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고 시작합니다. 이별도 이별의 때와 이별의 참된 의미를 알고 이루어질 때, 그때 아름다운 이별의 모습으로 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시간들 가운데, 그 시간의 의미를 분명히 아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유익을 주죠.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도 추하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아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우리 인간이 시간의 의미를 모두 알기에는 한계가 있죠. 가령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며 취업을 준비해야 할 때임을 알기에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며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또한 자신이 평생 일궈온 사업이 최고의 정점에 섰을 때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히 새로운 후임자에게 모든 사업을 넘겨주는 것도 정말로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지혜롭고 아름답게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징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라든지, 또 배필을 만나 결혼할 때라든지,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와 같이, 우리 각자가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시간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임의로 정하고 바꿀 수 있는 크로노스의 때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정하신 섭리의 때 곧 카이로스의 때도 다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임의로 정해 놓은 크로노스의 때도 전혀 다른 상황에 따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시간 자체보다도 그 시간을 만드시고, 그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전도서 3장의 말씀은 그 시간 곧 때와 관련된 의미를 전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1-33절의 말씀 가운데 11절 말씀은 3장 전체를 대변해 주고 요약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본문 11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때에 따라 지으셨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다시 말해 모든 만물의 때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의 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첫 번째 사실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때, 곧 그 시간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날 동안의 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11절 이전의 내용들은 2-8절까지 서로 대조를 이루며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에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우리는 죽을 때보다도 날 때를 더 원합니다. 또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우리는 뽑을 때보다 심을 때를 더 원하죠. 그리고 3절에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다” 죽을 때보다 치료할 때를 더 원하죠. 그처럼 2-8절까지 살펴보면 그 두 가지 차원을 대조해서 보여주는데, 내가 더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내가 원하는 때가 있다면 그 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으로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여기겠죠. 하지만 그 반대의 때는 마치 내가 거부된 것 같고, 내가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4절 말씀처럼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웃을 때는 하나님께서 뭔가를 허락하시고 성취해서 기쁘게 때문에 웃는 것이다, 그러나 울 때라는 것은 뭔가 버림받고 잘 안 돼서 그렇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기 쉽죠.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은 서로 대조를 이루는 인생의 각각의 때, 그 모두가 실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때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때에 처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간과 때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걸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으로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간관, 그런 인생관, 그런 역사관을 갖고 있는 신앙인만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병이 낫도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결국 그 사람이 회복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인가? 그 사람을 위해 간절히 중보하며 섬김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것인가? 그렇지 않죠.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그 영혼을 주관하고 계시고, 그에게 가장 적합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는 것, 그것이 신실한 신앙인들의 지녀야 할 자세인 것이죠. 그래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했는데, 그 사람의 호흡이 멈춰섰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또 다른 상황에서는 완전히 치유함 받았다, 그, 또한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만사의 때를 결정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저도 군대 가기 전에 신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살 때 1주일 내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 눈물의 기도시간과 군생활 이후에 지금은 허리가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제가 방광기능이 좋지 않아 소변을 자주 보는 편인데, 그것을 놓고 정말로 간절히 기도했고, 몇 번이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것 때문에 군훈련병 시절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낫지 않는 것, 온갖 약을 써봐도 완케 되지 않는 것, 그 역시 나를 자고하지 않도록 교만치 않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본문 9절의 말씀처럼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이 무슨 이익이 있으랴.” 우리들의 수고보다도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내가 겪고 있는 그 때가 힘들고 아픔이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외면하시거나 홀로 두시지 않고, 친히 나의 노고를 함께 짊어지고 계시는 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생각하는 말씀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이 세상에서의 시간 이후 ‘영원’한 시간, 곧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있기 전부터 만세 전에 계셨고, 또 만세 이후에도 계시는 분이시죠. 그렇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들에게도 영원을 사모하도록 하는 마음을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때가 우리에게 허락된 전부의 시간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동물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극명한 차이를 본문 20-21절에서 밝혀줍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동물이 인간을 많이 닮아 지능도 발휘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영혼의 유무죠. 그래서 인간은 죽음 이후에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지만, 영혼이 없는 동물은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버립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 같은 삶에만 만족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오늘 하루도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때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때를 잘 분별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의 시선으로는 저 영원한 때를, 또 다른 시선으로는 이 세상의 때를 잘 분별하며 지혜로운 인생, 영원을 사모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전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은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전6:1-12) (0) | 2022.11.04 |
---|---|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전5:1-20) (0) | 2022.11.03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전4:1-16) (0) | 2022.11.02 |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전2:1-26) (0) | 2022.10.31 |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전1:1-18) (2) | 2022.10.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