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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마태복음 8장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이제 내려오면서 행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료하신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물론 다른 세 가지 사건입니다. 하나는 나병환자의 병을 고친 사건, 또 다른 경우는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친 사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보여주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인간의 질병을 치유케 하시는 전능자라는 것, 곧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밝혀주시는 부분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우리의 기도와 관련하여 해석해도 충분한 본문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 자신을 위해 간청과 간구로부터 시작이 되고, 좀 더 성숙한 기도자는 자기 개인의 간구와 간청을 넘어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 제 3자를 위한 기도자로 나아간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기도의 끝이 아니라 마지막 관문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것들을 오늘 본문에서 차례로 깨닫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맨 처음 치유받은 사람, 맨 처음 예수님께 기도제목을 갖고 온 사람이 누구입니까? 본문 2절에 나오는 ‘나병환자’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절하고, 예수님이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하면서 나온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자기 육체의 질병이라는 문제를 안고 주님께 간구하며 나온 사람이죠. 우리 주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서 깨끗케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직접 그 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는 방법으로, 그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그의 면전 앞에서, 직접적으로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두 번째 나오는 사람은 누굽니까? 본문 5-7절이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이 경우는 자기 문제가 아닙니다.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병을 위해 예수님께서 나온 것입니다. 이때 백부장이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을 말하는 것이고, 그 하인이란 유대 하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층도, 가진 지위도 엄청난 차이를 지니고 있는데, 그 백부장이 유대인 예수님께 나온 장면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식으로 빗대면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 장교가 우리나라 사람 예수에게, 우리나라 하인의 질병문제를 가지고 그 일본인 장교가 우리나라 사람 예수님에게 나온 꼴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때데 직접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말씀만 하셔도 나을 것이라고, 명령만 하셔도 나을 것이라고 하죠. 자신도 군대 상관을 모시고 명령을 받는 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명령만 하셔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 10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죠.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이런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칭찬해 주시면서, 그 하인의 질병이 낫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본문 13절 마지막 부분에서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하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두 번째 나가야 할 기도의 자세라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첫 번째 경우처럼 자기 자신의 문제, 문둥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직접 예수님께 나와 간구하여 고침을 받듯이, 그런 첫 번째 경우도 분명 필요합니다. 그로부터 믿음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죠. 자기가 기도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데 어찌 그것이 간증이요, 살아 있는 체험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기도가 자기 자신에게서 멈춰버려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본문의 두 번째 경우처럼, 우리의 기도는 이 두 번째 경우로 진전돼야 합니다. 나 개인의 기도를 넘어, 타인을 위한 중보기도의 자세, 타인을 위한 섬김의 기도자세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타인의 문제, 같은 교회 교우들의 문제, 같은 혈족이나 친족의 문제, 제 3자의 기도제목을 주님께 아뢰면서 간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당신의 방법에 맞게, 당신의 때에 맞게 응답해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세 번째 단계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세 번째 경우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입니다. 그녀가 고침을 받고 깨끗케 된 사건입니다. 그렇다고 베드로의 장모가 나서서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매달린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베드로가 자기 장모의 열병을 고쳐달라고, 제 3자의 문제를 놓고 간청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아시고, 그녀의 열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선교사역에 동참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하면 베드로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미리 아시고 채워주시는 주님의 응답을 받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 세 번째 단계로 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내 가정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 어머니에게 내 자식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우리 하나님은 환히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주님께서 그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나아가야 할 종착점입니다. 내 기도가 늘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 주님의 뜻을 늘 헤아리며 사는 삶,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 미리미리 응답해주시는 놀라운 응답을 받는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사건, 다시 말해 병자에 관한 치유의 기사가 다른 복음서에도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나병환자가 고침받은 사건은 마가복음1장 41절에도 나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또 백부장의 하인이 고침받은 사건은 누가복음 7장 3-6절까지 나옵니다. 거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가시는 중간에 백부장의 요청에 의해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는 내용이 나오죠. 그리고 베드로의 장모를 고친 사건은 누가복음 4장 38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기록이 색다른 점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장모를 위해 예수님께 간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죠.
그런 부분들이 다른 강조점인데, 오늘 본문은 각기 다른 세 가지 치유기사를 하나로 묶으면서, 마태가 따로 강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16-17절입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께서 이렇게 세 사람의 질병을 고쳐주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이루고자 하심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 곧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하는 말씀이 그것이죠. 그리고 그 말씀은 베드로전서 2장 24절로 연결이 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오늘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의 제목들, 그 기도에 주님께서 친히 응답해 주실 수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기 위해 나무 곧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연약한 문제도, 타인의 문제도 주님 앞에 얼마든지 아뢸 수 있고,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할 때 미리 치유해주시고 회복케 하시는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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