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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마태복음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마5:13-20)

by 권또또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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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지녀야 할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13-15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여기서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부분은 그냥 ‘소금’과 ‘빛’이 아닙니다.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입니다. 그것을 주의깊에 살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지녀야 하는 올바른 정체성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영향을 주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곧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추구하는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짚어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입니다. 예배가 생활이 되고, 생활 자체가 예배가 되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요 삶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를 위해 교회는 주차장이 되기 보다는 주유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영적으로 재충전하고, 재무장하여, 세상 속으로 나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 세상에 도전을 주는 삶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정체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유도, 그리스도 개개인만 구원받고 천국가기를 원하시는 게 아니죠. 1차적인 목적이지만 1차 목적을 위해서만 십자가에 죽으신 게 아니라 더 큰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기 위함이시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는 게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에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곧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 되는 삶에 있는 것이고요.

 

 

[전자책]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BR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BR 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BR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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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소금’과 ‘빛’은 각각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는 소금이 지니고 있는 성질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성질은 바로 ‘짠 맛’에 있습니다. 이 짠 맛은 유일하게 소금만이 지니고 있습니다. 이 짠 맛으로 인해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음식에 맛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부제가 되었건 음식의 맛을 더해주건 간에 소금이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소금은 반드시 녹아야 합니다.

과거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소금에는 불순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금 관리를 잘못하면 그 소금은 소금의 짠 성분은 모두 녹아버리고 불순물만 남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불순물은 소금처럼 흰 가루의 모양을 하고는 있지만 이미 쓸모없게 되어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녹지 않는 소금은 소금으로서의 가치가 없이 버려져서 사람에게 밟히고 마는 불순물일 따름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또한 이 세상의 빛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 빛 또한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빛은 전기에 의해 작동하는 전등이나 LED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5절에 ‘등불을 켜서’에서 ‘켜다’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는 헬라어 동사 ‘카이오’입니다. ‘카이오’란 ‘태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켜다’는 말은 스위치를 올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름을 연료로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등경을 걸어둬서 등잔이 온 집안을 환하게 밝히 비추게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등잔은 집 안 만 환하게 비추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과거 유대인들이 살았던 주거지는 주로 야트막한 산 위에 형성돼 있었습니다. 이 주거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 주변은 농경지나 목초지가 대부분이었죠. 밤길을 가는 나그네들은 한 점의 빛도 없이 깜깜한 들판을 지나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때 산 위에 있는 주거지의 불빛은 이들에게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길을 떠나는 나그네들에게도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이 세상의 소금과, 이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녹이고 태우는,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고통의 과정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녹지 않으면 소금이 그 맛을 낼 수 없듯이, 태우지 않으면 등잔이 빛을 밝힐 수 없듯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녹여야 하고 불살라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이 세상 가운데서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안에 녹아들어야 하고 스스로를 불살라야 한다는 것이 이 세상의 가치를 좇는다는 의미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께서 사셨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모세의 가르침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주님이 모세의 가르쳐준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업신여기겠습니까? 주님은 어려서부터 철저히 율법과 율법의 가르침을 몸에 익히고 준수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의 한 획이라도 가벼이 여기시지 않았습니다.

 

 

[전자책] 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BR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BR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BR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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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주님은 겉으로만 의로운 척, 거룩한 척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수준을 뛰어넘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흉내 내려고만 하면 불가능합니다. 겉으로 의로운 척, 거룩한 척하려고 하면 우리는 결코 그들의 수준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우리 내면의 변화에 있습니다.

어제 함께 나누었듯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조건이나 자격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셨고 우리를 향해 ‘복되도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수준을 보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 먼저 그 길을 가셨고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완전함의 끝자락에서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의 초대, 이것은 우리에게 자격을 드리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을 내어드리도록 하는 부르심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깨닫게 하시는 음성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정체성을 세우고,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녹여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것, 스스로를 태워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생명을 녹이셨고, 당신의 생명을 불태우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녹이고, 태우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율례와 법도를 온전케 하고 완성케 하는 길이요, 그것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곧 겉으로 하나님의 자녀인 척 하는 사람들보다 더 의로운 삶이라는 점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부족하고 연약해도 우리 수준에서 녹일 수 있는 부분을 녹이고 태울 수 있는 부분을 태워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정체성을 다시금 세워나갈 수 있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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