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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곧 그물을 버려두고(마4:1-11)

by 똑똑이채널 2023.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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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과, 이방 땅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 그리고 제자들을 삼으신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12절 말씀은 마귀 곧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혹하는 영 마귀는 진실을 왜곡하여 하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든 것처럼, 예수님을 향해서도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본질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뜻을 배반케 하는 게 목적이죠. 마귀가 아담과 하와에게, 본문의 예수님에게 사용한 어법이 있습니다. ‘가정법’이 그것이죠.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4-5) 선악과를 따 먹는다면, 너희들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하는 게 가정법이죠. 본문 3절도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또 6절에서도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리고 9절에서도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게 바로 가정법이죠.

가정법은 사실이 아닌 것이나 불가능 한 것을 사실처럼 또 가능한 것처럼 전개하는 화법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예수님께 사용한 방법이 사실이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이고, 불가능하지 못한 일이 아니라 가능한 일들이죠. 예수님은 실제 하나님의 아들이고, 돌을 떡덩이로 만들 수 있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천사들이 붙들어 주시고, 천하만국의 권세를 다 쥐실 수 있는 분이죠. 그런데도 마귀는 그런 능력을 지닌 예수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질문을 던져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의 제물이 되시는 것인데, 지금 마귀의 유혹앞에 굴복당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유혹한 것입니다

 

 

[전자책]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예스2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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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유혹이 무엇입니까? 사단은 떡으로 굶주림을 해결하라고 유혹해 왔죠. 3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굶주리신 것을 알고,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사단이 예수님을 유혹한 것이죠. 손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토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은 4절 말씀으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유혹을 거절하죠. 이때 사단의 유혹을 받아들여 손쉽게 떡을 취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이후에 예수님께 닥쳐오는 십자가의 잔, 그 고난의 잔 역시 손쉬운 방법으로 물리치셨겠죠. 사탄은 손쉬운 방법으로 예수님 걸음에 족쇄를 채우고자 했는데 우리에게도 그런 유혹을 가져올 수 있죠.

두 번째 유혹은 6절 말씀처럼 예루살렘 성 꼭대기에 예수님을 데리고 가 뛰어내리도록 하는 유혹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의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부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던 곳입니다. 그 곳에서 뛰어내렸는데도 예수님이 안전하다면 단번에 군중의 갈채를 받으며 메시아로 급부상하게 되겠죠. 사단이 취하고자 한 유혹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명예심’과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 말입니다.

 

 

 

[전자책]야긴과 보아스 - 예스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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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험은, 9절 말씀,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천하 만국의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도록 하는 유혹이죠. 그러면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릴 만 왕의 왕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길이 아닙니다. 오직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 부활하심으로 얻는 게 진정한 영광이죠.

그처럼 사탄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저버리게 만들고자 그렇게 예수님을 유혹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그렇게 유혹합니다. 고난 없는 영광을 얻으라고, 십자가 없는 부활을 누리라고, 헌신 없는 면류관을 추구하라고 말이죠. 그렇게 속삭이고, 그렇게 허영을 부추기는 달콤한 말들이 실은 사단의 유혹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 가운데 두 번째 유혹은 상당히 중요한 관점을 제시해 줍니다. 6절의 중반절 부분에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는 이 말씀은 실은 구약의 시편 91편 11-12절에 나온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하면 사단은 누군가를 유혹할 때,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유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먹이며 그럴 듯 하게 유혹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단들, 사이비 집단들이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먹이며 유혹해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적으로 잘 풀어준다면서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 자신이 말씀 앞에 바르게 깨어 있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자책]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예스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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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12-17절 말씀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머무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곳을 왜 찾으셨는가? 17절에서 말씀해 주는 것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곧 복음전파를 위해서, 당신이 전하는 천국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그곳 이방 땅을 향해 찾아나가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만큼 유대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조차도 구원받기를 원하셨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와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9장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게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이셨는데, 그것은 그들만 구원받고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그들로 하여금 일깨워주는 도구요 통로가 되기 위해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와 나사렛 그리고 예루살렘에 오가면서 복음을 전파하신 것은 그들만 구원받고 잘 살기 바라는 게 아니라, 스불론과 납달리와 가버나움 등 이방 나라 백성들도 모두 구원받는 그 반열에 들어올 수 있는 하셨다는 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 자신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라, 나와 더불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하나님의 구원 바깥에, 교회 바깥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열어 놓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런 구원의 복음을 위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제자를 삼는 것임을 본문 18-25절 말씀을 통해 증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8-20절 말씀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시는 장면이죠. 또 21절에서는 더 가셔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부르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두 형제들이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20절에 곧 그물을 버려두고, 또 22절에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여기에서 강조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물을 버려두고,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죠. 그것들은 생업을 위한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버려둘 때 과감하게 생업수단과 방법까지 모조리 버리고 따르는 모습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강조점이 있습니다. ‘곧’, 다시 말해 ‘즉시’입니다. 누군가 내게 무엇을 하자고 제안할 때, 며칠 말미를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몬의 형제나 야고보 형제는 ‘곧’ ‘즉시’ 주님을 따라 ‘사람 낚는 어부’로 나섰다는 점입니다. 물론 누가복음 5장에는 그들을 제자로 부르기 이전에 그물을 깊은 데로 던지라고 하신 말씀과 함께 엄청난 고기를 건져 올린 당신의 표적을 보여주신 일이 있죠. 그런 체험 이후에 나를 따르라, 사람 낚는 어부로가 되게 하겠다고 했고, 즉시 그들이 주님을 따라 제자로 나선 것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표적, 성령님의 표적들을 보여주시고, 그 길에 순종하길 원하시는 일이 있다면, 곧, ‘즉시’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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