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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한 섬에 걸리리라(행27:23-26)

by 똑똑이채널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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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섬에 걸리리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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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죠.

그 중에 에서가 형이고 야곱은 동생이었죠.

그런데 형이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야곱이 부당하게 가로챘죠.

그 일로 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밧단 아람으로 달아났죠.

 

그곳에서 야곱은 20년 넘게 고생고생하며 살았죠.

드디어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자 네 명의 아내와 11명의 아들들 그리고 양과 낙타를 이끌고 고향길로 돌아갔죠.

그런데 그 귀향길 베들레헴에서 야곱이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막내 아들을 낳다가 난산 끝에 그만 숨을 거두죠.

 

그때 그녀는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죠.

‘슬픔의 아들’이란 뜻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 엄마를 잃은 채 젖도 빨지 못하니 그야말로 슬픈 인생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불렀죠(창35:18).

‘베냐민’이란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왜 야곱이 그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겠습니까?

태어난 운명은 기구하고 슬프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오른손으로 붙들면 능히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해석했기 때문이죠.

그만큼 야곱은 밧단 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살 때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 체험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에 지금 기구한 운명 속에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믿음으로 해석하며 지은 것이죠.

 

(성화2)그런 상황은 엘리제사장의 며느리도 똑같았지만 전혀 달랐죠.

당시 엘리 제사장은 노욕으로 인해 영적인 시력이 흐려진 상태였죠.

엘리에게는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었는데 그 아들들은 성막에서 죄를 저질렀죠.

그런데도 그 아들들의 죄를 묵과하고 넘어갔으니, 그 백성들조차 영적으로 바로 설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때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투를 벌였는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법궤만 있으면 이길 거라 생각해 그 전투에 가지고 갔죠.

하지만 그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패했고, 법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죠.

그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그 전주에서 죽고 말았죠.

그 소식을 전해들은 98세의 엘리 제사장은 너무나도 큰 충격 속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죠.

 

그때 엘리 제사장의 둘째 며느리가 해산할 날이 임박했죠.

그녀는 자기 남편도 죽고 시아버지도 죽고 하나님의 법궤까지 빼앗겼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진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여인도 야곱의 아내 라헬처럼 난산 끝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때 그녀가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 곧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다’(삼상4:21)는 뜻으로 지었죠.

 

왜죠?

그 아들이 태어날 때 어미도 아비도 할아비도 모두 죽었으니 그야말로 하나님의 보살핌이 떠나갔다면서 이가봇으로 지은 거죠.

그런데 만약 그녀 곁에 하나님은 결코 떠나가지 않았다면서, 치셨지만 다시 살리실 것을 믿은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그 이름을 달리 지었겠죠.

중요한 것은 그녀가 죽을 때 그녀 곁에는 야곱과 같은 믿음의 사람, 믿음으로 해석하는 신앙의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죠.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죄를 지을 때, 탐욕 속에 살 때, 그것을 깨우치도록 치실 때가 있습니다.

사기꾼 야곱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으시고자 20년간 그를 찢으시는 듯한 힘든 삶을 통과하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과정으로 당신의 자녀를 치고 때리고 찢으시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해 다시금 세우시려는 것이죠.

 

(적용)그것은 마치 호세아가 고백하는 것과 같죠.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6:1-3)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치고 찢으시는 것은 고름투성이인 우리의 환부를 도려내 새살이 돋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내 삶을 치시거나 찢으실 때 바로 그때가 치유의 은혜를 덧입을 시간이 되는 것이죠.

그만큼 우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바라본다면 셋째 날에 다시 살리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해석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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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 권성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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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계속 살펴본 본문 23-25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바울이 믿음으로 고백한 내용입니다.

내가 속한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이 고백은 바울은 뭔가 육신적으로 안락하고 평안하고 부요한 상태에서 한 게 아니죠.

지금 바울과 그 일행은 유라굴로 광풍에 휩쓸려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해와 별도 보지 못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디로 흘러가든지 알지 못한 상황이죠.

그만큼 그 배에 탄 276명의 사람들은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생존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죠.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바울이 본문과 같이 믿음의 고백을 선포한 것입니다.

 

(깨달음)어떻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인생 아니겠습니까?

인생은 잔잔한 호수와 같은 게 아니라 크고 작은 폭풍이 일어나는 바다와 같다는 것 말이죠.

우리가 여태껏 살아 온 인생도 그와 같은 항해일지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그 폭풍 때문에 우리는 더욱 단련된 뱃사람의 근육처럼 영적인 근육이 단련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와 같은 우리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볼 때 앞으로도 우리의 인생 항해길에 크고 작은 폭풍을 만날 수도 있는 거죠.

그 폭풍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승화시켜주시고자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유라굴로 광풍을 맞을 때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본문)그런 믿음의 선언을 한 바울은 본문 26절을 통해 이렇게 선언하면서 끝이 납니다.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원해)여기에서 ‘걸리리라’하는 헬라어 ‘에크핍토’(ἐκπίπτω)는 ‘떨어뜨리다’(to fall down from be cast) 뜻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 276명이 탄 배를 하나님께서 한 섬에 떨어뜨려 놓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추측성으로 한 말입니까?

바울이 말한 게 ‘우리가 어떤 섬에 걸릴 수 있을 거야’, ‘어떤 섬에 걸릴지 몰라’하고 말한 것입니까?

아니죠. 아주 확고하고 단호하게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말한 것이죠.

 

(깨달음)이것은 바울이 현재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해석한 고백입니다.

신앙은 현재 주어진 상황한 믿음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 배에 탄 276명의 사람들은 모두가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초죽음이 된 상황입니다.

그 광풍 때문에 해와 별도 볼 수 없어서 그 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바울이 그렇게 선언을 했죠.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한 것입니까?

 

바울은 어젯밤 주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통해 말씀해 주신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그렇게 선포한 것이죠.

어젯밤 주님은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설 것이다. 이 배에 탄 사람들을 다 네게 주었다”하고 말이죠.

그만큼 주님께서는 유라굴로 광풍 때문에 몇 날 몇일 폭풍에 떠밀려 왔지만 분명코 하나님의 종이요 순교자로 부름받았다는 걸 바울에게 확신을 불어넣은 것이죠.

‘바울아. 네가 로마 황제 앞에 서서 내 복음을 전해야 한다’하고 말이죠.

‘그러니 이 배가 파선당하게 내가 놔 둘 것 같으냐’하신 것이죠.

 

그렇다면 정말로 그랬을까요?

다음에 살펴보면 알겠지만 사도행전 28장 1절에 보면 알렉산드리아 배가 멈춰선 섬이 나옵니다.

그 섬은 멜리데섬입니다.

오늘날 지중해의 몰타섬이라는 곳입니다.

그 섬은 알렉산드리아 배가 출항한 그레데섬에서 보면 로마 수도로 향하는 중간 길목에 위치한 섬입니다.

바울을 포함해 그 배에 타고 있던 276명 전원이 그 섬에 당도하게 되죠.

 

그러니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주도하신 그 광풍을 통해 모두 두려움에 빠지게 했지만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게 만드신 것이죠.

그 일을 통해 당신이 계획하신 섬에 떨어뜨려놓고자 인도하신 광풍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로 하여금 로마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주님의 구원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바로 그 사실을 온전히 믿었기에 바울은 “우리는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것입니다.”하고 확신에 찬 선포를 한 것이죠.

 

(적용)그렇기에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믿음은 ‘해석’입니다. 지금 내 삶에 주어진 상황에 대해 믿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내 삶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신뢰를 받는 신앙인이 될 수 있고 하나님과 무관한 세상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라헬은 자기가 죽어가면서 낳은 아들을 베노니로 슬픔의 아들로 지었지만 야곱은 달리 해석하지 않았습니까?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말이죠.

내가 20년간 외삼촌 집에서 죽을 고생하며 살았지만 그 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에, 그 아들의 이름으 베냐민으로 지은 것이죠.

그것이 믿음의 사람이 지녀야 할 인생의 해석이죠.

 

그러나 영적으로 아둔한 엘리 제사장도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혀 믿음의 해석을 지니지 못했죠.

그 까닭에 며느리가 죽어가면서 아들을 낳을 때 이가봇이라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다고 지었지만, 그 누구도 그 이름을 바꿔준 이가 없었죠.

신앙의 해석을 참되게 하면서 산 믿음의 사람들이 그 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은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믿는 해석으로,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것이라고 확신에 차한 고백을 한 것이죠.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우리를 낫게 하시고 싸매주셔서 새롭게 하시는 믿음의 해석을 지니며 살길 원한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실까요?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네 인생의 유라굴로 광풍을 맞았을 때 어떤 믿음의 해석을 갖고 그 상황을 이겨내며 살았느냐?”

너는 야곱의 아내 라헬이 죽어가면서 아들을 낳을 때 베노니로 슬픔의 아들로 지었지만 너는 야곱처럼 베냐민으로 지을 수 있었겠느냐?”

너는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가 죽어가며 아들 이름을 이가봇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갔다고 했는데 너는 그때 믿음으로 해석하며 믿음의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신앙은 해석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바른 믿음으로 세우고자 치시고 찢을 때가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다시금 세우시려는 것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끝나는 것 같았지만 3일만에 다시금 살려서 만 왕으로 왕으로 우뚝 세우신 것처럼 말이다.”

본문 속의 바울도 바로 그 믿음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망망대해헤서도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것이다, 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한 것 아니더냐?”

그러니 너에게 유라굴로 광풍과 같은 인생의 파도가 밀려들 때 그 속에서도 네 인생을 새롭게 세우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해석을 갖고 살기를 원하노라.”

 

(찬양)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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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흔들릴수록 우직해야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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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 고난받으신 날들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의 넷째날 수요일입니다.

어제 주님은 성전기득권자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시면서 돈바꾸는 자들과 장사치들의 상을 엎어버렸죠.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지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이죠.

바로 그런 권세를 누구에게 허락받아서 했는지, 성전기득권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죠.

 

물론 그들의 질문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죠.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게 옳은지 그른지 질문공세를 퍼부었죠.

첫째 형이 결혼해 죽은 후에 일곱째까지 해서 형수를 취했을 때 부활 때 누구의 아내가 되는지 질문공세를 퍼부었죠.

율법 중에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공세를 퍼부었죠.

그때마다 예수님은 그들처럼 공격하지 않고 신실하게 대답해주셨죠.

그때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곧 500원 헌금을 드릴 때 전부를 드렸다면서 최고라고 칭찬해 주셨죠.

그리고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거라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어느 때 그런 환란이 올지 물었죠.

그러자 예수님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깨어 있으라고 대답을 해주셨죠.

 

바로 그런 논쟁에 대해 답을 하신 후에 베다니에 도착해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죠.

그때 한 여자가 300데나리온 향유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렸죠.

예수님은 그녀의 행위를 자기 자신의 장례를 준비한 것으로 여기며 칭찬하셨죠.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일도 있었지만 그날 밤 다른 일도 진행되고 있었죠.

가롯 유다가 산헤드린 의원들을 만나 예수님을 팔려는 음모를 꾸민 게 그것이었죠.

예수님은 그걸 모를 리 없었지만 아무런 소동도 없이 그 밤을 맞이했죠.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수요일 날을 맞이하셨는데,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행적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보통 이 날을 ‘침묵의 날’로 여기는 것이죠.

 

(깨달음)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죠?

왜 이날 예수님이 침묵하셨는지 말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알면서도 곧장 진멸치 않고 묵묵히 침묵하셨는지 말입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요 그 길이 십자가 죽음의 길이요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길이지만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부활케 하실 것을 믿음으로 해석하셨기 때문이죠.

예수님 당신의 죽음이 없다면 인류를 죽음에서 살릴 생명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 고통의 길을 침묵속에서 준비하셨던 것이죠.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실지 알 수 있겠죠.

그래요. 주님. 저도 때로는 예수님처럼 침묵하며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가 유라굴로 광풍이 몰아닥칠 때 그것은 나를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연출임을 믿음으로 해석하며 받아들이게 해 주세요.”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팔 자가 가롯유다임을 알고 계셨지만 그를 진멸치 않고 침묵속에서 받아들이셨는데, 그것만이 자신이 죽고 인류가 사는 길임을 해석하셨기 때문이예요.”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 자아가 죽고 내 고집과 내 판단이 죽을 때 예수님께서 사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난다면 기꺼이 나도 예수님처럼 침묵하며 받아들이는 믿음의 해석을 갖고 살게 해 주세요.”

 

(찬양)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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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권성권 - 교보문고

야긴과 보아스 |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 이 책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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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믿음의 해석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위해 우리 주님께서는 때로는 유라굴로 광풍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자녀를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시고자 때로는 치시기도 하고 찢으실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3일만에 살리기 위함이십니다.

지금 그런 과정 속에 있다면 믿음의 해석으로 나를 낫게 하실 주님, 나를 회복케 하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그 하나님을 믿었기에 지금 주어진 고난의 잔 앞에 침묵으로 묵묵히 받아들이신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인생 항해 앞에 어떤 풍랑과 파도가 밀려와도 3일만에 다시 살리실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해석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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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권성권 - 교보문고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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