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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어제 읽은 말씀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이 있지만, 실은 맹인이요 벙어리요 자기 탐욕에 물든 이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향해 안식일을 지키고, 성전에 나가 기도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뜻과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모습 뿐이죠.
오늘은 그런 모습에 빠져 있는 자들을 가리켜 우상숭배자요, 실은 불신앙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어느 시대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신실한 신앙인들보다는 거짓 신앙인들이 많았고, 또 불신앙의 사람들이 더욱더 많았습니다. 신앙의 사람은 언제나 수적으로 열세였죠.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항상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이 세상은 의인들은 악인들에게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숫적으로 의인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의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악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주시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공의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의인들이 악인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을 왜 그냥 지켜보고 계시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의인들이 악인에게 수모를 당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지 않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노아의 홍수 같은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때 악인들, 세상의 죄악이 관영한 것을 보고 하나님은 심판하셨습니다. 그 모든 악인들을 다 쓸어버리셨고, 오직 노아의 가족 8명만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8명의 식구들은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모든 악인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 모습처럼 의인들이 악인에게 수모를 당한다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들을 심판해 달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심판하신다면, 이 세상의 모든 악인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 심판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9장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그 증거로 무지개를 이 땅에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이른바 무지개의 언약이죠. 다시는 홍수로 심판치 않을 것이라는 증거 말입니다.
만일 이 세상의 삶이 영원하다면, 이 세상에 악인이 모두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악의 씨를 말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고 잠시 잠깐 거쳐 가는 곳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땅에서 의인이 고난을 당할지라도 그 삶은 복되다고 말씀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잠시 잠깐 고난을 당할지라도 영원에서는 평안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경건하게,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경건하게 의롭게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우상숭배하지 않는 것이 경건하게 의롭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들에게 너를 구원하게 하라 그것들은 다 바람에 날려 가겠고 기운에 불려 갈 것이로되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이죠. 그래서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의 우상들에게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 보아라 오히려 바람이 우상들을 날려 버릴 것이며, 입김이 그것들을 쓸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로 피하여 오는 사람은 땅을 차지하여 거기에서 살고, 나의 거룩한 성전에서 나를 예배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우상을 만듭니다. 그 우상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우상도 인간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정작 도움이 필요해서 우상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우리는 우상이 어떤 존재인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우상은 바람에 날려가 버리는 존재요, 사람의 입김만으로도 쫓겨 가버리는 존재라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 115편 4-8절이 우상에 대한 실체를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한마디로 인간이 자기 탐욕으로 섬기는 우상은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5편 9-10절이 이렇게 권고합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고 그에게 우선순위를 두면 그 친구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우위에 두고 살면 자식이 우상이 될 수 있죠.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은 형체가 있을 수도 있고, 형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죠. 눈에 보이는 세상의 물질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망상이나 야망, 잘못된 신념도 우상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나의 우상으로 규정해 제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은 철저히 이기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돈을 가지고 머나먼 타국으로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세상이 탕자를 받아줬습니다. 그에게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탕자에게서 돈이 떨어지자 세상은 가차 없이 버렸죠. 탕자는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세상에 자신을 맡겼으나 세상은 탕자에게서 쓴물단물 다 빼먹고 버렸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우상은 철저히 이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반대이십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머나먼 타국으로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 때도 오매불망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허랑방탕의 끝을 본 탕자가 세상에서 버림받았을 때도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탕자가 돌아오면 아버지가 덕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상은 탕자의 재산을 사랑했지만, 하나님은 탕자 그 자체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오늘 그렇기에 내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것들이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것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숨어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든 그렇지 않는 것이든, 주님 앞에서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상은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우상은 결정적인 순간에 영생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우리를 영생으로 이끌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1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 상처를 고쳐주시는 것은 우리가 의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겸손하기 때문도, 공적을 쌓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탕자처럼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품에 돌아서기 때문이죠. 조건없이 우리를 품어주시는 그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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