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불쌍히 여기시니(마9:18-38)

by 권또또 2023. 10. 31.
728x90
반응형

오늘 읽은 마태복음 9장 18-38절 말씀은 어제 읽은 말씀에 연이어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어제 읽은 말씀에 어떤 사건과 그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 사건이 기록돼 있었고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그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신 사건이 기록돼 있었고, 그때 요한의 제자들이 나와서 예수님께 말한 것, 곧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예수님 당신의 제자들은 당신처럼 금식하지 않냐는 것이었죠.

그와 같은 세 가지 사건과 그 내용을 통해 주님께서 일깨워주신 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질병과 영적인 세력들을 고치고 물리치는 하나님의 아들 곧 성자 하나님이심을 만 방에 알리고자 하심이요, 더불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지 않으려는 예수님의 반대편에 선 자들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깨우쳐 주려는 게 그 뜻이었다고 말입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br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br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br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

www.aladin.co.kr

오늘 본문도 바로 그런 두 가지 흐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에는 죽은 딸아이를 고쳐달라는 한 관리가 등장하는데, 그 관리의 간절한 호소를 들으신 주님께서 그 관리의 집으로 가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과 누가복음 8장에는 이 관리의 이름이 ‘야이로’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직업 그 관리란 회당장을 관리하는 관리 직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회당이란 다아스포라 유대인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세계 각처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성인 10명이상이 모여서 그곳에서 예배도 드리고 토라도 강독하고, 함께 민족성과 신앙심을 고취시켰던 장소입니다. 야이로는 바로 그 회당장이었고, 자신의 딸이 죽었는데,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목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등장하죠. 본문 20-21절입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이 당시에 혈루증이란 어떤 질병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혈루증(血漏症)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하이마’와 ‘레오’의 합성어인데 ‘피의 유출’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월경과는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출혈하는 피요, 당시에는 혈루증을 부정한 병으로 여겨 그 사람이 만지는 것은 모두 부정한 것으로 취급했죠. 그렇기에 그녀 주변에는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았고, 괜히 죄인취급받았고, 모두가 그녀를 부정한 자로 대했던 것입니다. 누구와도 말도 섞지 않으려 했고, 그렇기에 12년 동안이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녀를 피해 다녔고, 그녀도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던 그녀가 주님앞에 나와서 간청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겸손하게,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찾아나왔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그녀의 간절함은 본문 2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하는 말씀 말입니다. 그 정도로 그녀는 주님을 향해 간절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녀를 향해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시면서 그녀를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에게 있던 모든 문제, 그것이 질병이든, 그것이 육체적인 문제이든, 그것이 가정적인 문제이든, 그것이 자녀의 문제이든, 그 모든 문제에 대해 나 스스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 해결자가 주님이라는 것을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의탁하는 그 자세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그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도 구원할 수 없고 타인을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과 담을 쌓고 살며, 해탈의 경지에 올랐다 할지라도, 사람은 자신을 구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주님께 무릎을 꿇는 자세, 주님께 간절히 엎드리는 자에게 주님은 당신의 은총을 부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간절함과 그 겸손함의 자세는 한때 응답을 받고, 한때 고침과 회복의 은혜를 받았어도, 하늘나라가기까지 지속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께서 혈루증을 앓던 그 여인을 고쳐주시고, 이제 그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고쳐주신 사건이 본문 23-25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고 어떻게 해서 고침을 받았습니까? 야이로의 간절함, 오직 주님께만 그 해결의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고, 주님께 엎드리고 간구하는 그 겸손한 심정을 지녔을 때 주님께서 고쳐주신 사건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은 본문 27절 이하에 나오는 두 명의 맹인을 고쳐주시는 사건입니다. 27절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두 맹인 역시,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치면서, 자신들을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오랫동안 완전히 눈먼 자로 살아왔던 자들이죠. 그래서 그들에게 다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사실상 물건너 간 자들이죠. 자신들이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모든 병자들, 모든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다는 소문을 들었고, 드디어 그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동네에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들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엎드렸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두 맹인의 믿음과 간절함, 그들의 자세 앞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www.aladin.co.kr

그리고 이제 본문 32절을 통해 마지막 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귀신들린 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나온 장면입니다. 귀신들려 말 못하는 이 사람은 스스로 주님께 나아올 수 없었던 자입니다. 이 사람은 9장 2절에 나온 사람의 입장과 똑같은 처지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처럼 말입니다. 그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주님께 나올 수 있었던 자입니다. 귀신들려서 말을 못하는 지경이라, 그 친구들, 그 동료들, 혹은 그 부모님이 주님께 데려왔던 것이죠. 그 동료들, 그 부모들, 그 형제들도 주님 앞에 간절한 자세, 겸손한 자세,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제사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죠.

이상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 회장당 야이로의 죽은 딸이 살아나게 된 것,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고침받은 사건, 그리고 두 맹인이 눈을 뜬 사건, 그리고 귀신들려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 한 사람이 병에서 놓임받은 사건, 이 사건들이 무엇을 일깨워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인간의 간절함과 겸손함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고쳐주고 싶어도 인간의 간절함과 겸손함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고, 반대로 인간이 아무리 매달려도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총이 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베드로 장모의 열병이 고침받게 된 것은 그녀나 그녀의 사위인 베드로가 간절히 구했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미리 아시고, 고쳐주신 사건이었죠. 다시 말해 베드로가 주님의 선교사역에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있던 베드로로 인해 그의 장모가 고침받은 사건이었죠.

어찌됐든 오늘 본문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도 그런 간절함과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로 분명코 긍휼하신 은총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본문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34절에도 바리새인들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또다시 예수님을 비꼬고 있죠. 귀신의 왕을 의지해서 이런 역사를 펼친다고 말입니다. 이른바 마태복음 9장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심지어 요한의 제자들처럼 여전히 편협한 사고방식에 갇힌 그 틀을 깨트려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한계로 예수님의 능력,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제한치 마시고, 더욱더 간절함과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www.aladin.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