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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에스겔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겠느냐(겔14:1-23)

by 똑똑이채널 202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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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의 제 첫 계명은 출애굽기 20장 3절에 있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입니다. 애굽을 탈출해 새로운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금 옛 노예생활로 돌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한 명령이죠. 물론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십계명을 받은 이후로 끊임없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해보이고 더 좋아 보이는 것들을 따라가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구원과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언약의 제공자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언약의 수혜자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계명들과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언약과 명령은 단순히 그걸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히 언약을 지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면 계명이 자연스럽게 계명이 지켜지지만, 바른 관계가 없이 언약을 지키는 건 하나님께 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십계명을 말씀하시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어떻게 관계를 정립하시는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20장 2절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실은 유대인들이 이것을 제1계명으로 지키고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왜 중요한 계명입니까? 이 계명이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너희들은 애굽의 종 되었던 자들이라는 것, 그게 본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 자유케 해 주시고, 민족을 형성케 해 주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같은 십계명 본문이 기록된 신명기 5장 3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그런 그들의 정체성, 종과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케 된 그 신분의 정체성은 과거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 향한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라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첫 단추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 이외에는 신이 없음을 알고 우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죠.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셨고, 신실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어떤 상황과 어떤 조건에서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수행하시는 분이셨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찾고 구했습니다. 이웃나라가 쳐들어오거나, 바라던 것을 이루어야 할 때 이스라엘은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찾았죠. 그러나 이스라엘이 평안하여 고민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들을 좇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만한 것들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지고 말았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져버린 이스라엘에게 돌아올 것은 1차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 2차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많은 언약들이 무효화 되는 것이었죠. 그로 인해 약속된 많은 복의 실현은 무기한 연기되고,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고통에 처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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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YES24

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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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져버린 이스라엘이 다급한 상황에서 다시금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의 장로 두 사람이 에스겔을 찾아오는 게 그것이죠. 이스라엘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온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성경학자들은 B. C. 591년경으로 봅니다. 이 시기에는 에스겔 13장에 기록된 것처럼 많은 거짓 선지자들은 막연한 희망의 예언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예언과는 달리 바벨론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라의 혼란 속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이 에스겔을 찾아온 것이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장로들이 겉으로는 그렇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 같지만, 3절은 그게 아님을 증명해줍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겠느냐’ 바로 이 말씀이 그들의 진정성이 없는 모습임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에스겔을 찾아 온 그 장로들이 실은 우상숭배자들이요,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찾아 온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최우선에 둔 게 아니라 당면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에스겔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하나님을 이용하려 든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생각을 환히 꿰뚫고 계셨는데, 본문 3절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리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너 사람아, 이들은 우상에나 마음이 쏠려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죄짓게 하는 올가미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어처구니없게도 나에게 알아볼 일이 있어 왔구나.”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장로들의 마음에 이런 이중적이었다면,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도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보험회사 직원을 찾는 것 같은 격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성경은 보험약관이었고 하나님은 보험회사 직원처럼 인식되어 하나님을 특별한 관계를 맺어야 할 대상이 아닌 약관에 기록된 대로 실행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것 뿐이죠.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아닌 나라의 위기 상황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의 마음에 우상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완악한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늘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본문 6절에서, 그리고 11절에서 말씀하시죠.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난국의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 나라의 위기를 타파하려고 대비책을 세우기보다도 먼저 나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게 더 우선시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가증한 우상숭배의 죄악을 토해내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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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YES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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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사역의 방향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이 활동해야 할 시대는 선지자나 장로들 할 것 없이 모두 각자의 우상을 섬기고 있는 완악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 에스겔이 어떤 사역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노아, 다니엘, 욥을 들어 알려주고 계십니다. 노아, 다니엘, 욥은 각자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고자 극도의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붙든 대표적인 인물들이죠.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내가 속한 공동체의 건강한 모습으로 인해 저절로 구원을 얻는 시대가 종식(終熄)이 되었고, 이제는 구원이 철저히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에스겔의 사역은 개개인이 노아와 다니엘과 욥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붙잡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바꿔 말해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으면 너희의 혈연 등으로 얽힌 누군가 의로운 삶을 살아도, 너희 자신이 바로 서지 못하면 결코 구원받지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본문 20절에 담겨 있습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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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YES24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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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 시대 안에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길 원하신다는 것이죠. 우리 각자가 에스겔, 노아, 다니엘, 욥이 되길 소망하고 계십니다. 세상과 교회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우리 각자가 소신 있게 믿음의 길을 지켜나가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오늘도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내가 가야 할 길을 바르게 걷게 하시옵소서. 기도하며 출발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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