 아침에 골고다 언덕길로 향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때 십자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예수님을 조롱했고,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좌우편의 강도들도 희롱했죠. 그런데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오후 3시, 그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셨죠. 그때까지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하던 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른편 강도도 처음엔 주님을 희롱하고 조롱했지만 나중에는 예수님을 향해 ‘당신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간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죠. 십자가 아래의 군병들을 통제하던 백부장도 천지가 어두워지고 땅이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는 그 모습들을 보고서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하고 고백하게 되었죠. 심지어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 곧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리고 세대배의 두 아들 곧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실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 서쪽 항구인 디베랴 북서쪽의 가버나움에서 3마일 가량 내지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죠. 농업과 상업과 조선업이 번창한 상업도시로서, 로마의 이름난 도시마다 세워져 있던 원형경기장이 그 막달라에도 세워져 있었는데 수많은 남성들과 여성들이 그곳을 찾아 돈과 명예와 욕망과 쾌락을 추구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죠. 그곳 출신의 마리아도 그런 욕망과 쾌락을 좇다가 일곱 귀신이 들렸고, 육체와 정신과 영혼까지 타락한 창녀의 삶을 살고 있었죠. 그런 그녀에게조차 주님은 찾아와 일곱 귀신을 내 좇아주셨고, 그때부터 주님 안에서 정돈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아래에는 막달라 마리아 뿐만 아니라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이 마리아를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동생들의 어머니, 곧 예수님의 친어머니 마리아가 아닙니다. 보통 예수님 주변의 ‘야고보’는 세 명이 있죠. 한 명은 요한의 형제이자 세베대의 아들인 큰 야고보입니다. 다음은 알패오의 아들인 작은 야고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이 바로 예수님의 형제요 동생인 야고보죠. 그런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보통 ‘작은 야고보’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또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가 있는데 그는 ‘큰 야고보’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작은 야고보는 그가 세배대의 야들 야고보보다 몸짓이 작던지 아니면 나이가 어리든지 해서 ‘작은 야고보’로 불린 것으로 추정을 하죠.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19:25)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그 마리아가 본문의 마리아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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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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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세리 마태의 아버지 이름이 ‘알패오’(막2:14)라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해 본문에 나오는 야고보 곧 ‘작은 야고보’와 세리 ‘마태’는 둘 다 형제라는 점이죠. 그런데 마태와 야고보는 형제였지만 사상적으로는 완전히 대립각이었습니다. 마태는 헤롯 안디바의 앞잡이로서 로마 제국이 지배하는 행정 기관의 세리였고, 야고보는 보수적인 국수파로서 로마에 협력하는 사람들을 모두 원수로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두 아들, 아니 요셉까지 세 아들을 둔 어머니 마리아로서 얼마나 답답했을지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 어머니마리아도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나와 있는 상황이고, 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십자가 아래에 또 한 명의 마리아, 곧 세대배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도 함께 하는 상황입니다. 이른바 ‘큰 야고보’의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실 때에 자기 아들들에게 영의정 좌의정, 세상의 권세를 요청한 어머니였습니다. 그 어머니 마리아도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지금 세 명의 마리아, 세 명의 어머니들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이질적인 어머니들입니다. 자기 배 속에서 낳은 자식들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어머니들이요, 그들의 고향도 살아온 배경도 전혀 다른 부모들인데, 적어도 십자가 아래에서만큼은 한 마음 한 뜻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자식으로서 부모를 위해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부모로서 자식의 십자가를 헤아리며 사는 것도 주님의 크신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가장 귀한 일은 부모님의 언로를 터주는 것,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귀담아 듣고, 무겁게 여길 때에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1-3) 여기에서 ‘순종하라’는 헬라어 동사의 의미는 ‘listen’(들으라)는 뜻이고,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카바드’는 ‘무겁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부모님의 말씀을 뼛속 깊이 무겁게 여기는 것, 그 무엇보다도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향한 십자가를 짊어지는 첫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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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권성권 - 교보문고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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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사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되신 모습과 로마 경비병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57절을 보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금요일날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시신을, 이제 날이 저물기 전에 무덤에 안치하려고 하는데, 아리마대 출신의 부자 요셉이 나서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는 모습입니다. 본문 59절에는 그가 예수님의 시체를 세마로 곧 수의천으로 싸서, 자신이 훗날 무덤으로 쓰려고 준비해 놓은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하는 모습이죠. 물론 요한복음에서는 요셉이 무덤을 준비하고 있고, 니고데모가 향유와 삼베수의천을 준비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향유로 염하고 그 수의천 감싸서, 동굴 무덤에 안치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사실 요셉이나 니고데모 역시 그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제자임을 감추었는데,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 앞에 하나님의 아들임을 그들도 깨달았고, 그래서 드러내놓고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만 천하에 공개한 것이죠.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자는 그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본문 62-66절까지는, 그 이튿날 곧 토요일날 날이 밝자마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를 찾아가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평소 하신 말씀을 그들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그 말씀 말입니다. 사실 그 말씀은 제자들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예수님의 반대편에 선 자들이 더 또렷하게 기억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갈지 모르고, 그래서 살아났다고 꾸며댈지 모르니, 빌라도에게 더욱더 철통같은 경비를 세우도록 당부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이 막아선다고 막아설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무덤으로 가둬놓는다고 해서 갇히는 분이 아니라는 걸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으로서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이 땅에 먼저 보내주신 부모님을 모시는 자녀들의 마음도 똑같아야 한다는 사실이죠. 부모님의 뜻과 말을 자녀들이 제한하려고 하거나 차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뜻과 말씀을 차단할 게 아니라, 더 깊이 받들어드리는 것이 곧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온전히 받드는 자녀들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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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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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받드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받들 듯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먼저 보내주신 이 땅의 부모님들의 뜻을 제한하지 말고 깊이 받드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당신의 부모를 잘 받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그런 은혜가 함께 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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