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이사야는 오늘 본문을 통해 유다의 어리석은 죄를 계속하여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 9-14절까지의 말씀을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일어나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일 년이 채 되지 못하여 몸서리 칠 일이 생길 것이다. 포도농사가 망하여 거둘 것이 없을 것이다.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몸부림쳐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여인들아, 몸서리쳐라. 맨몸이 되도록 옷을 다 벗어 버리고 베로 허리를 둘러라. 밭농사와 포도농사를 망쳤으니, 가슴을 쳐라. 나의 백성이 사는 땅에 가시덤불과 찔레나무가 자랄 것이니, 가슴을 쳐라. 기쁨이 넘치던 모든 집과 흥겨운 소리 그치지 않던 성읍을 기억하고, 가슴을 쳐라. 요새는 파괴되고, 붐비던 도성은 텅 비고, 망대와 탑이 영원히 돌무더기가 되어서, 들나귀들이 즐거이 뛰노는 곳, 양 떼가 풀을 뜯는 곳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여인들’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그들은 유다 나라의 특정 여인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유다 나라 백성들 자체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 백성들은 농사를 짓고 추수하는 시기에 당장의 눈에 보이는 수확에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추수시기에 얻은 풍족한 수확량을 보며, 단순히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즐거움에 도취된 채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것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풍족함과 즐거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60924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들의 문제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단지 자신들에게 복 주시는 존재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물질과 부를 채워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의지한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의지한 것은 자신들의 만족과 즐거움을 채워주는 재물이 곧 그들이 섬긴 대상이었던 것이죠.
그것은 마치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한 부자’와 같은 격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을 통해 이렇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부자에게 물질은 자신의 생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모든 즐거움과 만족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탐심으로 가득한 그의 심령은, 그 물질이 자신의 영원한 삶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안일했고, 물질 때문에 교만했고,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 곧 유다 백성들이 그런 모습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그런 유다의 죄악들을 지적하고, 그로 인해 그들이 겪을 혹독한 시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경고의 음성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길 바라지만, 그들은 여전히 귀를 닫고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물론 그들이 귀를 닫고 살아도 긍휼이 많으시고, 끝까지 기다려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에게 회복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1-4절이 그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통치할 한 왕을 보낼 것이고,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왕권을 세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왕은 그 당대의 종교개혁을 일으킨 히스기야나 요시야 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는 말씀이죠.
그래서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통치할 메시아 왕국은 크게 세 가지 모습을 비유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백성들이 광풍과 폭우를 피하는 피난처와 같이 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마치 폭풍을 만난 배가 항구에 들어와, 험한 파도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안식을 취하는 것처럼, 백성들은 그 분의 통치 아래에서 보호와 안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메마른 땅에 흐르는 냇물과 같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물이 흐르는 곳마다 말라붙어 있던 땅에 새로운 생기가 돌고 살아나는 것처럼, 그분의 통치는 강퍅함으로 메말라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생기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큰 바위 그늘처럼 될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뙤약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그 땅 볕에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너무나도 반갑고 좋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죠. 강렬하게 내리쬐는 뙤약볕 같은 혹독한 인생 속에 우리 주님은 시원한 그늘과 같이 우리에게 쉼과 안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곧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할 왕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통치로 인해 본문 3-4절은 막혔던 눈, 귀, 마음, 입 등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15-20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로 인해, 무너진 사회 곳곳이 변화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아 왕국만이 진정한 소망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 왕국, 정의와 공의와 화평이 깃든 그 메시아 왕국은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본문 15절에서 그렇게 밝혀줍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메시아 왕국은 좌우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메시아 왕국은 보수나 진보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메시아 왕국은 오직 ‘위로부터 온다’고 말씀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그가 곧 메시아가 아닙니다. 그가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키고, 역사의 적폐를 청산할 것으로, 그래서 남북의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새로운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내다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메시아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메시아, 영원한 메시아는 오직 위로부터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영원한 메시아요, 구원자요, 공의와 정의의 기초이신 메시아 왕국을 바라면서, 이 땅의 위정자들, 새로운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할 줄 아는 대통령과 정치인들 될 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매일 ‘위에서부터 부어주시는 영’ 곧 새로운 영, 성령으로 충만함을 덧입게 될 때, 우리의 삶에 공의와 정의가 이뤄지는 메시아 왕국을 이 땅에 구현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본문의 유다 백성들과는 달리, 이 세상의 재물이나 부귀영화를 목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오직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만을 진정한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때, 매일매일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7
오늘도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19796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없겠고(사34:1-17) (1) | 2022.12.31 |
---|---|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사33:1-24) (1) | 2022.12.30 |
도움을 구하려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사31:1-9) (0) | 2022.12.29 |
너희가 잠잠하고 신뢰하여야(사30:1-33) (1) | 2022.12.27 |
슬프다 아리엘이여(사29:1-24) (0) | 2022.12.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