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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이사야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사63:1-19)

by 권또또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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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는 두 가지 큰 주제를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심판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이죠. 이사야 1-39장까지가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40-66장까지가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죠. 물론 심판 속에서도 회복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구원 속에서도 심판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심판과 구원이 교차된 부분이 많이 있었죠.

오늘 읽은 이사야 63장은 이사야서의 후반부 속의 후반부에 속한 장입니다. 여기에서도 구원이라는 큰 흐름이 전개되지만, 그 속에서도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1-6절까지 보면 심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심판자이신 주님의 대화 형식이 이어집니다. 1절 상반절이 이사야 선지자가 이상(異象) 중에 무언가를 보고서 하는 질문 내용입니다.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에돔은 이스라엘 사해 남동쪽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1절에서 언급된 ‘보스라’는 에돔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죠.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남동쪽에서부터 붉은 옷을 입고 화려한 의복을 입고 큰 능력으로 걸어오는 분이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주님께 던졌던 것이죠. 그러자 그 질문에 주님께서 대답을 하시는데, 1절 하반절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네가 이상 중에 본 그는 바로 나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죠.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는 2절을 통해 다시금 질문을 합니다. 개역개정에서는 다소 불손한 느낌이 드는데,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리면 이렇습니다. 어쩌다가 당신 옷에 붉은 물이 들었습니까? 당신 옷은 마치 포도즙틀을 밟다가 물든 것 같군요이사야 선지자가 심판자의 모습을 보니 큰 능력으로 걸어오시는데, 입은 옷이 화려하고 붉었으며, 자세히 보니 붉어진 옷이 마치 포도즙틀을 밟아 생긴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렇게 두 번째 이사야 선지자가 질문을 던졌을 때, 주님께서는 3-6절을 통해, 포도즙틀을 밟았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죠. 물론 그것은 비유입니다. 포도즙틀을 밟았다는 것은 심판의 대상을 포도주처럼 짓밟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모습처럼 심판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피가 그들의 옷에 튀었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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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1-6절에서 언급된 심판의 대상은 과연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일차적으로는 ‘에돔’이죠. 시편137편 7절에 에돔은 이스라엘을 향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하고 저주를 퍼부은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에돔은 에서의 후예들 아닙니까? 에서는 또 누구입니까? 야곱과 형제지간이죠. 그런데 서로 형제지간을 이루며 화목하게 살아야 할 에돔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가로막고, 저주하는 형국을 취한 것이죠.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빠져 나와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께서께서 그 에돔을 향해 포도즙틀을 밟듯이 밟아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에돔만 심판의 대상이 되겠습니까? 에돔 이외도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광야 시절 미디안 족속들, 모압 족속들, 암몬 족속들도 그랬고, 가나안 시절에 블레셋 족속도 마찬가지였죠.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굳이 에돔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대표성을 띤다고 할 수 잇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길에 방해하고 훼방꾼 역할을 한 모든 족속들을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심판하시는데, 그 중에 형제로서 지켜주고 보호해 줘야 할 도리를 다하지 않은 에돔의 죄악이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10) 그 때의 의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에 대한 의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을 때 핍박을 받을 수 있지만, 기필코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아버지시죠.

그런 에돔 족속들을 심판하는 그 날은 심판의 대상자들에겐 무서운 날이 되지만,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에게는 기쁨의 날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이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구원은 오직 한 분에게만 있습니다. 3절에 보면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라는 표현, 또 5절에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판의 과정이 힘에 버겁다거나 혼자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실 분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죠.

본문 7-14절까지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회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출애굽 해서 홍해를 건넌 사건을 회상하고 있죠.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근거합니다. 7절에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또 8절에서는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당신의 선택된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악한 자들로부터 지켜주고, 하나님의 길로 나가는 자들이 훼방할 때 그들을 심판하시면서 까지 당신의 백성들을 지켜주시는데, 과연 그런 자비와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응답해 드렸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자기 탐욕과 우상을 좇아 살았죠. 하나님을 향해 반역한 모습이 그것이죠.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짓을 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본문 10절에서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긋난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대적을 일으켜 그들을 치쳤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사사시대의 적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바로 세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죠. 그래서 사랑의 채찍을 하신 것이었죠.

그것은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성령의 이끄심에 불순종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질로 치시죠. 그때의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질이 이웃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는 일일 수도 있고, 또 가정과 자녀들의 어려움일 수도 있죠. 심지어 육체적인 질병으로 목숨이 위태할 수도 있죠. 그것은 끝단계라 할 수 있죠. 바로 그런 모습들이 사사시대의 사이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 하나님의 징계 이스라엘의 회개 하나님의 구원 그리고 이스라엘의 평화가 그 순서였죠. 그것이 300년 넘게 되풀이 된 사사시대 모습이었죠.

 

오늘 본문 15-19절 마지막 절까지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구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기도가 64장 마지막 절까지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왜 하나님께 자비와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징계를 받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과거에 자신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상고하면서, 또다시 그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죠.

그와 같은 기도 내용 중에 유독 돋보이는 부분이 있죠. 16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부분이 그것입니다. 사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죠. 어쩌면 구약에서 이 부분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이사야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본문 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친밀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신들을 향해 사랑과 자비로 다시금 세워달라고 간구하고자 함이죠.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그 분의 사랑과 자비를 구하며 사는 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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