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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마19:1-15)

by 똑똑이채널 202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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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이혼율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201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316쌍이 이혼을 하는 추세였습니다. 2013년 한 해 동안 결혼한 쌍은 32만 5천 쌍이었는데 이혼한 부부는 11만 5,300여 쌍이었습니다. 결혼한 부부 숫자의 1/3해당하는 가정이 파경을 맞고 있다는 뜻이죠. 오늘날 이혼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어려움을 겪는 일을 가족이나 친지 등,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이혼이라는 문제가 단지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만 대두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였죠.

실제로 예수님 당시에 유명한 랍비로 칭송받던 힐렐이란 랍비와 그를 추종하던 후대의 랍비들은 그런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빵을 태우기만 해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이혼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 로마제국에서는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이성을 만났을 경우, 그것만으로도 이혼이 가능하도록 법적인 조치까지 취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으니, 피지배국가인 유대 사회도 로마의 이혼 문화를 본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혼의 타당성을 어디에서 찾았겠습니까? 로마의 법이나 로마의 문화에서 찾는 게 아니라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둔 민족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도 자신들의 이혼에 대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신명기 24장 1절 말씀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하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 근거해서 바리새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편이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부분을 가지고 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 시험하는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사실 이들은 이혼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가 옳은 지 그른 지를 예수님께 묻고자 나온 게 아니죠.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진정한 견해를 듣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책을 잡으려고 질문한 것이었죠.

바리새인들이 세운 계략은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혼이 정당하다고 대답할 경우에 그들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여성과 어린이들 같은, 약자들의 친구로 자처해왔는데, 만약 이혼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여태 가르쳐온 말씀과 스스로 배치되는 행동이라면서 예수님을 몰아세울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님께서 이혼이 부당하다고 대답한다면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4장 1절에 근거하여 모세의 율법을 부인하는 자라고 또 고소할 작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든지간에 그들은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넣을 계략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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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해 주셨습니까? 본문 8절을 통해 모세의 율법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켜 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모세의 율법에 이혼을 허락한 것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허용한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던 그 시대에 아무런 이혼 서류 없이 남편에게 버림받을 여인을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이혼장을 쓰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혼장을 가진 여성은 다시금 새로운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죠. 물론 그것과 동시에 이혼을 하기 위해서 까다로운 절차를 밟게 했는데, 그것 역시 이혼을 줄이려고 하는 고육책이었지 이혼을 장려하거나 지지하는 장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모세의 율법이 지닌 근본취지라고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오해를 풀어주신 예수님께서는 결혼의 본래 의미와 부부관계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 4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그 당대에 부부관계나 결혼에 대해 위기를 맞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른바 결혼은 서로가 서로를 짝 지어 만난 것 같지만 실은 그 너머에 섭리하신 하나님께서 짝을 지어주신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젊은 사람들, 오늘날 결혼을 앞둔 신앙청년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결혼과 부부관계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으로 여기는 것 말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결혼은 내가 사랑해서 선택하는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내가 사랑한 선택이기에, 나의 사랑이 흔들리고, 나의 생각이 바뀌면,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신뢰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구나”하고 후회하고 통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래서 뭔가를 고쳐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결정해 버립니다.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내다보고 계획한다지만,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재혼이 생각한대로, 설계한 대로 되는 일입니까? 재혼만 한다면 멋진 인생이 다시 펼쳐지는 일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죠. 그 놈이 다 그 놈이고, 그 년이 다 그년이다하는 우스개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의 결혼관, 신앙인들의 부부관계의 기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서로를 짝 지어 주셨다고 믿고, 절대적으로 의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법이죠. 그래서 갈등하는 관계에 있을 때,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에 있을 때, 먼저 확인해 봐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임을 인정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죠. 에덴동산에서 살 때 아담에게 짝지어주신 사람은 하와 한 사람밖에 없었던 것처럼, 온 인류를 통틀어 준비된 배우자는 하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사람은 지금의 남편, 지금의 아내, 그 한 사람 뿐이었다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죠. 물론 오늘 주님께서 본문 9절을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음행한 일 없이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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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 없이 다른 문제와 다른 갈등의 차원이라면, 크리스천 부부는 본문의 5절 말씀을 결혼과 부부관계의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하신 말씀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멋진 말들을 젊은이들에게 해줍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고 살고, 결혼 후에는 한 눈을 감고 살아라. 부부싸움도 하나의 애증의 관계요 부부싸움이 없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니, 지혜롭게 부부싸움도 해야 하고, 부부싸움은 링 안에서만 하도록 하라, 하고 말입니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내가 아내에게, 남편에게 양보하고 도 충돌을 잘 조절하는 법도 배워가며, 한 몸으로 이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혼 한 후에 자기 시선을 맞추도록 상대방에게 요구할 게 아니라, 두 개의 시선이 있음을 인정해주는 게 지혜로운 방법이죠.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선을 통해 관용과 인내를 배워가며 온전한 관계로 성장하게 되는 법이니 말입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성경은 아내를 향해 남편에게 복종하라, 성경은 아내를 향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죠. 그것이 아내가 가정을 세우는 지혜죠. 남편을 옛 어르신들처럼 ‘하늘 같은 남편’으로 받들면 가정이 평안해집니다. 또 남편들도 아내를 그렇게 대해야 하죠. 본래 ‘아내’란 ‘안 해’에서 온 말로 ‘집안의 해’가 있어서 그 가정이 따사롭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집 안에 해처럼 하늘 같은 남편이 그 아내를 태양처럼 품어주는 게 남편으로서의 도리겠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아내와 남편이 살 때 둘이 한 몸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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