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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이사야

이스라엘의 파수꾼은 맹인이요(사56:1-12)

by 똑똑이채널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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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이사야 56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사건이 바로 그것이죠.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주님은 그 성전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죠.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11:17)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오늘 본문의 7절 하반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하는 그 말씀 말입니다. 주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해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표명하셨죠.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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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사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이방인이나 고자는 소외받는 계층을 대표한 이들입니다. 이방인들은 우상숭배와 이교적인 문화로 인해 처음부터 이스라엘 공동체에 소속될 수 없었죠. 또한 고자, 다시 말해 성불구자들은 자녀를 낳을 가망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 내에서 배제의 대상, 수치와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은 문둥병 걸린 자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모세의 율법에 그런 이방인과 고자에 대해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을 이스랑레 공동체 밖에 두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원천적으로 배척하라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올바른 정체성과 거룩함을 지키도록 한 안전장치였던 것이죠. 이를테면 오늘날 동성애 관련된 입장도 마찬가지죠.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고 아이를 입양한다? 여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입양한다? 그런 동성애는 결코 하나님의 법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부부가 되고,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리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요, 섭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동성애자들을 권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결혼하여 자녀를 입양했을 경우에 그 자식이 과연 누구를 아버지로 누구를 어머니로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이 가중되겠죠. 자기는 본래 의사도 없이 그 동성애자 부모에 의해 강제로 입양되는 꼴인데, 그 아이가 훗날 성정체성의 혼란속에서 방황하고 고통받을 일을 생각하면, 과연 그게 옳은 일이겠냐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일이 아니고, 그 아이도 원치 않는 일이죠. 그래서 동성애자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런 성적소수자의 존재는 인정해주고 존중해줘야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마치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이방인과 고자나 성적불구자나 문둥병자는 그 공동체의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데 제한을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의 거룩한 그 정체성을 따르는 율법의 내적 의미는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왜곡되고 오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 안쪽에 있는 내 뜰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적어도 바깥쪽의 외 뜰에는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는 있었죠. 하지만 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들은 로마의 권력과 결탁하여 성전 외 뜰의 이방인들 출입자체를 금지해버렸고, 자신들의 허가를 받은 장사꾼들을 앉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사꾼들이 제물에 쓸 짐승들을 사고팔게 했고, 이문을 나눴던 것이죠. 성전제사가 막대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수익사업으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그 이권을 챙기기 위해 율법을 앞세워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이방인들을 내쫓아버린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동성애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이탈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까지는 차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과 성전권력자들은 그렇게 탐욕에 물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주님을 만나고 싶어 해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렸던 것이죠. 그런데 그런 탐욕의 모습들이 예수님 시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을 향해 이사야 선지자는 서슬 퍼런 독설을 내뱉습니다. 본문 10-12절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그렇게 성전과 율법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채우는 자들, 자기 탐욕을 채우는 자들을 ‘개의 탐욕’에 빗대서 독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독설이 과거의 종교지도자들에게만 향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죠. 오늘 이 시대에도 그런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이 독설이 종교지도자들만 귀담아 들어야 하는 메시지는 아니죠.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가슴으로 듣고 마음의 옷을 찢으면서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민’을 다른 말로 바꾸면 ‘누구나’입니다. 즉 성전은 ‘누구나’ 기도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누구나’라는 표현은 성전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에는 제한이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누구나 성전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가 다 예배하는 자인가? 모두가 예배당에 나와 기도한다고 해서 모두 진실되게 기도하는가? 그렇지만은 않죠. 주일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지만 모두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자기 탐욕과 관련해 예배하러 나온 이들도 있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러 나온 이들도 있죠.

 

그렇다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의 참된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과연 기도하는 그 집에 들어가 예배하며 기도하는 자이겠습니까? 본문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만민이 기도하는 그 집에서 진정으로 예배하며 기도하는 자란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자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안식일이 중요합니까? 오늘날 왜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까?

모세는 안식일에 대한 명령을 포함해 십계명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면서 십계명의 서론을 이렇게 명시한 바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20:2) 우리가 성숙자반의 십계명을 살펴볼 때 처음에 읽었던 말씀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의 근간이 되는 말씀이 바로 거기에서 출발한다고 말입니다. 애굽 땅 종 되었던 그곳에서 그들을 인도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을 잊지 않고 영원토록 기억하는 방법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내 생명, 내 삶의 의미와 가치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는 뜻으로 오늘도 그 안식일 곧 주일을 지키는 것이죠. 그런 마음과 자세로 주일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며 주님의 전에 나오는 자, 그런 자가 바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의 진정한 의미를 따르는 자입니다.

그런 자들은 본문 6절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진정으로 연합하여 사는 자들입니다.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기도는 하나님과 연합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누구나 하나님과 연합하지 않죠. 기도는 하나님이 크심에 나의 존재를 얹는 것인데, 나의 욕구를 뱉어내기만 한다면 결코 하나님과 연합할 수가 없겠죠. 진정으로 기도하는 자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분의 감동하심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내 삶을 얹고, 내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 맞출 수 있죠. 바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는 사람이요, 진정으로 기도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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