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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시144:1-15)

by 권또또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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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백성들이 두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이 세상은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이합집산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가 모여드는 삼국지와 같은 세상입니다. 강한 자, 교활한 자가 살아남고 세상을 주름잡는 것 같은 세상, 그에 반해 바르고 성실한 자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런 상황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과 장애물이 많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절망의 늪과 같은 고난과 세월 속에 두신 하나님의 뜻은 먼 훗날 깨닫게 되죠. 그런 상황과 세월이 결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기에,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는 결코 무의미한 것들이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144편을 기록한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7명의 배다른 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8번째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 까닭에 다른 형들은 집에서 호위호식하며 살 때 홀로 다윗은 양치기하는 촌뜨기 목동으로 살았죠. 사랑받지 못한 삶이자, 고독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바꿀 수 없는 그 환경 속에서 자신을 바꾸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이른바 라인홀드 니버의 말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바꿀 수 없다면 너 자신을 바꾸도록 하라’는 그 말 그대로말입니다. 가족 구성원의 환경이나 외로운 양치기의 환경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는데 최선을 다한 다윗이었습니다. 그것이 곧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양들을 지켜내는 기술과 실력을 연마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가 다가왔죠 블레셋의 골리앗이 쳐들어와 40일 동안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고, ‘사신 하나님을’ 모욕할 때, 누구 하나 나서서 자기 목숨을 내 놓는 이스라엘 병사가 없었을 때, 그때 다윗이 맞서 나가지 않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사울 왕이 칼과 창과 옷과 투구를 주지만, 다윗은 제 옷에 맞는 옷을 입고 나아갔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다윗이 평상시의 그 모습 그대로 물맷돌을 주워담은 제구를 갖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갈 때, 그 골리앗의 정수리를 맞춰 쓰러트리게 해 주셨죠. 그때부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하는 노래가 퍼져 나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마음과 자세였습니다. 배다른 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면 받고 살았어도, 주어진 자기 책임과 의무에 성실함으로 다했다는 것, 그에게 주어진 환경을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자리로 받아들였다는 점 말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시간표를 바라보며 인내하며 자신을 바꿔나가는 데 집중했기에, 때가 되어 왕으로 등극하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삶의 과정과 세월은 결코 무의미한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한 다윗이 1절을 통해 고백합니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내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의 현장에서 승리하게 하신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적자생존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지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피할 바위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주의 강한 용사로 훈련시키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직면한 도전 앞에서 우리 자신이 피하거나 도피하길 원하는 분이 아닙니다. 진리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길 원하시는 분이시죠.

루터가 교황청의 면벌부에 대한 이의제기차원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 앞에 붙였을 때, 곧장 제국의 보름스 국제회의장으로 불려나갔습니다. 그때 루터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렸습니다. 그 길은 죽음의 사지로 끝날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루터는 그것이 진리를 세울 수 있는 길임을 확신하고 당당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제국의 회의장에는 똑똑한 검사와도 같은 유명한 신학자가 교황청을 대변하는 논리적인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고, 루터는 그에 반격조차 못하는 듯 힘없는 답변만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는 루터가 하나님의 격려와지지 속에서 명쾌한 오류를 밝혀냈는데, 이로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 더욱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루터를 지지하는 층들이 더 두텁게 형성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보름스 제국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길목이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루터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이었는데, 귀향 8일째에 접어들어 루터는 그만 행방불명이 되고 맙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때 루터는 작센 도시의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지원을 받아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게 되었고, 그곳에서 1년간 지내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제임스 레스틴의 <루터의 밧모섬>에 나와 있습니다. 그 책을 읽는 동안 제 가슴이 뛰었습니다. 우리가 수요성경공부 때 로마서를 읽으며 이신칭의,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중요한 개신교의 교리를 뼈저리게 느꼈는데, 그 교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는 걸, 그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 레스틴은 그곳 바르트부르크 성에 갇힌 루터는 신구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내는데 온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가톨릭의 사제들만 성경을 독점하도록 라틴어 번역본만 있었는데, 루터의 그 번역본 이후에 드디어 온 독일국민들도, 일반성도조차도 성경을 읽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중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제 심장이 뛰었습니다. 이제 로마서 323-24절에 이르렀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공인 본문은 이렇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킹제임스 본은 말을 약간 바꾸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대속을 통하여 그 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고쳐 썼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음을 압니다.'"(221)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그 번역이 지금껏 교회사를 새롭게 쓰게 됐던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에게 행함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행함이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차원이라는 것,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신분의 변화 이후에, 그에 걸맞는 삶을 행동으로 보여야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다윗이나 루터도 그렇듯이, 오늘 우리들도 내가 처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군사로 훈련시키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판단하면 하찮아 보이고 의미없어 보이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런 세월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훈련시키신다는 점입니다. ‘오랜 시간 내가 왜 이런 곳에서 무의미한 일을 반복해야 할까?’, ‘왜 내 인생이 낭비되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과 삶을 결코 헛되게 낭비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바둑에도 한 점 한 점 의미가 있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40일 광야 금식기간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요, 모세의 40년 무명의 미디안 광야 세월도, 요셉의 이집트 노예살이와 옥살이 13년 삶도 결코 무의미한 게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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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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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우리에게도 각자 다른 상황, 다른 세월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나만이 부딪히며 맞서 나가야 할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표의 과정을 거친 자가 누리는 복을 본문 12절 이하를 통해 우리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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