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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에스겔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겔16:44-63)

by 똑똑이채널 2023.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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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얀 후스 동상

 

에스겔 16장 1-43절까지는 예루살렘의 근본 기원과 출생 그리고 처녀시절의 사랑받는 모습, 그러나 그 이후에 타락하여 우상 숭배하는 행위들, 그 영적인 간음 앞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모습까지 살펴봤습니다.

예루살렘의 기원을 한 비천한 여자 아기의 태어남과 성장의 비유로 말씀해 주셨죠. 아무도 돌보지 않고 들에 버려진 영아를 데려다가, 피 묻은 몸을 물로 씻기고, 기름을 바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신을 신기고, 패물로 손목과 목과 귀와 코에 꾸미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시켜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결국에는 왕후 지위에 오르도록 해 주셨습니다.

왕후의 지위에 오르도록 했다면 그 주체가 누구이겠습니까? 오직 왕만 가능한 일이죠. 왕은 출신이 좋지 않은 비천한 한 아기를 돌보고 양육하고 아름답게 꾸며 결국에는 왕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 왕후가 은혜를 베푼 왕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행음을 했다면 누가 그 왕후를 불쌍히 여기겠습니까?

그 비유에 등장하는 그 여인이 바로 예루살렘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사랑하는 부부 중 한 사람이 배우자를 배신하고 다른 이와 행음을 했다면 다른 한 사람은 분명히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배신했다는 비유는 하나님께서 죄악된 이 세상에서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비천한 존재인 이스라엘을 택하여 아내로 받아들였지만, 아내 이스라엘은 남편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고 주변 강대국을 의지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것은 오늘날의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신랑되신 주님의 신부로 비유되고 있죠. 탐욕에 빠져 주님께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음란한 여인에 빗댈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보다 돈과 인맥을 더 의지한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 음행한 자로 책망을 받던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곳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은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한 것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런 예루살렘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은 아닌지, 늘 곱씹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을 되돌아봐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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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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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으로 비유된 한 여인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성을 쏟은 왕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은혜 베푼 자를 배신하고 타락하게 된 것을, 한 속담을 언급하며 시작합니다.

본문 44절입니다. 속담을 말하는 자마다 네게 대하여 속담을 말하기를 어머니가 그러하면 딸도 그러하다 하리라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 어머니에 그 딸’입니다. 그렇다면 딸 예루살렘의 어머니는 누구입니까? 45절에 언급하듯이 ‘헷’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아모리’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언급한 ‘헷’사람과 ‘아모리’사람이란 이미 3절에서 말씀한 족속들입니다. 곧 가나안 원주민들이죠. 그만큼 예루살렘 사람들은 본래 아브라함의 자손들인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족속들처럼 하나님을 떠나 각종 우상숭배자들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출생조차도 가문조차도 형편없게 돼 버렸음을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예루살렘의 죄악상이 얼마나 심했으면 본문은 예루살렘의 형을 ‘사마리아’라고, 그 아우를 ‘소돔’이라고 하겠습니까? 45절에 언급된 ‘형’은 히브리어 ‘아호트’를 번역한 것으로 이는 여성명사로써 자매를 말합니다. 46절에 ‘형’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가톨’인데, ‘더 늙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말 ‘형’은 ‘형제자매나 같은 항렬의 사람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죠. 하지만 오늘날은 주로 남자 형제인 경우에 사용하죠. 정리하자면 사마리아는 예루살렘의 언니인 셈이고, 예루살렘의 여동생은 ‘소돔’이라는 것입니다. 소돔도 그렇고, 예루살렘의 북쪽 사마리아도 그렇고, 실은 둘 다 우상숭배의 나라요, 그 족속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지금 예루살렘의 악행도 호형호제만큼 그들처럼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1절에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하였으므로 네 모든 가증한 행위로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

예루살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이러한 판결에 어쩌면 충격이었을지 모릅니다. 자신들이 증오하여 상대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 그리고 과거 불의의 심판을 받았던 소돔보다 자신들은 훨씬 더 의롭다고 생각할지 모르기 때문에 말입니다. 내가 원수처럼 미워하고 나를 괴롭혔던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그들보다 내가 더 악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48-49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의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예루살렘의 평가보다 훨씬 더 관대합니다. 소돔이 오히려 예루살렘보다 낫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왜 소돔이 심판받았는가? 성적인 타락보다도 오히려 ‘교만’과 ‘풍족함’과 ‘태평함’ 속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돕지 않는 삶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또 다른 진리입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보고 못 본 체 하지 말라는 것이고,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더라도 교만과 풍부함 속에 가난한 자를 도와주지 않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소돔의 평가도 예루살렘보다 낫다고 하시고, 심지어 북쪽 사마리아에 대해서는 본문 5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마리아는 네 죄의 절반도 범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네가 그들보다 가증한 일을 심히 행하였으므로 네 모든 가증한 행위로 네 형과 아우를 의롭게 하였느니라.” 실은 북쪽 사마리아 성읍의 사람들이 너희 유다의 예루살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의롭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왜 우리 예루살렘 사람들을 저 악한 소돔사람들이나 우리가 상종조차 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비교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저들보다 훨씬 더 의롭고 깨끗한 자들이지 않습니까? 하고, 따져 묻기 때문에, 그렇게 빗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너희들은 오히려 그들보다 하나도 나은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있잖습니까? 본문 60절 이후의 말씀을 통해 회복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여기에서 말하는 영원한 언약이란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요, 모세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이요, 그 언약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리스도 보혈의 속죄로 맺은 언약백성을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신 이유는 남편을 버리고 음행한 아내처럼 악행을 저지르고, 교만하여 가난한 자를 멸시하더라도, 은혜를 베풀어 다시금 회복하게 하신다는 것이요, 그것은 곧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만천하에 알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나 인간의 월등함 때문에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게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에 기인하는 일이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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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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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나도 이런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자라는 것, 그럼에도 나의 죄악을 용서해주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자녀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 그런 은혜를 기억한다면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어찌 교만하거나, 가난한 자를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그 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더더욱 살 수밖에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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