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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마8:18-34)

by 똑똑이채널 202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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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제 산상수훈을 마치고 산 위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이른바 마태복음 5-7장까지 이어졌던 산상수훈을 끝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오신 것이죠. 그렇게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문둥병자가 주님께 직접 나와 고침 받은 사건도 있었고, 중풍병을 앓고 있는 하인을 위해 백부장이 나왔을 때 주님께서 직접 가지 않고 말씀만으로도 고쳐주신 사건, 그리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주님께서 고쳐주신 일이 있었죠. 그리고 날이 저물었을 때 귀신들린 자들이 주님께 나와 고침받은 사건들이 일어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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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18절 말씀은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전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군중들이 자신에게 몰려드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이 자신에게 몰려드는 것을 보시고 어떤 태도를 취하십니까?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이른바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하필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 것입니까? 이른바 군중이 바라는 예수님 상을 지우고 버리도록 하기 위함이십니다. 당시 갈릴리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가 앓던 열병을 고쳐주셨다는 사건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병든 사람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데리고 왔죠.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2천 년 전의 병자들, 귀신들린 자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 그 질병에 고통당하던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른바 절망 가운데 있던 그 군중들이 그토록 염원하고 희망하던 메시아가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굶주림과 질병과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 군중들이 바라는 예수님은 자신들의 굶주림과 질병뿐만 아니라 로마의 지배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바라봤던 것입니다. 그 군중들의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이라면 언제라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수 있고, 그런 질병의 치료자라면 천군천사를 동원해서 얼마든지 로마 군병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군중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옹립하려고 예수님을 애워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군중들이 바라는 정치적인 혁명의 메시아로 군림할 수 없었기에, 그들을 떠나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내 이름값이 올라갈 때, 그때에도 한결같이 나의 위치와 자리를 망각지 않는 그리스도인, 나의 사명을 망각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옵니다. 19절에 선생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고 답변하시죠. 서기관이 한 말은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역시 그 군중들이 바라던 정치적인 혁명의 메시아로 모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영광만 승리만 있는 줄 알고 뒤따르겠다는 것인데, 예수님은 나에게는 그런 영광의 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머리 둘 곳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그리고 21절에는 제자 중 하나가 나와 그렇게 말씀한 장면이 나옵니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하고 말입니다. 누가복음 9장에도 똑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먼저 나를 따르라고 그 제자를 부르신 장면이 먼저 나오고, 그러자 그 제자가 먼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나서 따르겠습니다할 때 예수님께서 본문 22절을 일러주신 말씀으로 나옵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고인의 장례를 치르게 하고, 영적으로 산 자라면 먼저 십자가의 길을 좇으라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길은 영광이나 승리를 보장하는 길이 아니라, 도리어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 사명자의 길이기에, 무엇을 우선시하며 살아야 할지, 일깨워주신 것이죠. 그렇다고 이 말씀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도입하여 믿지 않는 부모의 장례식까지 참석치 말라는 그런 뜻은 전혀 아닙니다. 주님이 가고자 하는 최종목표는 죽은 자들을 살리는데 당신 자신의 생명조차 내려놓은 것임을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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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23-27절은 바다와 풍랑을 잔잔케 하는 사건의 모습입니다.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 예수님서 배에 오르셨고, 제자들도 따라 함께 올랐습니다. 호수 건너편 ‘가다라 지방’으로 이제 건너갑니다. 예수님은 배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풍랑이 일어나 배가 물에 잠기게 될 상황이죠.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고 소리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해 주셨죠.

이 사건이 주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진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군중이 원하는 예수는 의식주와 질병, 성공과 해방을 가져다는 주는 정치적인 혁명의 메시아라면, 예수님은 자연까지도 초월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예수님이시기에, 설령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자 할 때에 풍랑과 파도와 같은 고난이 밀려온다 할지라도, 거기에 결코 침몰되지 않을 것을, 이 사건을 통해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이런 사건을 기대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기대감을 갖고 신앙생활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도 응답을 받고자 하는지도 모르죠. 파도와 풍랑이 전혀 없는 신앙생활, 인생의 풍파가 전혀 없는 기도응답 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도 주님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죠. 내 인생의 배에 어떤 풍랑과 파도가 몰아쳐 와도, 배 안에 계시는 주님 때문에 그 풍랑과 파도를 이겨내고 물리치며 앞으로 항해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떤 풍랑과 파도가 내 인생의 배에 불어닥쳐도, 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니는 것, 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 바로 그것이 본문을 통해 깨우쳐 주시는 성령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 사건이 나옵니다. 28-34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은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두 사람을 주님께서 고쳐주신 사건, 그리고 그 동네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에 대해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린 두 사람이 무덤에 나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소리치는 것도 들었죠.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게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가.”(29)하고 말이죠. 그것은 그들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귀신들이 소리친 말입니다. 자신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32절 말씀처럼 그들에게 가라 곧 귀신들에게 ‘떠나 가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들이 어디로 나갑니까? 32절에 마지막 부분에 돼지 떼에게 들어가 돼지 떼들이 몰사하죠.

그렇다면 그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들 잔치를 벌이고, 축하해 주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33-34절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오히려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돼지 떼를 잃은 것, 물질을 잃어버리는 일을 경계하기 위함이죠. 더 이상 물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 재정적으로 손해가 나서는 안 된다는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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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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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없을까요? 귀신이 쫓겨나는 기적을 경험할지라도 경제적인 피해가 닥쳐오는 것은 배척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원하는 것은 병 고침과 귀신축출이지, 경제적인 손해는 잃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그런 군중이 기대하던 정치적인 메시아로서의 예수상은 비워낼 수 있기 바랍니다. 또한 내 병과 아픔은 고쳐주지만 내 경제적인 손해는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그런 탐욕적인 군중의 모습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바랍니다. 오직 어떤 길이든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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