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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시146:1-10)

by 권또또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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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46편의 저자는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 내용을 분명하게 알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믿는 신앙에 대해 설명해 주길 요구하면 제대로 대답하는 이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믿는 복음이 무엇인지, 우리가 믿는 신앙이 어떤 내용인지, 정리하지 않는 채 그저 열심히 믿고, 착한 일하고 구제하고 봉사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성경과 진리에 근거한 것임을,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에 대한 부분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타종교나 우상 혹은 미신과는 다릅니다. 우상이란 오직 그 신적 대상을 잘 구슬려 자기의 소원하는 것만 받아내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재물이나 권세, 자식의 성공, 건강과 미래의 보장 등을 얻어내기만 하면 그 뿐입니다. 그만큼 우상이나 미신을 좇는다는 것은 그 신에 대한 인격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 욕망만 관철시키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를 위해 돼지머리를 놓거나 수백만원의 제사상을 차리거나, 혹은 수천만원의 부적을 사기도 하는데,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닌 거래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원치도 않는 상황에, 내가 요구하지 않는 상황에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셔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고, 나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셔서, 나를 구원해 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나 스스로 전혀 인식하지 못한 상태속에서 나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개입하시는 그 사랑,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곧 계시입니다. 계시란 갑자기 빛이 보이고, 몸이 뜨거워지면서 초자연적인 어떤 기적을 체험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능동적으로 인간에게 자신의 길을 열어 보여주신 것, 그것이 계시입니다. 그 계시의 정점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죠.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깨닫고,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지도록 말입니다. 그만큼 인간이 원하지도 않았고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향해 당신의 사랑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정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제물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명확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계시가 있죠. 바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인간의 언어로 보여주신 것, 곧 성경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하고 밝혀놓고 있죠. 그런가 하면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 그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의 실체가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의 신앙이란 바로 그 말씀을 얼마나 아느냐, 그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이해하고 깨닫느냐,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얼마나 더 확장시켜 나가느냐, 그것이 신앙의 참된 목적입니다. 무턱대고 믿고, 열심을 다하는 게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시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고 깨닫고,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것 말입니다. 그를 위해 목회자는 교우들에게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깨달은 바를, 함께 말씀으로 나누고 가르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오늘 읽은 시편 146편의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1-2절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이죠. 자신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하고 다짐하는 것이죠. 

만약 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했다면, 어찌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미신적으로 우상의 차원으로, 자기 욕망을 위한 차원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때로는 입술로 벌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죠. 하지만 깊이와 감정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찬양은 그저 입술로만 나오는 고백이 아니라 내 심령 그윽히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진정한 감사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5절을 통해 시인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의지할 대상은 허무한 대상이 아님을 말입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에 소망을 둬야 할지도 명확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인은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전혀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의 대상은 모두 허무한 것들 뿐임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오직 우리 인간이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 소멸하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이 실은 흙과 같은 존재라는 것, 그 흙이 실은 먼지와 같은 것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드셨다고 창세기에 기록하고 있지만, 히브리어 원어는 ‘아마다’요, 영어로는 dust 곧 ‘먼지’입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하나님께서 멸하려고 하실 때, 그 중보기도, 곧 섬김의 기도 차원에서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할 때 뭐라고 자기 자신을 아뢰었습니까?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니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18:27)하고 고백한 것이죠. 그만큼 아브라함은 자기 자신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던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인간의 존재, 자기 자신이 흙이요, 먼지요, 티끌과 같은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실은 잠간 있다가 사라질 존재 곧 안개와 같은 인생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 인간이기에 우리가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도 더더욱 명확해 지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서는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는 자는 소망이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왜 하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까? 사실 야곱은 평생 자기의 꾀와 욕망 속에서 살아간 사람입니다. 형의 장자권, 형의 축복권도 다 가로챈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 뜻 그대로 ‘약탈자’ ‘사기꾼’의 삶을 산 사람이죠. 그 까닭에 형 에서의 칼부림을 피해 밧단 아람으로 도망쳐 20년 세월 동안 타향살이를 해야 했고, 그리고 이제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천사 곧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그때 천사와 씨름을 하면서 그의 환도뼈가 부러지고, 비로소 그 인생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되죠. 중요한 것은 그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로 바뀌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그런 사기꾼, 그런 약탈자 야곱을 기다려주셨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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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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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실은 이전에 다 야곱과 같은 인생을 살았던 자들입니다. 내 욕심과 욕망을 위해 질주하는 모습 말입니다. 그런 나의 고집과 죄악의 환도뼈를 부려뜨려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관계맺고 살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어찌 우리가 복 받은 인생이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그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참된 신앙의 자세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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