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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시145:1-21)

by 권또또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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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45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이 시편의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고백은 사는 날 동안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죠.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고백해 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자신만의 언어로 독특하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본문 1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 ‘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다윗의 별이 새겨질 정도로 영구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윗의 위대함은 그만큼 명실상부하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도 다윗과 같이 위대한 왕의 모습으로 오실 메시야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옛날이자 지금이나 위대한 왕으로, 메시아상으로까지 기억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위대한 왕인 다윗조차도 하나님을 향해 자기 자신의 ‘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른 호칭도 많을 텐데 굳이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부를지라도, 자신에게 진정한 왕은 하나님 한 분 뿐임을 다윗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초대 왕 사울로부터, 다윗, 솔로몬으로 내려오다가, 솔로몬의 아들 대에서 남 유다왕국과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때가 B.C 931년이었죠. 그로부터 남 유다 왕국은 20명의 왕들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기까지 통치를 했고, 북 이스라엘 왕국은 19명의 왕들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할때까지 다스렸죠. 그래서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 왕까지 합하면, 그 모든 왕들의 수자 42명입니다. 그 많은 왕들 중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은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북 이스라엘 왕국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좇아 산 왕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남유다 왕국에는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히스기야 요시야 등 8명의 왕들이 선한 왕으로 꼽히지만, 그 중에서도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온전히 쫓았던 왕을 꼽으라면 2명의 왕들뿐입니다. 이른바 히스기야와 요시야 왕입니다. 그 두 명이 어떤 길을 좇았기에 그토록 선한 왕으로 기억되는 것입니까? 그 두 명의 왕들은 다른 선한 6명의 왕들과는 달리, 반심이 아닌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았고, 더 나아가 다른 선한 왕들조차 하지 못한 산당들까지도 완전히 허물어트린 종교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왕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까? 남왕국 유다의 12명의 왕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은 왜 그렇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지 않았고, 산당과 같은 것들을 허물어뜨리지 못했던 것입니까?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자기 지위와 명예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사람은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만 봐도 그렇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그토록 겸손한 사람이었는데, 왕이 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이고 오직 자기 영광만 원했던 사람으로 돌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사람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고 사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신분이 높아지고, 자기 지위가 올라가면, 하나님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조차 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달랐습니다. 오직 그는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다윗은 날마다 주를 송축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날마다 말입니다. 어쩌다 한번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는 다릅니다. 우리 인생에는 쨍하고 해 뜰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수 있고, 물질적인 손해를 볼 수도 있고,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하나님을 송축하기란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날마다 왕이신 하나님을 송축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인생을 통해 만난 하나님 때문이죠. 


다윗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 인자하심이 크신 하나님을 만난 그 경험 때문에, 다윗이 날마다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그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온실 속 화초처럼 평범한 삶이었다면, 그런 하나님을 체험치 못했겠지만, 그만큼 험난한 인생속에서 그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사실 골리앗을 물리칠 때에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겠죠. 하지만 그때부터 고독과 괴로움이 밀려들었습니다. 8년 넘게 도망자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죠. 장인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3천명의 최정예부대를 파견했고, 사울 왕은 자기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버렸죠. 그때 다윗은 이스라엘 경내를 벗어나 원수의 나라 블레셋에 들어가 망명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까지 하며 자기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뒤에 광야 동굴에서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맡기겼습니다. 그러자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울 와이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 병사의 화살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기 자신이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쳤고, 그 무렵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고, 후에 6년 넘게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까지 하나로 편입시키기 위해 난공불락의 여부스 성읍을 점령하게 되었죠. 그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고, 10년 넘게 이제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터를 누벼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던지,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며, 자기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했죠. 물론 그렇게 이웃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 국경도 튼튼하게 세우고, 나라가 평안해 질 무렵, 그는 죄의 유혹에 걸려 넘어져 충실한 부하 우리아의 아내를 탐했고, 그 우리아를 최적진에 보내 이방 나라의 칼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그 일로 다윗은 자기 어린 아들이 핏덩이채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고, 후에는 배다른 형제간에 칼부림이 일어났고, 그 뒤에는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셔서, 다시금 제 위치를 찾게 해 주셨고, 그의 인생 70이 되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죠. 그처럼 자기 자신의 험악한 인생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크신 하나님으로 자기 자신을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진실되게 간구하는 자, 평안할 때가 아닌 자기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환란의 때에 그렇게 진실된 기도를 드리는데, 그럴 때마다 만나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난 다윗은 시편 23편을 통해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고 말입니다. 그때는 뭔가 채워지고 만족함을 주셔서 ‘나의 목자’시라고 고백한 게 아니었죠. 인생이 부족하고, 환란의 상황일 때, 그때 하나님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부족함 투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그들도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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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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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우리들도 다윗처럼 환란과 곤고의 때가 오히려 영적으로 가장 풍부한 때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인자하심을 경험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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