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묵상DewSermon/시편

할렐루야 새 노래로(시149:1-9)

by 권또또 2022. 9. 15.
728x90
반응형

 

어제 묵상한 시편 148편은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시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149편은 이스라엘을 어려운 위기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울러 불의를 행하던 뭇 나라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시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1-5절까지, 구원받은 성도들의 찬양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곧 거룩한 무리들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합니다. 본문 1절에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서 찬양할지어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여기에서 말하는 ‘새 노래’란 새로운 곡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애굽에서 살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구원해 내신 것, 또한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 광야 40년을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 그런 위대한 구원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죠. 죄와 사망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구원의 은총을 떠올리며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죠. 그와 같은 새 노래는 또 언제 부릅니까? 요한계시록 5장 9절에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할 때입니다. 바꿔 말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사명,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우다가, 저 하늘 나라에 입성하거나, 아니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때 우리가 ‘불이 섞인 유리바다로 들림받을 때’ 바로, 이 세상과는 구별된 새로운 곳으로 들림 받을 때, 바로 그곳에서도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새 노래’란 더욱더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1970년대를 살아도, 그리고 1980년대를 살아도, 그리고 2017년을 살아도, 내게 구원의 은총과 감격을 가장 명확하게 떠올리며 감사할 수 있는 곡이 있다면, 그 곡은 매 해마다 새로운 노래로 기억된다는 사실입니다. 곡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내 심령이 새롭게 회복될 때마다 말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경이나 나 자신의 환경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경험할 때마다 그 노래를 다시금 새롭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꿔 말해 새로운 노래를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이 매일매일 새롭게 거듭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로 생겨났지만, 사람은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자 성도로,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 아닙니까? 그들은 시온의 주민으로 거하며,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늘 가까이서 들으며, 그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게 되죠. 그만큼 창조주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끄심과 다스리심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긴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실은 우리 자신도 그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어떤 길로 인도하실지라도,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에, 기뻐하며 좇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길보다, 자기 좋은 길을 좇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 길이 넓고 편안한 길이라면서 말입니다. 필경은 그 길이 사망의 길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누가 과연 복된 자인가? 복이 무엇인지에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복이 창대하고 번성케 되는 것, 그것은 첫 번째 복이자 맨 하위의 복의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복이 무엇인가? 복은 ‘행복한 삶’이라고 했습니다. 부한 것들을 가득 싸 놓고 다투는 것보다 마른 떡 한 조각으로도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 말입니다. 셋째로 복은 선과 아름다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살면 내 얼굴과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되고, 그때 내 인품속에서는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 말입니다. 넷째로 복은 정도를 걷고서 그 결과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라고 했죠. 사술을 부리면 어마어마한 재물을 취할 수 있지만, 그 길이 아닌 정도를 통해 작은 열매를 맺고서도 그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 말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복은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했죠. 내가 내 모든 소유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내 모든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나라에 두며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창대와 번영을 주셨다, 그러나 그런 부의 번영 속에서도 더욱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시간을 확보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복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복을 받은 자들이 어찌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살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본문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우리의 인생이 아름답게 되기를 원한다면,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법이죠. 가난할 때에나 부할 때에나 기쁠 때에나 슬플 때에나, 어떤 환경,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신다는 사실 말이죠. 

본문 5절입니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하라, 이것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침상에 누워 근심과 걱정에 눌려 잠들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삶이 고단하고 서글픈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침상의 잠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고, 기쁨으로 노래하면서 잠자리에 든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복된 삶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새벽에 잠자리에서 깨어날 때에도 오늘 하루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로 출발할 수 있고, 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일과를 정리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아뢰면서, 잠자리에 빠져 들 수 있는 것이죠. 설령 그날 내가 이 땅에서 눈을 뜨지 않고 천국에서 눈을 뜬다고 해도 더없이 감사할 수 있는 것이고요.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0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북팟

www.bookpod.co.kr

 

이제 후반부에서는 불의를 행하던 뭇 나라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본문 6-9절에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가운데 전쟁에서 승리한 사실을 감사하는 표현이기도 하고, 성도들이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 얻는 영적인 승리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의 입에는 하나님을 높이는 소리가 있고 손에는 두 날 가진 무기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하죠. 성령의 검 곧 말씀을 가지는 것, 그것이 치열한 영적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강력한 무기죠. 더 말씀을 가까이하고,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승리하는 것이죠. 그래서 9절에는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여기에서 기록한 판결문이란 이방 나라들의 불의하고 죄악된 모든 행위에 대한 심판의 판결문을 의미하고, 또한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궁극적인 승리의 판결문을 뜻합니다. 그 까닭에 우리가 담대히 주님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고, 우리가 마땅히 찬양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마지막에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라고 마무리합니다. 악의 세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불이 섞인 유리바다로 들림받든지, 천국에서 눈을 뜨든지, 궁극적으로 영원한 소망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에,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 나라의 소망 가운데 살 수 있기 바랍니다.

https://www.bookpod.co.kr/goods/goods_view.php?goodsNo=1000001131 

 

야긴과 보아스

북팟

www.bookpod.co.kr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