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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일곱 번에 일흔번씩이라도(마18:21-35절)

by 똑똑이채널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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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은 마태복음 18장 1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큰 자인지 말입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누가 영의정 좌의정 하는지, 거기에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이죠.

그때 예수님께서는 주변에 있던 아이를 하나 불러 세우고, “어린 아이와 같지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해 주셨죠. 주님의 대답은 긍정적인 답변이 아니라 매우 부정적인 답변이셨습니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완곡어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내 제자라면 이 아이처럼 겸손한 자로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자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낮추며 사는 자가 이 땅에서 천국을 일굴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하나님을 믿는데 그를 실족하게 하여 죄에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게 낫다고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정도로 작고 연약한 자, 곧 어린 아이와 같은 초신자들을 결코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성숙한 신앙인이 신경을 쓰며 살라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들이 오른 손이나 발이 죄를 범한다면 그 발을 찍고 손을 잘라 버리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네 눈이 너를 범죄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린 채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까지, 완곡어법으로 말씀해 주셨죠.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만큼 너희 스스로도 죄에 걸려 넘어지지 말 뿐만 아니라, 타인을 죄에 걸려 넘어지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숙한 신앙인일수록 자기 자신의 삶을 늘 가다듬으며 살라는 뜻이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수 있지만,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된 이들에게 모범된 삶, 겸손한 삶, 실족케 하지 않는 삶을 살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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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문 15절에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의 대처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신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세 단계를 거치도록 하셨죠. 먼저는, 가장 신뢰성 있는 사람이 혼자 찾아가서 권면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가 가서 권면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해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신뢰성 있는 한 사람을 포함해 두세 사람의 증인으로 그 사람을 찾아가 그의 죄를 확인해주라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억울한 일에 휘말린 것은 아닌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죄에 걸려 넘어진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의 죄로 인함이라면 두 세 사람이 권고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듣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세 번째 단계를 말씀해 주셨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하고 말입니다. 이때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것은 이제는 교회 밖으로 내 팽개치라는 뜻은 아니라고 했죠. 이제부터는 그를 교회의 직원회와 같은 실제적인 권한에서 벗어나 있게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세 단계까지 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2단계를 거치면, 그 다음에는 교회 공동체를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왜 그런 내용을 주님께서 말씀한 것이겠습니까? 교회 공동체는 말도 많고 탈도 많기 때문이죠. 오죽했으면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사도행전이 시작되기 직전의 요한복음 21장의 끝 부분에, 교회 공동체에 퍼지는 거짓말을 경계하도록까지, 일러주셨겠습니까?

그만큼 한 개인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도 소중하고, 한 개인이 죄를 범하거나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이해하며 사는 게 교회 공동체의 책임임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교제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곧 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세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함께 모여 예배와 기도를 드리지만, 교제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교제 가운데 실족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실족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 돌아보고, 그 개인도 매사에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르러, 베드로가 나서서 질문을 던집니다. 본문 21절에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하고 말이죠. 표준새번역은 이렇습니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사람의 눈에는 자기 눈의 들보는 잘 안 보여도 남의 눈에 있는 티는 잘 보이는 법 아닙니까? 내 문제는 사소해 보여도 남의 문제는 산처럼 커 보이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 베드로를 보시고 말씀하셨죠.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즉 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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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제 주님께서는 22-35절을 통해 긴 비유 하나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십니다. 그 내용은 그것이죠.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하도 하소연해서 불쌍히 여겨 아예 그 빚을 안 갚아도 된다고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 빚을 탕감받은 것을 까맣게 잊고서,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에게는 해도 너무할 정도로 아예 감옥에 처넣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죠.

어떻습니까? 그런 못된 인간이 있다면 누구든지 당장 잡아다가 ‘내 돈이나 갚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비유는 ‘천국 비유’,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란 죽어서 가는 저 영원한 나라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통치권을 받드는 삶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삶이라고 했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일구는 것이죠.

그래서 이 비유는, 이 땅에서 사람에 대해 용서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기뻐하는 것임을 일깨워주신 비유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오늘 ‘형제’의 관점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더불어 교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말씀이죠. 누군가 함께 신앙 생활하는데 나에게 잘못을 했을 경우, 금전적인 손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갚아야 하겠지만, 그런 손해가 아니라 마음을 힘들게 하고 거짓말을 유포했다면, 그때 어떻게 해야 되겠냐는 것이죠. 그때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 그를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까지 세워주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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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쉽게 예수님처럼 ‘초자연적인 용서’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이죠. 35절의 말씀처럼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라는 것 말입니다. 말로, 행동으로, 용서를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일단 마음으로부터 용서를 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로움 앞에 모든 죄인이 다 죄인이고, 나 같이 허물많은 죄인도 주님의 절대적인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면, 상대적으로 내게 허물을 보인 그를 어찌 마음으로 용서할 수 없겠는가, 하는 것이죠. 마음으로부터 죄 용서를 시작해 보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에 교회 공동체가 하나 하나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형제를 실족하게 하지 않는 길이요, 그런 삶이 천국에서 가장 크고 값진 삶이라는 뜻입니다.

아무쪼록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이들 앞에서 어떻게 바른 모범을 보일지, 신앙의 연수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것은 나 혼자만의 신앙이 아니라, 내가 어떤 행동을 보이든지 그것은 나중된 이들에게 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작고 연약한 자를 품고 사랑하며, 내게 해로움을 끼친 이를 용서하며, 나중된 이들도 그런 좋은 전통을 본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죠. 그를 위해 우리를 먼저 부르셨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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