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전래동화 중에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익히 들어본 이 이야기에는 삼남매를 집에 두고 품팔이 나갔다가 돌아오는 어머니가 등장하죠.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납니다. 호랑이는 어머니를 잡아먹고, 이제 어머니로 가장해 삼 남매가 사는 집으로 찾아가죠. 아이들은 호랑이의 목소리와 손바닥이 어머니와 다른 것을 알고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갖은 꾀를 내어 집으로 들어가 막내를 잡아먹죠. 남은 오누이는 겨우 도망쳐 우물가 큰 나무 위로 피신합니다. 나무에 올라가지 못하는 호랑이는 오누이에게 어떻게 거기에 올라갔는지 물어봅니다. 오라비는 거기에 참기름을 바르면 잘 올라올 수 있다고 가르쳐주죠. 그런데 자꾸 미끄러져 약이 잔뜩 오른 호랑이에게 여동생이 그만 도끼로 나무를 찍어 올라오라고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는 호랑이를 피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오누이는 하늘을 향해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원합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동아줄이 내려와 위기를 모면합니다. 물론 호랑이에게는 썩은 줄이 내려와 그것을 잡고 오르던 호랑이는 떨어져 죽고, 수숫대 밭에 떨어져서 붉게 되죠.
그 동화는 동아줄에 매달려 올라간 오누이가 하늘의 해와 달이 되고, 또 수숫대가 왜 빨간 색인지를 설명하는 설화입니다. 하지만 그 동화를 읽으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나무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발버둥치고 호랑이는 나무 밑에서 도끼를 찍으며 올라옵니다. 이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호랑이가 오누이를 잡아먹는 이야기로 넘쳐나죠. 힘없는 한 두 사람이 쫓겨 다니고 죽어가는 소식이 들려도 그들을 위로해주기는커녕 힘 있는 호랑이에게 밉보일까봐 호랑이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도서를 쓴 솔로몬의 시대 곧 B.C.900년 어간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양육강식 현장에서, 약한 자가 학대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는 시대죠.
그래서 본문 4장 1절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학대받으며 눈물을 흘려도 위로해주는 자가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해도 위로받지 못하고 하소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어떤 탄식이 터져 나오겠습니까? ‘차라리 이럴 바에야 내가 그 때 죽어버렸다면 나았을 것을, 왜 목숨은 이리도 질겨 이러한 수모를 겪고 있는가? 이러한 악한 일을 보면서 사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을 뻔 했다’는 탄식 소리겠죠.
그런 탄식은 욥의 고난 속에서 터져 나왔던 탄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지혜자 곧 솔로몬의 시대에도 터져 나오는 탄식입니다. 그래서 2-3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또 7절 이하에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세상에서 혼자 다 쓰지 못할 만큼의 막대한 재산을 갖추었어도 그것을 함께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 또한 헛된 수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악한 자들에 의해 고통을 당할 바에야 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하고 있고, 더 나아가 아무리 내가 부요하고 번영할지라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그 또한 헛된 수고일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본문 9-12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살아가는 인생여정에 함께 걷는 동무가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때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넘어진 내게 손을 내밀어 줄 동무가 있다면 그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혼자 걷기 쉽지 않은 외로운 인생 여정에 말동무도 되어 주고 서로 조언도 해 주고 받을 수 있다면, 그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내 곁에 그런 동무와 친구와 말 벗이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실은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와를 지어주셨고, 그래서 부부의 연을 맺고 가족으로 살게 하신 것이죠. 마찬가지죠 내가 내 남편에게 아내에게, 내 가족들에게, 내 친구와 동무들에게 어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추운 겨울에 함께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인 것이죠.
혹여라도 ‘누군가 내게 그런 동무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누군가 내게 울타리가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고, 말 벗이 되어줄, 그 누군가를 내가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다가가 그렇게 해 주면 되는 것이죠. 그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기 전에 먼저 내가 다가가 말벗과 위로자가 되고, 격려자가 되어 주는 것 말입니다. 지금껏 내게 그런 동무가 없었다 할지라도 오늘부터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동무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여정에 함께 걷는 동무로, 함께 나누는 말벗으로, 위로자요 격려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세상의 호랑이들이 우리를 좇아올지라도, 그렇게 함께 길을 걷는 동무가 있다면, 결코 우리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결코 헛된 인생은 아니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의 4장 12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구절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 사람이면 패하기 쉬우나 두 사람이면 적의 공격에 대항 할 수 있습니다. 한 줄은 쉽게 끊어지지만 두 겹줄,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께서는 70인을 각 지역으로 전도하러 보내실 때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보내지 않고 둘씩 보내셨습니다. 혼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도 서로 힘을 합치면 능히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시너지 효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1+1은 단순히 2가 되지 않고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 말입니다. 말 한 마리가 끄는 힘에 비해 말 두 마리가 끄는 힘은 단순히 두 배가 아닌 그 이상의 힘을 내게 되는 현상과 같죠. 둘 씩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셨던 예수님은 제자들만 보내신 게 아니었습니다. 각 마을과 동네로 들어가는 제자들과 함께 주의 권능을 부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 할자가 결코 없으리라” 제자들을 두 명씩 마을로 보내셨던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중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둘씩 내 보내시면서 권능을 부어주셨고 주의 백성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그곳에 삼겹줄 곧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60620580
그렇기에 오늘도 나와 누군가 둘이 힘을 합쳐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면, 거기에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삼겹줄 곧 세 번째 성령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함께 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셋이 함께 하는 줄은 이 세상의 어떤 위협도 끊을 수 없고, 오히려 더욱더 단단한 생명의 줄이 될 줄 믿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새벽묵상DewSermon > 전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은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전6:1-12) (0) | 2022.11.04 |
---|---|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전5:1-20) (0) | 2022.11.03 |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전3:1-22) (1) | 2022.11.01 |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전2:1-26) (0) | 2022.10.31 |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전1:1-18) (2) | 2022.10.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