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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인터넷 기사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남미 베네수엘라의 한 고속도로에서 소를 실고 가던 트럭이 전복됐는데, 그 트럭 안의 일부 소는 죽고, 일부는 빠져나갔고, 그리고 일부는 생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소가 실려 있는 트럭이 전복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곳 주민들이 몰려와서 살아 있는 소들을 도살해갔다는 것입니다. 토막을 내서 가져간 것이었죠.
가끔 선진국에서 대규모 정전이나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에 약탈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긴 한데, 남미 베네수엘라의 그 사건은 그곳 사람들이 후진국 사람들이라 그랬을까요? 선진국과 후진국을 떠나 인간의 죄성 때문에 그렇겠죠. 몇 년 전에 다큐영화를 제작할 목적으로 여의도 14층 높이에서 만 원권을 약 5억원 어치 뿌렸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죠. 그곳에 있던 서울 시민들도 그 돈을 주워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의도된 위조지폐였다고 하죠. 그만큼 인간은 다 죄성 아래에 있는 것이죠.
사람들의 심리 중에는 값없이 무언가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공짜로 준다고 해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합법적으로 대형 마트에서 행사의 일환으로 하루 동안 물건을 모두 공짜로 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식간에 매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겠죠.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이 이렇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돈이 많은 사람들은 공짜에 머뭇거리며 혹시 함정이나 있지 않을까 의심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자에게는 그것은 분명 희소식입니다. 그런데 본문 1절 말씀은 표면적으로는 포도주와 젖과 같은 생필품을 주겠다는 것이지만, 내면적인 의미는 값진 양식을 나눠주겠다는 뜻입니다.
2절을 보면 그 의미가 더 깊에 드러나 있습니다. 2절 하반절에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좋은 것이란 포도주와 젖과는 달리, 평소에는 잘 먹어 보지 못한 특별한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했는데, 최고급 한우 등심을 먹는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 역시 표면적으로는 좋은 먹을거리를 가리키지만 내면적으로는 더 값진 양식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2절 상반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라고 말씀하죠. 양식이 아닌 것이란 과연 먹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먹지 못하는 것을 위해 누가 값을 지불하겠습니까? 그렇기에 그것은 참된 양식이 아닌 것에 헛돈을 쓴다는 뜻입니다.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그래서 이 구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한다는 뜻입니다.
본문 3절을 보면 1절과 2절에서 언급한 ‘포도주’, ‘젖’, ‘양식’, ‘좋은 것’, ‘기름진 것’이 육체를 위한 단순한 음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절과 2절에 음식을 언급하다가 3절에서 “내게 귀를 기울이고 내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고 있죠. 그러면 “영혼이 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앞 구절의 먹을 것들과 뒷 구절의 말씀과 영혼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면 1,2절에서 언급한 양식은 육체를 위한 양식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양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래서 3절에서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를 위한 좋은 것들을 먹는다면 육체의 건강과 회복을 언급해야 하는데 3절에서는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값진 양식은 표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포도주와 젖, 좋은 음식, 기름진 음식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정한 값진 양식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의 영혼을 살릴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목마른 자, 배고픈 자에게 진정한 양식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만, 그 영혼이 살 수 있는데, 그것은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라고 3절에서 말씀합니다. 은혜라는 것은 대가없이 값없이 베푸는 것이죠. 3절에서 말한 “다윗”은 곧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서에서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을 선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아무런 대가없이,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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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절에서는 예전에 알지 못했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값없이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새기며 순종하는 자들이죠. 그래서 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지금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때라고 말씀합니다. 비록 포로로 끌려왔지만,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차고 넘치고 만족스러우면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이가 적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급한 일이 닥치면 주님 앞에 더 무릎을 꿇게 되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는 그렇게도 하나님께 타원하고 부르짖었는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잘 살게 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과 탐욕을 좇아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또 처지가 바뀌었죠. 바벨론 포로 생활 속에 있으니, 어찌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정말로 가난한 심령의 소유자만이 하나님을 부를 수 있고,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법이죠. 그래서 뭔가 어려움에 처하면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오히려 그 때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때인 것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그 때는 지금 바로 이 순간 순간이 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겨울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그 어떤 상황과 환경속에서도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심령과 자세로 주님을 의탁하면 주님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하고 시시각각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죠. 돌아오는 자만이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계속악한 길, 교만한 길을 고집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악하고 교만한 자를 사랑으로 감싸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자, 교만한 자, 거짓된 자는 당신의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주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자는 그렇기에 겸손하게 주님 앞에 돌아와야 하는 것이죠.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방법, 우리 생각과 판단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본문 8-9절에서 그걸 일깨워줍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인간의 생각은 조건적이고 이기적이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자비와 긍휼이 넘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너무나도 오묘해서 우리의 개인적인 판단과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회개하지 않고, 누군가 자기 교만과 어리석음 속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 지금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해도 그 역시 우리는 판단하고 정죄하는 실수를 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그를 죄에서 돌이키게 하실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더 귀하게 사용하실지 우리는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죠. 다만 그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는 게 중요하죠.
오늘 하루도 지금이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는 것, 전능하시고 크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 거하는 하루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목마른 자로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한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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