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교회의 말(마18:1-20)

by 똑똑이채널 2023. 11. 21.
728x90
반응형
SMALL

세상의 관심은 크고 높아지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 실은 높은 자리, 영향력 있는 자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었죠. 본문 1절에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하는 게 바로 그들의 세상 속 관점입니다.

당시의 사회에서 통용되던 생각, 유대 백성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천국은 아주 큰 부자, 곧 높은 자나 영향력 있는 자를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 그것이었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와 같은 생각, 세상에 물들어 있는 그 생각을 교정시켜 주시면서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군지, 천국에 누가 갈 수 있는지 답변해 주셨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인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은 자임을 예수님께서 천명하셨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가치, 천국의 가치는 세상 가치와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큰 자, 높은 자가 중요하죠.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린 아이와 같은 자, 다시 말해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겸손한 자가, 그곳에서 큰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작은 어린 아이와 동일시하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그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죠. 큰 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에게 받은 것을 되갚아줄 능력이 없는 작고 연약한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런 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당신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환영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작은 자를 환영하면 되는 것이요, 예수님을 대접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면 곧 주님을 대접한 것으로 여기시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5장 34절 이하를 통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두렵지 않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세상의 가치를 따라 무시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브라함도 길가는 나그네들을 그렇게 극진히 대접했던 것이고, 그것이 곧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것이라고 히브리서 13장 2절에 말씀하고 있는 이유죠.

그것은 본문 10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이른바 우리가 작고 연약한 자를 섬기고 사랑하면, 그 천사가 하나님께 보고한다는 말씀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그들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만약 그들을 실족케 한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게 낫다고 말씀하실 정도죠.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본문 12-14절 말씀인데,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소중히 여기시는 목자 되신 예수님의 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관심은 여전히 크고 화려하고 능력있는 99마리의 양에게만 관심을 둔다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심은 큰 자에게 있지만 우리 주님의 관심은 작은 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14절에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잃어버린 작은 약한 양 한 마리를 찾으시고, 그 양이 길을 잃어 헤맬 때 아파하시고, 그 양을 찾으시면 함께 기뻐하시고 잔치를 여는 목자의 심정을 지니셨던 것이죠. 바꿔 말해 주님의 품에 있다가 방황하고 방탕한 삶을 살고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시고 안타까워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을 통해 그들을 찾고 주님 품으로 인도하길 원하신다는 것이죠. 그것이 곧 주님께 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본문 15-20절은 ‘죄 가운데 있는 한 영혼을 돌이키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에 따른 구체적인 지시를 알려주십니다. 이른바 교회 구성원 가운데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입니다. 먼저는 조용히 개인적으로 가서 권고하도록 하십니다. 오직 둘만 있을 때, 인격적으로 그의 잘못, 그의 죄를 깨닫고 돌아설 기회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돌이킨다면 그를 기쁨으로 맞이하는 것, 그것도 실은 잃어버린 영혼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겠죠. 그것이 목자의 심정,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17절처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돌이키도록 권면했는데,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이제는 교회의 증인이 될만한 사람과 함께 가서 권면하라는 뜻이죠. 무고한 피해자가 없도록 말이죠. 그렇게 해서 돌이킨다면, 그를 어린 아이와 같은, 그를 교회가 받아줘서,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 완고하다면 이방인과 같이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과 같이 여기라는 것이 완전히 버림받은 사람처럼 취급하라는 게 아닙니다. 제가 아는 서울에 있는 목사님께서 직접 겪은 일입니다. 전에는 부서의 재정을 맡은 집사님이었는데, 그 분이 돈을 다른 데 써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잦아졌고, 그래서 목사님이 알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아 교회 식구들과 함께 찾아가서 그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증인들을 데리고 가서 들어봤던 것이죠. 그런데 그때는 뉘우치고 돌아설 것 같았는데, 그 뒤로 똑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참 안타까운 사실인데, 그것을 보면서 저는 그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더구나 작은 교회에서 그런 일이 있을 경우에 교인을 징계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때 그가 뉘우치고 새롭게 한다면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품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면, 그런데도 신앙생활은 하겠다고 한다면, 그에게 그 일을 맡기지 말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이방인과 세리 같이 취급하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 18-20절 말씀은 너무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께서는 하늘의 권세를 이루게 하는 열쇠를 땅에 있는 주님을 믿는 자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두 세 사람의 모임 곧 교회 공동체에 허락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간구와 중보와 기도를 통해 이 땅에서부터 하늘 문을 열도록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하고 약속하신 것이죠. 이것이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입니다. 무섭고도 정말로 신중해야 할 권세요, 그만큼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은 아버지 마음으로 품되 죄 속에 빠져 있는 자는 기회를 주되 그에게 어떤 일도 맡기지 말라는 것이죠.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