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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항해는 자를 다 네게(행27:23-26)

by 똑똑이채널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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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 찬송가 508장 1절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세상 널리전하세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일이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천사가 흠모할만한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일들이 그럴까요?

 

(성화)주일일날에도 살펴봤지만 예수님께서 공생애 전에 사신 곳은 갈릴리 나사렛이죠.

그곳은 빈민촌 달동네였습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예루살렘 사람들에 비해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죠.

그러니 그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리가 없다고 사람들은 것이었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가 바로 그 달동네 나사렛 출신의 마리였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한 것이라고는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 뿐이죠.

그랬더니 달동네 마리아가 온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것이죠.

 

(깨달음)그때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한 천사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1:31)

그 말씀 속에서 맨 먼저 나오는 단어가 감탄사 ‘이두’(ἰδού)입니다.

천사가 감탄사를 터뜨렸다는 것은 예수님을 잉태할 동정녀 마리아를 천사가 부러워했다는 뜻입니다.

 

천사가 마리아를 보고 감탄사를 터트린 것은 부러워할 만한 일이지만 그녀 스스로는 죽음을 무릅쓰고 순종한 것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결단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천사도 흠모할만한 놀라운 일을 행하게 하신 것이죠.

 

(성화2)그런 일은 마리아만 그런 게 아닙니다.

구약성경의 룻과 에스더도 마찬가지죠.

에스더는 유대 여인이었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된 여인이죠.

그녀의 이름이 구약성경책 제목으로 사용될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룻은 어떻습니까?

유대인들이 짐승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모압 지방의 여인 곧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과부였죠.

그녀가 잘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남편을 여읜 후에도 홀시어니를 모시고 낯선 베들레헴 땅까지 따라와 모신 것이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자 남의 밭에 들어가 이삭을 주워서 밥을 해 드렸죠.

그때 시어머니와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에게 개가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오벳이고 그는 다윗의 할아버지(룻4:16-22)였죠.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다윗이야 이스라엘 나라에 지금까지도 ‘다윗의 별’로 국기에 떠올라 있을 정도로 추앙받는 인물이죠.

하지만 다윗의 외증조모 룻은 어떻습니까?

그녀는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이방 여인이었고, 그녀도 이른 나이의 남편잃고 개가한 여인이죠.

그 속에서 핏덩이 오벳을 하나 낳아 기른 것 외에 그녀가 위대한 업적을 행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녀를 통해 인류 역사를 새롭게 할 다윗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적용)그러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실은 마리아나 룻처럼 세상에 이름값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우리는 작고 연약하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순종하며 내 곁의 사람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도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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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바울과 275명이 탄 알렉산드리아 배를 강타한 유라굴로 광풍은 그야말로 죽음의 광풍이었죠.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파도와 풍랑이었습니다.

그 광풍이 불어닥치자 사람들은 곡물이든 선반이든 탁자든 자신들의 재산과 선박의 기구들마저 바다에 던졌죠.

그것들이 자기 목숨을 건져주지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그것들은 죽음이 닥쳐올 때 버려야 하는 것들임을 알았죠.

 

그 광풍 때문에 여러날 먹지 못한 채 초죽음이 된 그때 그들 앞에서 일어선 사람이 있었죠.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그들 앞에서 일어난 것입니까?

어젯 밤 천사가 일러 준 말을 그대로 전하고자 함이었죠.

 

그때 바울 275명의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여러분 내가 속한 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말했습니다.”하고 말했죠.

바울 자신은 하나님께 속자라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한 자들입니까, 하고 묻는 질문이기도 했죠.

 

그러면서 “그 사자가 말하기를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하고 했다고 했죠.

바꿔 말하면 바울도 유라굴로 광풍 앞에 초죽이 되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고 실은 50대 후반의 초로의 늙은 나이로 연약한 바울의 실상을 알게 해 주는 것이죠.

 

그런데 왜 그 사자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할 것이다.”하는 사명감 때문이었죠.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명을 받죠.

“너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 복음을 전할 나의 택한 그릇이다”(행9:15)하고 말이죠.

그 사명을 마지막 로마의 네로 황제 앞에 서기까지, 결코 바울은 풍랑에 휩쌓여 죽는 일이 없을 것이란 말씀이죠.

 

(깨달음)그래서 지난 시간에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지금 자기 무죄를 변론하려고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자 로마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완수하까지, 사명자는 결코 해를 받거나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죠.

 

그 사명이란 ‘주님의 종’이자 ‘일꾼’으로 헬라어로 휘페레테스 곧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었죠.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사람은 갑판 위에서 두드리는 북소리에 맞춰 서서히 그리고 빨리 젖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장을 할 수가 없고 자기 영광을 취하는 자가 아니라 그 모든 공로를 선장에게 돌리는 자죠.

바울이 바로 그런 휘레페테스로서 지금 로마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그런 사명자를 일컫는 말이 헬라어로 ‘마르튀스’ 곧 순교자로 쓰이는 말이죠.

우리교회 임직식때 격려사를 한 목사님의 말씀이 지금도 와 닿는데, 교회는 순교자가 있어야 부흥한다고 했죠.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열매를 맺듯이 그렇게 주님의교회를 위해 죽는 자가 있을 때 교회는 부흥한다는 뜻이었죠.

지금 바울디 주님나라를 위해 순교자처럼 죽고자 로마로 향하는 것입니다.

 

(적용)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교회를 위해 휘페레테스와 마르튀스로 살 때 하나님께서 영광받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고자 할 때, 주님께서는 사명자를 결코 데려가시는 법이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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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은 그 말씀과 더불어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 2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원해)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말했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하고 말이죠.

 

지금 알렉산드리아 배에는 누가 타고 있습니까?

총 276명이 타고 있죠.

그 배에는 그 배의 소유주인 ‘선주’가 타고 있고, 그 배의 항해를 책임지고 있는 선장도 승선해 있죠.

더욱이 그 배에는 죄수를 호송하는 책임을 맡은 로마제국의 백부장 율리오도 휘하의 군사들과 함께 타고 있고요.

 

그러니 누가 봐도 그 배는 선주의 것이고, 그 배를 맡은 자는 선장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통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바울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너에게 주었다”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 배에 승선한 사람들을 선주나 선장이나 백부장에게 맡긴 게 아니라 바울에게 맡겼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나와 있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 빠져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보라’(behold see lo)라는 헬라어 감탄사 ‘이두’(ἰδού)라는 단어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헬라어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어떤 말이 되겠습니까?

보라, 하나님께서 바울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바울 너에게 주셨다.”하는 말씀입니다.

 

(깨달음)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자가 감탄사를 넣으면서까지 ‘봐라’하고 말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마저도 바울을 부러워한 것이죠.

 

이 말씀은 서두에서 말씀한 것처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천사가 감탄사를 터뜨린 것은 예수님을 잉태할 동정녀 마리아를 부러워한 것이죠.

지금 천사가 바울에게 ‘봐라.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바울 너에게 다 주셨다’하는 것도 같은 이치죠.

 

(적용)그만큼 마리아나 룻이나 본문의 바울이 잘 한 것은 위험을 무릎쓰고 순종한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결단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천사도 흠모할만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십시오.

마리아가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 잉태된 아기가 정말로 인류의 구원자일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룻이 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기로 결단하고 봉향할 때 다윗이 태어날 것을 생각이나 했겠냐는 것이죠.

바울이 네로 황제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275명의 사람들을 붙여주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훗날 복음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할지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오늘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고 성령님의 감동을 주실 때 우리도 순종하는 걸 기뻐하신다는 거죠.

우리의 순종하는 결단을 통해 주님은 누군가에게는 마리아와 같은 선물을, 누군가에게는 다윗과 같은 선물을, 누군가에게는 바울과 같은 선물을 베푸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아주 하찮케 보이는 일일지라도 믿음으로 순종하고 결단할 때 천사도 흠모할만한 놀라운 축복의 통로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주음성)그래서 주님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친히 이렇게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이 세상에는 천사가 보라하고 감탄하는 일들이 있지 않느냐?”

달동네 나사렛의 마리아가 믿음으로 결단한 것,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기로 결단한 것,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로마 황제에게 전하고자 순종한 삶이 그렇지 않더냐?”

마리아도 룻도 심지어 바울도 그 당대에 누가 알아주기나 하는 사람들이었겠느냐?”

그들이 행한 일은 그야말로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이었지만 그들이 순종하는 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천사도 흠모할만한 추복의 통로로 삼아주신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마리아처럼 룻처럼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네게 말씀하시고 감동을 주실 때 순종하는 결단을 통해 천사도 흠모할만한 은혜의 주역이 되었으면 좋지 않겠느냐?”

바울이 지금 로마로 향하는 것은 자기 무죄를 입증하고자 함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고자 함이지 않더냐?”

너도 바울처럼 주님나라의 휘페레테스와 마르튀스로 살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더 놀라운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지 않겠느냐?”

 

(찬양)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세상 있을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

주 예수 말씀이 온세상 만민들 흉악한 죄에서 떠나라 하시니

이 말씀 듣고서 새생명 얻으라 이 기쁜 소식 전하세

영생의 복락과 천국에 갈길을 만백성 알도록 나가서

전하세 주 예수 말씀이 이 복음 전하라 우리게 부탁하셨네

[후렴]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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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바울이 유라굴로 광풍속에서 건짐받은 후 로마 셋집을 얻어 가택연금 상태로 갇히면서 네 개의 편지를 쓰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였는데 그걸 옥중에서 썼다고 해서 옥중서신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그 감옥에서 기록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두기고’라는 사람편으로 그 편지를 전달하도록 합니다.

그 두기고에 대해 에베소서 6장 21절과 골로새서 4장 7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 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깨달음)어떻습니까?

옛날에는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관계로 우체국이나 집배원이 있을 리가 만무하죠.

그 당시에는 누군가 편지를 수신자에게 직접 찾아가서 전달해줬겠죠.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 교인들과 골로새 교인들에게 쓴 편지를 어떻게 전달했겠습니까?

두기고에게 전해줘서 두기고가 에베소와 골로새 교회를 찾아가 그 편지를 전달해주도록 한 것이죠.

 

로마에서 에베소까지 약 1,500km이고, 골로새는 약 2,000km미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370km인데, 1,500km와 2,000km라면 얼마나 먼 거리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2천 년 전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선박과 도보뿐이라 그토록 먼 거리를 선박과 도보로 여행한다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죠.

 

그런데도 두기고는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한 것이었습니다.

두기고는 오늘날 터키 대륙의 서부지역을 일컫는 아시아 출신(행20:4)이라는 것 외에 달리 알려진 게 없습니다.

그야말로 무명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두기고는 바울이 쓴 편지를 직접 들고 그 먼 거리의 에베소와 골로새 교인들에게 전달해 준 것입니다.

 

(적용)얼핏 보면 하찮은 일처럼 보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찮케 보이는 그 일을 두기고가 하지 않았다면 에베소와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편지를 통해 영적인 힘을 얻을 수가 없었겠죠.

두기고가 그 일에 적극 순종하지 않았다면 2천 년이라는 시공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오지 않았겠죠.

 

누가봐도 두기고가 하는 일이 하찮케 보이는 심부름꾼의 일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로 천사도 흠모할만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하는 것도,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나선 일도, 바울이 로마로 향하는 일도 모두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주님의 시선 속에서 인류를 새롭게 하는 일이요 천사도 흠모할만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게 사람을 대할 때 하찮케 보이는 일에 사랑과 성실을 다할 때 되돌아오는 게 좋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관계맺고 사는 사람에게 사랑과 정성을 다해 대하는데 그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어렵게 할 수도 있죠.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위한 휘레페테스와 마르튀스로 살아가는 한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겠죠.

주님께서는 내가 사랑으로 섬기는 섬김의 일이 하찮케 보여도 그 일을 통해 누군가를 새롭게 하는 통로로 사용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기도)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기도를 기뻐받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주님. 두기고가 에베소서 교회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의 편지를 전해주는 것은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보기에 그 일은 하찮고 사소한 일로 봤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하찮고 볼품 없는 그 편지를 통해 에베소교회와 골로새교회를 새롭게 해 주셨고, 오늘 저희들까지도 새롭게 하는 성경으로 사용되게 하셨습니다.”

주님, 마리아의 일도 룻의 일도 바울의 일도 하찮케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천사도 흠모할만한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저희들이 행하는 일들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일일지라도 주님의 섭리 속레서 천사도 흠모할만한 일인 줄 알고 온전히 순종하며 믿음의 결단하는 휘페레테스와 마르튀스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찬양)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 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자녀들이 행하는 순종과 결단을 통해 놀라운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는 분입니다.

그때 순종하는 그 일이 하찮케 보이고 볼품 없어 보일지라도 지나고 보면 그 일이 천사도 흠모할만한 일일 때가 있다는 것이죠.

마리아가 순종한 그 일도,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나선 일도, 바울이 로마 황제 앞에 서는 일도, 두기고가 그 편지를 전달해주는 일도 말이죠.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이 밥을 짓고 빨래하고, 일터에서 누군가와 협력하고, 교회에서 예배하고 찬양하는 이 일들조차 하찮고 사소한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들 하나하나가 훗날 천사가 흠모할만한 위대한 일이 되게 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아바 아버지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내게 감동을 주실 때 손중하여 그와 같은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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