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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 앞에 섰죠.
그때 그들 뒤로는 애굽 병사가 뒤쫓아 오고 있고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꼴이었죠.
그러니 모세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그곳까지 백성들을 이끌고 왔지만 진퇴양난에 빠졌으니 말이죠.
자칫 하면 백성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일 것 같은 기세였으니 말입니다.
그때 모세가 백성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깨달음)무슨 말씀입니까?
백성들이 모세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자,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애굽 병사든 홍해든 싸우실 것이니, 가만히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게 지팡을 홍해바다로 내밀도록 했고, 홍해가 갈려졌죠.
(적용)우리도 살아 있기 때문에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 두려움이 내게 밀려들 때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의 방식을 따를 때가 많죠.
그러다 코가 깨지고 넘어지고 나서야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죠.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에게도 ‘두려워하지 말고 너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성화2)이것은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사명을 따라 한밤중에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였죠.
그때 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쳤고 배를 타고 있던 제자들이 두려움에 빠졌죠.
그 광경을 바라보신 주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령인가 착각할 정도였고, 모두가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렀죠.
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것이었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마14:27)
그때서야 그 바다 위를 걸어오신 분이 주님이신 줄 알게 되었고, 다들 안심하게 되었죠.
그때 베드로가 주님께 청을 넣었죠.
정말로 주님이시라면 제가 바다 위를 걸어 주님께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죠.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바다위를 걸어오라고 하셨고, 거센 바람에도 아랑곳 없이 주님께 걸어나갔죠.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닥쳤죠.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드로는 순식간에 물 속에 빠져들어갔고 “예수님 저 살려주세요”하고 소리쳤죠.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의 손을 잡아 물 속에서 끌어올리면서 말씀하셨죠.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
(깨달음)왜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것입니까?
왜 베드로는 믿음이 적은 자로 전락한 것입니까?
우주를 주관하신 성자 하나님이 자기 앞에 계신데도 당장 불어닥치는 풍랑과 파도를 더 큰 문제로 바라봤기 때문이죠.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전적으로 내어맡기지 못하면 그렇게 믿음이 적은 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적용)그렇기에 누가 과연 믿음이 큰 사람이겠습니까‘?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이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죠.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날 동안 계속 부딪혀 오는 문제들이죠.
내가 이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것인가, 그 주님을 진정으로 경외하고 의지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내 앞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코자 이 세상의 것을 더욱 의지하고 붙잡고 살아갈 것인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 이 세상의 풍랑이나 폭풍을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는 그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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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알렉산드리아 배에 오른 276명의 사람들은 갑자기 불어닥친 유라굴로 광풍 앞에 속수무책이었죠.
자신들의 목숨을 건지고자 돈이 된다고 생각했던 곡물도 다 바다에 던졌죠.
심지어 배의 의지나 책상이나 탁자 같은 것들도 모두 자기들 손으로 바다에 내던졌습니다.
죽음 앞에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기에, 아무리 돈이 될만한 것들도 사람의 목숨을 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모두가 유라굴로 광풍 앞에 초죽음이 되고, 널브러져 있는 그때 유독 한 사람이 그 배에서 일어섰죠.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모두가 죽음 앞에 절망하며 두려워하고 있을 그때 일어나서 그렇게 말했죠.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 분이 우리 모두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죠.
그 말은, 달리 말하면,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의지하는 자인데, 여러분은 과연 누구에게 속한 자들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신을 신봉하는 자들입니까?”
“그 신들이 혹시라도 돌이나 나무를 깎아 만든 조형물에 지나지 않습니까?”
“내가 속한 하나님,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으로 이 풍랑조차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전능하신 창조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내가 속한 하나님,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 속한 자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시렵니까?”하는 뜻이었죠.
(깨달음)어떻습니까?
그래서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의 조직이나 단체에 속한 자로 살고 있다고 했죠.
초등학교 동창회에 소속되거나 정당의 단체에 회비를 내고 소속돼 있거나 말이죠.
하지만 이 세상에 그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돼 있어도 그것은 유한하기 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진정으로 소속돼 있어야 할 곳은 우리의 생명 다하는 날 천국으로 부르실 하나님께 소속된 자로 살아야 한다고 했죠.
(본문)오늘 본문은 그 광풍이 몰아치는 한 밤 중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친히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원해)여기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헬라어 ‘포베오’(φοβέω)는 ‘공포’(terror)를 뜻하는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자들이 풍랑 때문에 겁을 먹었는데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유령으로 착각해서 두려워하는(마14:26) 것과 같은 격이죠.
그만큼 알렉산드리아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유라굴로 광풍앞에 기겁하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예외였겠습니까?
아니죠.
바울도 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와서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한 것이었죠.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하고 말이죠.
“바울아, 두려워하 말라. 너는 반드시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지금 너와 함께 배에 있는 자들도 너에게 붙여준 사람들이니,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하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원성)그렇다면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게 이번이 처음이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처음으로 고린도를 방문할 때였습니다.
그때 다른 곳을 갈 때도 그랬던 것처럼 바울은 유대인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배교자로 간주해서 조직적으로 음해하며 바울을 배척했죠.
그들 아예 회당에 들어온 바울을 좇아내버렸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바울은 회당 옆에 있는 집을 내 준 유스도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죠
고린도교회의 시작은 바로 유스도의 집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회당 옆에 있는 집이 유스도의 집이라 마음만 먹으면 유대인들은 그 집에 쳐들어와 난동을 피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그들은 바울을 조직적으로 위해를 가하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바울은 얼마나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도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찾아와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18:9-10)
(깨달음)그때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너는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 옆의 유스도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는 게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냐?”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천지 만물의 주관자인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지 않느냐?”
“죄와 사망의 무덤을 열고 부활한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사명을 줬다면 너를 통해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내가 너를 떠날 것 같으냐?”
“내가 너를 통해 구원코자 하는 백성이 이 성에 많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해라.”
“그런 너의 인생을 내가 책임져주고 붙들어 줄 것이니,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
(적용)주님께서 그렇게 강력하게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죠?
바울의 시야가 하나님보다도 으르렁거리는 유대인들에게 쏠려버렸기 때문이죠.
마치 홍해보다도 크신 하나님, 애굽 군대보다도 더욱 크신 하나님인데도, 단지 눈에 보이는 애굽 군대 앞에 눈에 보이는 홍해 물결 앞에 두려워 벌벌 떨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이죠.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시야에서 하나님께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주고자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격려해주시는 말씀에 힘입어, 그 하나님을 시야에 놓치지 않고, 1년 6개월이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은혜)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 세상 걱정과 염려로 인해 두려워하기보다도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도 홍해의 거센 물결을 바라볼 때 너를 뒤쫓아 오는 애굽 군대를 바라볼 때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너도 살아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두려움을 갖는 것 아니겠느냐?”
“너도 제자들처럼 풍랑 속에서 걸어오는 예수님을 봤다면 유령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겠느냐?”
“너도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가다 역대급 풍랑을 만났다면 너도 초죽음이 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겠느냐?”
“그런데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너의 시야에 더 크게 들어와 있는 게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시냐? 아니면 이 세상의 것들이더냐?”
“오직 너는 네 눈에 더 크게 들어와 네 마음을 두렵게 하는 이 세상 것들보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 세상의 일들이 아무리 커서 네 생명까지도 위협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이겠느냐?”
“이 세상에 아무리 어마어마한 황금같은 것이라도 그것이 네 생명을 책임지시는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이겠느냐?”
“이 세상의 것들이 아무리 영원할 것 같아도 그것들을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비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 네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분은 네 인생의 참된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시지 않겠느냐?”
“지금 네가 세상의 것에 두려워하고 세상의 것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 모든 마음의 방향을 오직 주님께 돌아서야 하지 않겠느냐?”
“네 시야를 가린 채 이 세상의 것에 주눅 들어 살게 하는 것보다 네 심령의 시야에 평안을 채워주실 아바 아버지를 의지하도록 말이다.”
(찬양)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네
놀라지 마라 겁내지 마라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주시네
놀라지 마라 겁내지 마라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내 맘이 힘에 겨워 지칠지라도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세상의 험한 풍파 몰아칠 때도 주님 나를 지켜주시네
주님은 나의 산성 주님은 나의 요새
주님은 나의 소망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주님은 나의 산성 주님은 나의 요새
주님은 나의 소망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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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1912년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세상에서 제일 큰 호화 여객선이었죠.
그 배가 처음으로 대서양을 항해한다는 걸 알고 유럽과 미국의 저명 인사들이 그 배에 탔죠.
그런데 그 배가 빙산에 부딪혀 대서양 한 복판에서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구명정 몇 개를 풀어 어린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먼저 구했지만 나머지는 구할 길이 없었죠.
그러니 그 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움에 빠졌겠습니까?
모두가 아우성을 치며 갑판으로 나왔는데, 그때 악단들은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찬송가 한 곡이 장엄하게 울러 퍼졌고, 모두가 그 찬송가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라.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내기도) 그러니 우리가 주님께 어떤 기도를 드려야 기쁨을 받으시겠습니까?
“주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도 매일매일 두려움을 맞이하며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예요.”
“주님. 이 세상의 것이 아무리 크게 다가와도 주님보다 더 크지 않다는 것을 마음 속에 새기며 살게 해 주세요.”
“이 세상의 그 어떤 큰 것들이 나를 유혹하고 흔들어댈지라도 주님만 섬기며 살게 해주세요.”
“제게 부여하신 주님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주님만을 더욱 붙잡고 살게 해 주세요.”
“마지막에 천국으로 부르실 때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를 부르며 주님 앞에 서게 해주세요.”
(찬양)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소원은 늘 찬송 하면서 주께더 다가기 원합니다
내 고생 하는것 옛야곱이 돌 베개 베로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기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야곱이 잠개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것 본받아서
숨질대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찬 33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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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흉흉하고 험악해서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풍랑 앞에 두려워하고 세상의 금은보화 때문에 그것이 주눅들어 두려워하며 살죠.
그러나 그 어떤 풍파가 우리를 두렵게 해도 우리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시고 사망의 무덤을 뚫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 어떤 두려움과 공포와 유혹이 다가올지라도 오직 내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내 심령에 가득 채우며 모시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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