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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했죠. 그로 인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죄 아래 놓이게 된 인간의 한계였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을 위해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을 창세기 3장 15절의 원복음을 통해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 말씀은 사탄 곧 뱀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그것은 죄와 사망에 처하게 된 인간을 향한 구원의 복음입니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 곧 이 땅의 구원자를 예언케 하셨고, 마침내 그 분 곧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봄으로 접어드는데, 겨우내 얼었던 땅도 녹고, 나무의 새싹도 솟아 오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봄철에 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가, 그 기다림의 끝에 활짝 꽃망을 터트리지 않습니까? 이 땅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꽃망울도 바로 그런 이치와 같죠.
그런데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여러 가지로 특별합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해 잉태된 것도, 하나님의 독생자 곧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이 땅의 낮고 천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도, 그리고 유대인이 아닌 이방 나라의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별 가운데 특별한 별을 따라 아기 예수를 찾아 와 경배한 모습도 그렇죠.
그 중에서도 동방박사 이야기는 예수님의 출생 기사와 관련하여 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에만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곳 동방 지역이 어느 지역인지 성경학자들마다 약간 다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박사들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요, 매우 유식하고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지위가 높고 배경이 출중한 그들, 그러면서도 유대인들이 개나 소처럼 짐승처럼 여기는 그 이방인조차도 자신들을 낮추며 구원의 주님께 경배했다는 사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렇게 별을 관찰하다가 유대 땅에 새로운 왕이 태어나실 것을 알고 경배하러 왔죠. 그들은 당연히 왕궁에서 왕이 태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왕궁에 갔죠. 하지만 새로 태어난 왕은 왕궁에 있지 않았죠. 그리고 누구도 새로 태어난 왕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그 별이 머무른 곳 베들레헴 말구유 통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경배의 예물을 드렸죠.
그런데 그 무렵, 동방 박사들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그것도 새로 태어날 유대인의 왕을 알현하러 왔다는 그 박사들의 말에, 헤롯 대왕은 자극을 받게 되었죠. 당시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왕은 헤롯 1세 곧 헤롯대왕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폭력적이고 잔인한 왕이었죠. 그는 유대인 출신이 아닌 이두매 출신, 구체적으로 말해 야곱과 형제지간인 에서의 후예였죠 그 까닭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아첨해서 유대인의 왕이 되었고, 그 뒤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개보수 사업을 46년간 벌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죠. 의심도 많고, 나이가 들수록 편집증이 심해, 나중에는 그의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말년에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 그런데 그의 비극은 그 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헤롯 가문과 그리스도인들과는 계속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었죠.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는 자신의 동생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전 처를 강제로 이혼시켰고, 그것을 고발하던 세례요한을 죽여서 그의 머리를 헤로디아에게 가져다 주었죠. 또 헤롯 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1세도 야고보 사도를 죽였고 베드로를 체포해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만큼 헤롯가문은 초대 교회와 철천지 원수지간이었죠.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가 모두 포악하고 악랄했던 헤롯 가문이었는데, 헤롯 대왕은 자기 교만 속에서 끝내 동방박사들이 말한 메시아 예수를 만나지 못했고, 마침내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역의 아이들 가운데 2세 이하의 유아들을 모조리 죽게 하는 참극을 벌였죠.
이상과 같은 내용이 본문 1-12절까지의 전반부 내용인데, 이 내용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위대하신 하나님, 곧 구원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나아가 그 분을 경배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여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역의 어린 아이들을 모조리 죽게 만드는 비참한 광경을 만든 사람의 모습입니다.
동방 박사들도, 헤롯 대왕도, 실은 권력과 부유층의 대명사입니다. 그러나 그들 두 부류는 그 태도가 전혀 달랐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 머잖아 이 땅 인류의 구원자가 되실 아기 예수께 자신들의 지위와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경배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존재자체를 완전히 짓밟는 사람이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나의 가진 배경이나 능력을 앞세워 주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어떤 상황과 어떤 위치 속에 있든지, 동방 박사들처럼 겸손하게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것이 복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3-23절까지가 후반부인데,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씀들 가운데, 물론 전반부에도 있습니다만, 이 말씀들 가운데 구약의 예언이 4개나 들어있고, 그 예언의 말씀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고, 그것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
마태복음 5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줍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바로 그 말씀처럼 구약 시대에 수많은 선지자들의 예언이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그 내용이 어디에 나옵니까? 우선 본문 6절 말씀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 말씀은 미가서 5장 2절에 예언된 말씀을 성취한 것을 가리키고 있죠.
또한 본문 15절 말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하는 게 호세아 11장 1절에서 이미 애굽으로 피신토록 하게 했다는 예언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18절의 어린 아이들 살해하는 비극 곧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이 말씀이 곧 베들레헴 지역에 통곡이 있을 것을 예레미야 31장 15절에서 예언한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본문 23절에서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사실 것이라는 예언은 구약 성경에서 나사렛이라는 지명 자체는 언급돼 있지 않지만, 이미 시편 22편과 이사야 53장에서 여러 차례 예언해 주셨고, 그것을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말씀이 무엇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이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말입니다. 그렇렇다면 성경의 나머지 예언, 곧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의 성취처럼 예수님의 재림과 백보좌 심판과 하늘나라의 상급도 분명히 성취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을 통해 그렇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날 그때가 되면, 그 모든 것들이 보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매사에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높이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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