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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DewSermon/시편

여호와의 주의 이름을 위하여(시143:1-12)

by 권또또 202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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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시편 143편은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윗에 의해 기록된 시’입니다. 오늘 본문 3절과 4절은 다윗이 처한 상황을 알게 해 줍니다.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다윗은 원수 곧 대적들의 핍박으로 인해 마치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암흑과도 같은 절망 속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본문의 시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피신하는 상황에서 기록된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압살롬의 반역 사건, 아버지 다윗을 죽이겠다고 칼을 겨누고 왕궁으로 쳐들어오는 사건, 그로 인해 다윗이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기드론 골짜기를 눈물을 머금고 도망쳐야 했던 사건은 우리가 이미 살펴봤습니다. 사무엘하 13장에서부터 발단이 되어, 그의 반역이 ‘삼일천하’로 끝나 죽고, 그로 인해 먼저 간 아들 압살롬을 향해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더라면하고 슬피 통곡하는 그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사무엘하 19장에까지 이어졌던 사건이었습니다.

어찌됐든 아들 압살롬이 4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아버지 다윗 대신에 백성들의 환심을 사고, 마음을 훔쳐 아버지가 유다 지파의 왕으로 등극했던 헤브론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왕궁을 향해 진격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다윗은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시편이 본문의 143편입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다윗이 취했던 행동이 본문 1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다윗이 취한 행동은 바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 그가 붙든 분은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다윗은 우리 그리스도인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위기의 상황, 예기치 못한 고난의 상황을 만나게 될 때, 기도를 통해 주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1절 하반절에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이를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 드리면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의에 합당하게 응답해 주십시오입니다. 사실 오늘 다윗처럼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답을 먼저 주님께 아뢰기 십상입니다. ‘주님, 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애원하는 제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이렇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답을 먼저 주님께 꺼내놓고 그것을 관철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기도는 그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오늘 다윗의 기도는 달랐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응답을 하나님께로부터 억지로 이끌어내기 위한 일방적인 창구로 기도를 오용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의에 합당하게 응답해 주십시오’ 라는 고백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한 통로로 기도를 선용하고 있었던 것이죠. 비록 궁지에 몰린 그였지만 다윗은 기도를 통해 주님의 마음과 의를 살피며, 바른 삶의 좌표를 설정해 나가려 했던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로 남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를 통해 주님과 쌍방향의 대화를 나누며 의로우신 주님 앞에 어떻게 바른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려 합니다. 주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살피시며 당신의 뜻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나의 요구를 주님께 관철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여쭈며 나의 뜻을 내려놓는 ‘내려놓음의 시간’입니다.

 

그런 ‘내려놓음의 기도’를 통해 다윗이 경험하게 되는 은혜가 오늘 본문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기도를 통해 자신의 뜻을 내려놓으며 주님의 마음과 의에 합하는 바른 길로 나아가길 소망하는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옛날을 기억하고, 주님의 행적을 돌이켜보며, 주님께서 손수 이루신 일들을 깊이깊이 생각함’으로 주님께 대한 믿음이 강화된 것이었습니다. 이전 그 수많은 위기의 순간순간마다 함께 해 주시며 그 위험들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내 주신 주님을 기억함으로, 그 주님께 대한 신뢰가 한층 더 쌓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8절에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행해주셨던 은혜의 손길들을 기억함으로 주님께 대한 신뢰가 두터워진 다윗은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말씀을 통해 삶을 재편해 나가겠다는 결단의 자리로 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야말로 ‘바른 기도’의 결과입니다. 이처럼 ‘바른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바른 결단의 자리’로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의 말씀을 통해 삶을 바르게 가꾸어 나아가겠다는 온전한 자리로 인도해 갑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런 바른 기도를 드리며 바른 결단의 자리에 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본문 12절 하반절의 고백에 있습니다.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바른 기도를 드리며 바른 결단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던 원동력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뜻과 원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주님의 종’이라는 인식이 그의 내면과 영혼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토대 위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다윗이었기에 그는 주님께 ‘바른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바른 결단’의 자리로 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서로 짓밟고 짓밟히는 ‘삼국지’와도 같은 세상입니다. 자신의 야망과 야욕,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편법,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불의한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짓밟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동일하게 불의한 방법으로 대응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 때,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할 때 그렇게 살게 되죠. ‘공의롭고 정의로우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리면서 살 때 말입니다. 다윗을 죽이려 드는 아들 압살롬과 그 세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래 다윗 밑의 신하였던 요압 장군도 그렇고, 다윗의 친구이자 책사였던 아히도벨도 그렇고, 압살롬과 함께 반역을 꾀했던 장수들이 삼국지에 등장한 욕망의 화신처럼 다들 자기 욕망을 좇아 이합집산처럼 몰려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그들에 비해 다윗이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는 그 순간에도 다윗 곁을 신실하게 지켰던 장수들이 있었죠. 이른바 아렉 사람 후새를 비롯해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 둘은 끝까지 다윗과 함께 한 장수들이요, 곧 다윗의 언약을 받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와 같은 삼국지의 시대에서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은 다윗의 언약,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좇기보다 다들 각기 제 길을 위해 압살롬에게 달라 붙었지만, 오직 다윗의 언약 곧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본 자들은 다윗이 신발도 신지 못한 채 기드론 골짜기를 가는 그 길목 속에서도 오직 다윗과 함께 한 길을 택했던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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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우리의 기도는 내 욕망을 관철시키려는 ‘그릇된 기도’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좇는 기도,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하는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기도자가 되는 게 중요한 것이죠. 그렇게 우리가 나를 비워내면 그때 주님의 말씀이 채워지고 주님의 뜻으로 채워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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