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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에스겔서 17장은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비유에 대해 말씀하면서, 그에 대한 해석의 말씀도 곁들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1-10절까지가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큰 날개와 긴 깃을 가진 큰 독수리 한 마리가 있었다. 그 독수리는 레바논으로 날아와서 백향목 제일 위에 있는 연한 가지를 꺾어 상인들의 도시로 가지고 가서 심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에서 싹이 나고 자라서 무성한 포도나무가 되었는데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해 있었고, 뿌리는 땅으로 뻗어 있었다. 그런데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또 다른 한 마리의 독수리가 있었다. 그러자 포도나무는 더 많은 물을 얻으려고 새로 나타난 독수리에게로 그 가지를 뻗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물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뿌리가 뽑히고 결국은 동풍에 말라버렸다” 하는 내용입니다. 얼핏 보면 동화와 같은 비유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내용은 동화가 아닌 남유다의 무지하고 무기력한 상황, 곧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비유이자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1-10절까지 비유의 역사적 배경은 바로 남왕국 유다의 여호야김 왕 때로부터 마지막 20대 왕인 시드기야 때까지의 시기입니다. 그때 여호야김도, 여호야긴도, 그리고 시드기야 왕도 다들 바벨론 제국을 배반하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죠. 그러다가 바벨론에 의해 철퇴를 맞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왜 그 왕들이 모두 바벨론에 등을 돌린 채 이집트 곧 애굽과 손을 잡으려고 했습니까? 애굽이 훨씬 더 강력하고 세상적으로 말해 큰 힘과 무기를 갖고 있는 세력이라고 믿었던 까닭입니다.
열왕기하 24장과 25장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11-21절까지의 말씀도 똑같습니다. 본문의 앞부분에 나온 비유를 해석해서 주고 있고, 그래서 그 비유는 역사적인 사실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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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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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15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에게,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겠느냐고 물어 보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바빌로니아 왕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왕과 지도자들을 붙잡아 바빌로니아로 끌어갔고, 이 나라의 왕족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와 언약을 맺고, 그에게 맹세를 시킨 다음에, 이 나라의 유능한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이것은 바빌로니아가 이 나라를 굴복시켜 독립하지 못하게 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만 명맥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역하여,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서, 자기에게 많은 군마와 군인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언약을 어긴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환히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의 왕들이, 에스겔이 2차 포로로 끌려가던 그 상황만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의 여호야김 때도, 그리고 2차 포로로 끌려가게 된 여호야긴 때도, 그리고 이제 3차 포로로 끌려가게 될 시드기야의 통치 때에도,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오히려 애굽과 손을 잡고 이방 세력을 물리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누군가를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속성이자 경향이며 현실적인 처사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혹여라도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그런 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크든 작든 잠재적으로는 그런 이유가 들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나라 간의 국제관계도 마찬가지죠. 국제관계는 이미 철저한 이해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제관계 속에서 나라가 나라를 돕는 것도,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도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저 어느 정도 선까지의 도움일 뿐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를 돕는 데에도 이미 한계가 있습니다. 만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했을 때,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뿐입니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에 전쟁이 났을 때, 우리가 미국을 돕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개인이든 나라든 결국은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위기 앞에 남왕국 유다가 생각해야 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남 왕국 유다를 도와줄 강대국이 어느 나라인지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도움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하는 것이죠. 이미 국권을 상실한 남 왕국 유다를 다시 세우는 길은 힘 있는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 줄을 붙잡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망하고 쓰러진 남 왕국 유다를 다시 세우는 길은 온전히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온갖 이방 신상과 우상을 좇아왔던 그들이,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최우선을 둬야 했던 것이죠.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다시금 남왕국 유다에 대해 기회를 줄 수 있는 전능자이시고, 그때 비로소 이방 나라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들을 다시 세워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반역할 수도 있습니다. 실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없이 살기도 하죠. 우리 생의 현실이란 것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무런 흠도 없도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사는 것이 아니죠. 때로는 넘어지고 깨어지고, 배반하고, 내려놓을 수 없는 무거운 짐들을 머리에 이고 지고 사는 게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그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참된 지혜와 태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구원자요, 전능자시오, 사람과의 모든 관계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시인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용서와 도움을 구하는 자를 언제나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생에게 기회를 주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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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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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본문 16-17절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대적이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너희들이 아무리 바벨론을 피해 애굽과 손을 잡고, 세상의 힘과 권력을 의지한다 한들, 그들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너희들이 토성을 쌓고 방어막을 펼친다 해도, 내가 사용하는 바벨론을 너희들은 결코 막아설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렇기에 남왕국 유다의 백성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 명확해지는 것이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 앞에 나아와 통회자복하고, 당신을 도움으로 삼고자 하는 자들,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언약백성의 관계를 회복코자 하는 자에게는 그 분이 도우이심을 친히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22-2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죠. 24절에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분이시고 겸손한 자 곧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자들을 높이 세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하나님께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중하며 살 수 있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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