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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이사야

새 하늘과 새 땅(사65:1-25)

by 권또또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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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이사야 65장은 다른 예언서나 이사야서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고, 8-10절은 하나님의 구원을, 11-12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3-16절까지는 앞의 내용들을 요약해 주고 있고, 17절부터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이야기해 줍니다. 이와 같이 이사야 65장은 예언서의 전형적인 틀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예언서의 구성이나 이사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심판과 구원의 틀과는 오늘 본문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언서에서 심판과 구원을 이야기할 때는 그 대상이 동일합니다. 다시 말해 동일한 대상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또 그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구원하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다른 두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암시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사람을 이야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 놓고 말할 정도로 명확하게 구분지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그 대상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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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절을 보면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들 나름대로 예배하고 있는 모습이죠. 또 5절을 보면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하는 무리들 역시 예배하는 자들처럼 보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거룩’이라는 말은 제사장들에게 사용되는 전형적인 말이죠. 그래서 심판을 받는 이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자신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생각한 부류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예배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도식이 아닙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두 부류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구분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연상케 하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 37-4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동일한 밭에 알곡도 있고, 가라지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천국에는 가라지 밭도 있고 알곡 밭도 있는 게 아니라, 동일한 그 밭에 알곡도 있고 가라지도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완성된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 샘플로 보여진 천국, 다시 말해 완성되지 않은 천국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우리도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면서 살지만 완벽한 천국은 아니죠. 성경에 나오는 천국의 모형을 따라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부족하지만 그 천국을 이루며 사는 것이죠. 그래서 이 땅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천국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섞여 있는 모습은 영원한 것이 아니죠.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불사르고, 곡식은 곳간에 들인다고 말씀합니다. 동일한 밭에 가라지와 알곡이 지금은 존재하지만, 그 분의 심판과 구원의 날에는 완전히 갈라진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의 초점은 분명합니다. 첫째는 과연 마태복음 식으로 할 때 ‘가라지’, 오늘 본문에 따르면 2절에 나오는 ‘패역한 백성’,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노를 일으키는 백성’ 그리고 7절에 나오는 ‘하나님을 능욕하는 백성’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하는 첫마디가 그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구하지도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그들은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이라고 칭하죠. 하나님이 원하는 길이 아닌 하나님과 상관없는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악한 길이라고 하죠. 또 3절과 4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같지만 실은 가나안 땅의 이방민족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씀하죠.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이방민족이 제사하는 모습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5절 중반절에 보면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하면서 자기가 거룩하기에 회개 없는 삶을 사는 것이죠. 아니 자기가 거룩한데 도대체 고칠 게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자기가 죄인이고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하면,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고 뉘우치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고치려고 하지 않죠. 제가 목사인데 제 스스로 이 땅에서 제일 괜찮은 목사요, 제일 훌륭하고, 제일 설교 잘하고, 제일 거룩하다고 생각한다면, 뉘우칠 게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처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어라. 너는 가까이 오지 마라. 나와 너는 차원이 달라.”하면서 교만만 떨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무서운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백성에게 정말 무서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를 안 하고, 주일을 가끔 빼 먹고, 십일조도 안 하고, 봉사도 안 하고, 사람들이 교인답지 않다고 무시하는 것, 그것이 무서운 것이겠습니까? 물론 그것들은 보이는 무서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 속에 내용이 없는 것이죠. 기도를 하지만 기도의 본질 된 내용이 없고, 주일을 지키면서 주일을 지키는 내용도 없고, 거룩하다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거룩함의 내용도 없는 것, 그것이 그에게 무서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에 하나님은 진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능욕하는 모습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살펴볼 말씀의 초점 두 번째는 마태복음 식으로 할 때 알곡, 오늘 본문 말씀으로 치면 ‘야곱의 씨’, ‘유다의 자손’, ‘나의 종’들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종들이 뭘 어떻게 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뭘 어떻게 하셨고, 어떻게 하실 것이라는 것만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종들의 진정한 자세라는 점입니다.

로마서를 살펴볼 때 바울이 맨 먼저 자신을 향해 하나님의 종 바울이라고 소개하죠. 자신이 비록 로마서를 쓰고 있지만, 결코 자기 자신을 먼저 자랑하거나 으스대지 않는 자세입니다. 종은 자기 자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종은 주인의 시간표대로, 주인의 약속에 따라 움직이는 자죠. 그에게 있어 인생의 과거란 주인이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추억하는 것이고, 그에게 있어 인생의 현재란 주인과 함께 걷는 것이고, 그에게 있어 인생의 미래란 주인이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믿고 따라가는 것이죠. 그처럼 오늘 본문의 유다 자손들, 나의 종들, 마태복음의 알곡들이 바로 그런 종의 자세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나의 길, 나의 의, 나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의탁하며 사는 자들 말입니다. 그것이 실은 우리 인생의 내용이요, 의미라는 것입니다.

 

초점 세 번째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허락된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는 점입니다. 17절 이하의 말씀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에 관한 말씀이죠. 주일날 나눈 말씀에 비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하는 그 천국의 거처에 관한 약속 말입니다. 3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 천국은 첫째는 영원한 기쁨이 눈물과 통곡을 대신하는 곳(18-19절), 둘째 영원한 생명이 슬픔과 죽음을 대신하는 곳(20-23절), 그리고 셋째는 영원한 평안과 평화가 있는 곳(25절)입니다. 영원한 기쁨, 영원한 생명, 영원한 평안이 있는 나라가 그와 같은 진실한 하나님의 종들에게 허락된다는 것이죠.

 

오늘도 그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되 내용 없는 삶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용 있는 삶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종들로, 새 하늘과 새 땅(사65:1-25), 영원한 하늘나라의 처소에 입성할 수 있는 그런 천국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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