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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이사야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없겠고(사34:1-17)

by 똑똑이채널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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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대적하던 ‘열국 곧 ‘여러 민족들’에 대한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돼 있습니다. 1-4절까지는 그야말로 ‘열국의 우주적인 심판’을 말씀하고 있고, 5-17절까지는 그 중에서도 에돔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국을 향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심판이 왜 임하는 것입니까? 그 모든 나라들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들은, 그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나 백성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그 열국 중에서도 유독 ‘에돔’에 관한 심판을 후반부에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열국 가운데 특정한 나라 곧 에돔이란 나라가 과연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 너희들만큼은 에돔과 같은 심판을 당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거죠.

 

그 에돔에 대해서 본문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 사실 에돔은 이스라엘의 인접국가로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에서의 별명인 에돔이라는 이름을 본 딴 것입니다. 말하자면 에돔은 이스라엘의 형제나라입니다. 하지만 그 에돔은 형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이스라엘을 가장 시기하고 미워했던 나라였습니다.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의 첫 번째 대립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발생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스라엘이 에돔에게 ‘왕의 대로’로 통과시켜달라고 요구했죠. 하지만 에돔은 이스라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은 에돔 변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에는 사울과 다윗이 에돔과 전쟁을 치르게 되고, 또 에돔은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접국가가 됩니다.

그렇기에 왜 에돔이란 나라를 대표적인 심판의 모델로 제시하는지, 그들을 통해 어떤 반면교사를 삼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하나님은 분명코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에돔을 심판의 모델로 제시한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 9-13절까지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 붙는 역청이 되며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의 결과가 세 단어로 압축돼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10절의 ‘황무’, 11절의 ‘혼란’, 그리고 11절의 ‘공허’가 그것입니다. 에돔을 포함한 다른 열국들의 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하며,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돔을 향한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길목을 방해한 죄악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신약성경의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과 똑같은 격입니다. 사울은 그때까지만 해도 주님을 박해하고 핍박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살아생전 공생애 사역을 할 때, 또 십자가에 죽을때까지, 사울은 주님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사울이 핍박하고 박해한 것은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그 사울을 만났을 때, 그 다메섹도상에서 한 첫마디가 그것이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고 말입니다. 그때까지도 사울은 주님을 직접적으로 핍박하고 박해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당신 자신을 사울이 핍박하고 박해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훼방하고, 박해하는 것이 곧 주님을 박해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에돔의 죄악도 마찬가지라는 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길목,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아가려는 그 길을 방해하고 훼방하고 박해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의 삶이 황무하고, 혼란에 빠지고,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얼룩진다는 것입니다. 삶의 터전은 거칠어지고. 뒤죽박죽 어지러워지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삶의 상태, 헛된 것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9-17절까지는 그들이 살던 도성이 황폐해지고, 텅 비어서, 부엉이와 까마귀가 남고, 여러 올빼미와 부엉이들이 짝을 이루며 그들의 도성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람이 살만한 곳이 전혀 못 된 도시, 사람이 텅 빈 도시의 황폐함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에돔의 심판을 통해 우리 자신이 깨닫는 영적 교훈이 있지 않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그에 따른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고 주님께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주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시기와 미움, 괴롭힘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엄정하신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그럴수록 우리는 믿음의 삶을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핍박과 박해 앞에서 우리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내어 맡긴 채 신실한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악도 그 끝이 있고, 선인의 선도 그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의 끝은 심판으로, 선한 자의 끝은 상급으로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황무함’(10절)과 ‘혼란함’(11절), ‘공허함’(11절)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하고 압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혼을 메마름으로, 삶을 무질서로, 인생을 허무함으로 나타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그들의 악행이 자기들 삶에 부메랑 된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로 깨닫는 것은, 그 심판의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향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돔을 예로 들며 열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술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남유다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포된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이 심판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의 메시지인 동시에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들일지라도 에돔이나 열국들처럼 살아가면, 그에 따른 하나님의 준엄하신 판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자 말입니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열국의 믿지 않는 자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해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처럼 무사하고 가볍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업방해꾼 노릇을 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는 자기는 꼴이죠. 오늘 열국이 심판 받은 게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동조하는 듯한 말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에돔 사람들처럼 누군가 하나님의 나라를 열심히 세우고 헌신하려 할 때 그 일에 방해꾼 노릇을 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황무와 혼란과 공허만 남는 심판을 받는 길입니다. 반대로 누군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하고자 할 때 방해꾼 노릇을 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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