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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에스겔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겔13:1-23)

by 똑똑이채널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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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에스겔 13장은 거짓선지자들을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3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2-16절로 남자선지자들의 욕심과 거짓에 대한 경고입니다. 2절에 보면, ‘인자야’로 시작합니다. 이는 에스겔을 호칭하는 단어인데, 또 다른 의미에서는 모든 연약한 인간을 칭하는 호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3-4절을 보면, 그 인자 곧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들에 대해 화가 있을 것을 경고하십니다.

 

이 선지자들을 두 가지 이미지로 설명을 하죠. 먼저는 ‘여우’입니다. 4절에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으니라이른바 ‘페허 더미에서 무언가를 챙기려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여우입니다. 그 여우는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15-18을 통해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누가 여우요, 누가 이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사역을 하고, 수많은 책을 출판하고, 분주하게 무언가를 한 이후에 남는 게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추종하고 남는 자들이 탐욕의 화신이 되어 있다면, 성공주의만을 부각시킨다면, 어찌 그것이 여우요 이리이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또 다른 하나는 ‘회칠한 자’입니다. 10-11절에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그것이 무너지리라 폭우가 내리며 큰 우박덩이가 떨어지며 폭풍이 몰아치리니 그 담이 무너진즉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것에 칠한 회가 어디 있느냐 하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서 사용된 ‘담’은 아주 임시적으로 간이 막이 정도의 역할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담에 바른 회들도 그리고 담도 폭우가 내리고 우박이 떨어지고 폭풍이 몰아치면 다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하죠. 이 폭풍으로 인해 발랐던 회도 다 드러나게 되고, 부실한 내부공사도 다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래 위에 지은집이 연상됩니다. 마태복음 17:24-27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고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그렇기에 앞에 언급된 마태복음 17장15-18절의 열매를 통해 알게 된다는 말씀과 마태복음 17:24-25절의 모래위에 지은 집을 연결해 주는 2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무엇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신행일치가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최후를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이죠. 같은 맥락에서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역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2절부터 16절까지, 남자 거짓 선지자들을 일컫는 거죠.

그들은 이스라엘이 언약백성으로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바벨론을 통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는데도, 그 말씀을 들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평강의 묵시만을 선포했던 것이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남자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 보다 사람을 의식했기 때문이고, 그들이 탐하는 재물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 결과는 모래위에 세워진 집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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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재산 잃고 자식들 다 죽고 심지어 그의 몸에 악창이 들끓을 때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욥이 고난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 때문이라고 했죠.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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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문 17-23절은 거짓말 하는 여선지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여기서 그들의 성격을 표현해 주는 그림 언어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부적’과 ‘수건’입니다. 18절에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 있을 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부적과 수건을 꿰매어주고 수건을 같은 것으로 면사포를 씌어주면서 돈을 받았습니다. 마치, 경조사로 또는 특별한 기도를 해주고, 점쟁이처럼 복채를 받은 것이죠. 그랬으니 기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향해 이리처럼 여우처럼 달려들었던 것이죠.

19절에 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 도다그들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팔아먹고 살고 있는 이들이 바로 당시 여선지자들이였습니다. 그 말씀을 생각하자니 요한복음 10장 12-13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라

목자는 양의 주인입니다. 반면, 삯꾼은 양을 돈 받고 돌보기 위해 고용된 이들입니다. 그래서 삯꾼은 주인 의식이 없습니다. 돈만 받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관리는 하지만 관계는 없습니다. 사무적 관계는 있으나 생명있는 관계는 없습니다. 서로 피해주지 않고, 혹 어려운 일이 생기면 피해 버립니다. 주인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주일날 나눈 말씀을 떠올리자면, 예수님께서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에, 자기 편하고 자기 욕심만을 위한 길을 택하는 자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거짓말로 예언하는 여선지자들은 목자가 아니기에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들입니다. 2006년 토론토 코스타에서 어느 분이 홍정길 목사님에게 상담을 했는데, 그때 그런 질문을 드렸다고 하죠. 목사님. 목회와 사업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하고 말입니다. 그때 홍정길 목사님께서는 그렇게 답을 해 주셨다고 하죠. 사업은 이윤을 추구하지만 목회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죠. 영혼을 살리는 일이 목자가 하는 일이요, 목자는 그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이죠.”

우리는 궁극적으로 주님 앞에 다 양들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다만 저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목회자로서 앞선 양이요, 장로님도 권사님들도 집사님들도, 그리고 먼저 믿은 자들은 다 앞선 양들이 되어야 합니다. 양은 바로 미터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맨 앞의 양, 그 앞의 양을 보며 따라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앞선 양들이 모범을 보이는 데로 따라오는 뒤의 양들이 영향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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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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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앞선 양들이 누구를 모범 삼아 앞선 양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요한복음 10장 17절에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앞선 양들은 자기 목숨을 내어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범 삼고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이리나 여우처럼 사는 길이 아니라, 순전한 주님의 양으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들 희생이나 헌신하기를 꺼려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앞선 양들을 분명코 셈하시고 상급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헌신과 희생하는 앞선 자들의 집은 모래위에 지은 집이 아니라 반석위에 지은 집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기에 ‘도미네, 쿠오 바디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까?, 묻고 살아가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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