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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벨릭스가 연기하여 이르되(행24:10-23)

by 권또또 2022.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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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성화) 다윗은 15살에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는 그토록 겸손했지만 왕이 된 이후부터는 왕권에만 집착한 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과연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엇을 보시고 왕으로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이새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그때 큰 아들 엘리압을 보고 너무나 준수하고 잘 듬직해서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기름을 붓고자 했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도 아니고, 둘째 아비나답도 아니고, 셋째 삼마도 아니고, 일곱째까지 다 봤지만 아니라고 했죠.

그러자 막내 아들 다윗이 양을 치고 있었는데, 그를 데려오도록 했고,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한 아들이었죠.

 

(원해)하나님께서 그 다윗의 무슨 중심을 보시고서 다윗을 왕으로 택한 것이었을까요?

우리말 ‘중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라브’(לב)입니다.

그 단어는 ‘집 안의 권위를 나타내는 목자의 지팡이’를 뜻하는 상형문자와 같습니다.

영어로 ‘내적인 권위’(authority inside)를 뜻하는 말입니다.

 

(깨달음)무슨 뜻이겠습니까?

사실 다윗은 형들과 달리 배다른 8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집에 왔을 때도 형들은 집에 있었지만 다윗은 들판에서가 양치기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다윗은 형들의 삶에 비해 양치기하며 살아야 하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서 아버지에게 불평하거나 원망치 않았죠.

오직 아버지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처럼 받아들이며 묵묵히 복종했던 다윗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히브리어 라브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의 중심을 보셨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처럼 존중하며 복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과 달리 양치기로 내몰릴 때도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양들을 지키고자 물맷돌 실력을 키워나갔던 것이죠.

그런 자립심을 키우고 있었기에 전쟁터에 나간 형들의 안부를 묻고 오라고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킬 때도 온전히 순종했던 것입니다.

 

(적용)그렇다면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곧바로 왕이 되지 못한 채 8년 넘게 광야로 도망치는 삶을 살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15살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곧바로 왕이 된 게 아니었죠.

골리앗을 쓰러트린 후에 여러 공적을 세웠고 그 후에 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해서 사울의 사위가 되었죠.

그게 20대 초반의 시점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곧바로 왕위에 올랐습니까?

사울 왕이 자기 부마인 다윗에게 왕위를 물려줬습니까? 아니죠.

백성들이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라”는 창화하는 소리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죠.

 

그래서 3천명의 정예부대를 동원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광야로 도망쳤는데 그로부터 8년 넘게 도망다니며 살아야 했죠.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삼고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까지 붓게 하셨는데, 왜 8년 넘게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윗도 알 수 없죠.

 

하지만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기간 동안 놉 땅으로 아둘람 동굴로, 모압 땅으로, 유대 광야로, 블레셋의 시글락 지역으로, 곳곳으로 숨고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에 전적으로 복종했죠.

 

그 고백이 바로 시편 139편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

 

(깨달음)다윗은 그 어떤 도피행각 속에서도 하나님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전적으로 복종했던 거죠.

그것이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 연장선상의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에, 사울 왕이 자신의 진실을 왜곡해도 의의길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적용)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도 그런 중심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중심으로 복종하며 사는데 뭔가 뜻하신 계획을 지연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이 뒤틀리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처럼 그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 내어맡기며 전적으로 기다리며 주님의 뜻을 받드는 자세가 필요한 법이죠.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역배)벨릭스 로마 총독 앞에서 바울의 죄목을 고발한 더둘로는 정식 법률가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변호사는 정식 법률을 연구하지 않아도 수사학 곧 말빨만 좋으면 누구나 돈을 받고 고용되던 때였습니다.

바울을 고발하던 더불로 변호사 그런 웅변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그가 운을 뗄 때 총독의 보살핌 덕분에 우리 지역이 평안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고 했죠.

물론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그 총독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부성 발언이었습니다.

그 뒤 그가 바울을 고발한 내용은 그것이었죠.

바울이란 자는 전염병을 퍼트리는 자와 같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을 소요케 하는 폭도와 같다’고 고발했죠.

두 번째 더둘로가 고발한 내용은 바울이란 자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서 ‘불순한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것이었죠.

그만큼 바울이란 자는 30년 전 나사렛 예수처럼 얼마든지 세력화하여 로마에 대항할 수 있는 무장봉기 세력이라는 것이었죠.마지막 세 번째 고발한 내용은 ‘성전을 더럽게 하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더불로가 고발한 세 가지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깨달음)그를 통해 지난 시간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30년 전에 예수님을 고발한 그 모습 그대로, 대제사장 무리들 성전 기득권자들 진리를 돈으로 사고 파는 자들은 30년 후에도 똑같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30년 전의 예수님처럼 바울도 진리와 생명의 길을 위해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걸어가야 할 길이 바로 그런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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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오늘 본문은 그 이후의 내용을 전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 무리에게 고용된 웅변가 더둘로는 자신의 세치 혀를 놀려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바울이란 자는 로마제국의 실정법을 어긴 채 가는 곳마다 폭동과 반란을 일으켰고 무장봉기까지 일으키는 정치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법정은 검사와 변호사가 맞붙게 돼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벨릭스 총독도 그래서 더둘로의 고발 내용을 다 듣고나서 이제 바울에게 변호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본문 10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전개)벨릭스 총독은 머릿짓을 하면서 바울에게 말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만큼 교만하고 거만한 벨릭스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때 바울이 뭐라고 첫 운을 뗍니까?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이 된 것을 내가 알고 변명합니다”하고 대답하죠.

바울의 대답은 웅변가 더둘로가 첫 운을 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죠.

더둘로는 아부성 발언을 남발했지만 바울은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바울이 변론한 내용이 나오는데 본문 11-21절까지의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11절을 보면 바울이 지금 벨릭스 총독 앞에 선 때가, 예루살렘에 상경한 날로부터 “열이틀 밖에 안 됐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성전에 들어가 나실인 서약을 행한 이들을 도와준 기간이 7일이었습니다.

그 7일째 되는 날 성전의 유대인들, 정확히 말해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바울이 죽을 위협에 처했을 때 천부장 루시아가 건져내서 감옥에 가두도록 했죠.

그게 8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9일째 되는 날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40여명의 암살단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때 천부장 루시아는 밤 9시경에 470명의 무장군인을 동원해 바울을 가이샤라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호송토록 했죠.

그러니까 10일째 되는 날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 섰는데 나중에 심문하겠다고 하면서 바울을 지하 감옥에 가두게 했죠.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후인 오늘 벨릭스 총독 앞의 법정에 서서 변호를 하기 시작한다는 주장입니다.

 

왜 바울이 이 짧은 기간을 굳이 밝히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자신이 폭동과 반란을 일으키기에도, 무장봉기 세력을 규합해 로마에 반역을 꾀하기에는 역부족인 시간임을 알리고자 한 거죠.

 

이어서 바울이 변론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12-13절을 보면 회당이나 성전에서 이단 사설로 논란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벌인 적이 없으니, 그에 따른 증인도 없다는 것이죠.

 

이어서 바울이 변론한 내용은 14-21절의 내용입니다.

바울이 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좇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사흘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그 도를 좇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자기 자신은 양심에 거리낌 없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부활의 복음을 전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실인 결례를 행하는 이들을 돕고자 조용히 성전에 있는데, 에베소에서 만난 유대인들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것이죠.

그들은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유대교를 비방했다는 명목으로 지금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울을 죽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절대로 유대교를 비방하지 않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전했을 뿐이라는 것이죠.

바로 그 일로 폭행을 당하다가 붙잡혀서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았는데, 그때도 똑같이 복음을 증언했을 뿐이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바울이 변론하자, 그것이 거짓이라고 나선 증인이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어떤 증인도, 반론하는 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이 한 말이 사실이요, 대제사장이 돈으로 고용한 웅변가 더둘로의 고발 내용이 거짓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벨릭스 총독이 어떻게 말하는지, 본문 22-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깨달음)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대제사장 무리가 고발한 내용에 대해 신실하고 정직하게 변호했습니다.

모두가 거짓이 없는 진실이었죠.

그 사실 앞에 누구도 거짓이라고 소리치거나 증인을 내세운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벨릭스 총독도 무죄가 입증된 바울을 석방하여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벨릭스 총독은 천부장 루시아가 이곳으로 온다면 그때 이 일을 처결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백부장에게 명령하죠.

바울을 다시 감옥에 감금하도록 하라고 말이죠.

대신에 바울의 친구들, 다시 말해 복음의 동역자들이 찾아와서 돌보는 것까지는 막지 말고 허용하라고 말하죠.

 

왜 벨릭스 총독은 바울을 즉석에서 풀어주지 않는 것입니까?

여태껏 대제사장 무리들에게 뇌물을 받아온 총독이기에 바울을 풀어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 즉석에서 바울을 풀어줬다가는 대제사장 무리들이 어떻게 나올지 빤히 알고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도 있었습니다.

바울로부터 뇌물을 받을까 해서, 그를 감옥에 감금시켜 놓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재판을 무기하 연기하도록 했는데, 이로부터 2년간 계속 연기된 것이었습니다.

 

(적용)그렇다면 바울은 너무나도 억울한 입장 아니겠습니까?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유대교를 비방한 적도 없이 오직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전하다가 지금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것인데, 하나님께 원망스러운 바울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사울의 부마가 되었어도 8년 넘게 도망자 삶을 산 다위처럼, 그 어떤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그 모든 기간을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기간으로 삼았기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여다보신 중심 아니었습니까?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총독의 법정에서 진실을 밝혔히지만 곧장 풀려나지 않고 2년간 구금된 채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한 바울이었죠.

하지만 바울은 그 어떤 뇌물을 써서 풀려나길 원치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컨트롤하심 속에 내어 맡기며 복종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게 하시는”(사22:22, 계3:7) 분이시기 때문이죠.

그 하나님의 방법대로 자신의 진실을 만천하에 규명해 주실 것을 온전히 믿었기에 감옥 속의 생활도 복종했던 것입니다. 

 

(깨달음)죄로 가득 찬 인간 세상에서 진실을 밝힌다고 언제나 진실이 규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의 진실이 묵살당하거나 묻혀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머리띠를 두르고 진실을 소리쳐 외쳐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식음을 전폐해도, 나의 진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가 있죠.

 

그러나 그때 억울해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은 아무도 나의 진실을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진실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말이죠.

세상 사람들이 나의 진실을 의도적으로 묵살하거나 왜곡해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가 이르면 당신의 방법으로 나의 진실을 드러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내 진실을 아무도 몰라도, 오해받는다 해도, 주님 안에서 용기를 다해 의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승부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판가름 나기 때문입니다.

 

(주문)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저와 여러분에게 길이 막혀도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주시기까지 복종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죠.

 

(주음성)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다윗이 왕따를 당하고 양치기로 내몰려도 아버지의 권에 절대 복종한 것을 알고 있느냐?”

“배다른 형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험한 양치기로 살아도 아버지를 원망치 않고 오직 그 권위에 복종한 것 말이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합한 자라면서 왕으로 기름부어 세우지 않았더냐?”

“하지만 곧바로 왕이 된 게 아니라, 사울의 사위가 되었어도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죽이려 든 사울 때문에 8년 넘게 도망쳐다니지 않았더냐?”

“그때 다윗이 광야의 밤 이슬을 맞고 대낮의 뜨거운 뙤약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안고 일어섬을 아신다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았더냐?”

“오늘 본문의 바울도 진리의 길을 좇다가 억울한 일을 당해 지하 감옥에 또다시 갇힌 센세였지만 불의한 뇌물을 쓰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 것도 그와 같지 않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삶에 원치 않는 비방이 몰려올지라도 결코 불의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도록 해라.”

“너의 진실이 묵살당한다고 해도, 너의 의로움이 묻혀버린다고 해도, 누구의 손을 잡으려고도 하지 말아라.”

“인간의 손은 짧디 짧은 손이요, 하나님의 손은 결코 짧지 않은 손이니 말이다.”

“그분은 열면 닫을 자가 없게 하시는 분이요, 닫으면 열자가 없게 하시는 전능하신 손이니 말이다.”

“오직 너는 인간의 손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인간에게 인정받고자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았으면 좋겠구나.”

“그런 너를 내가 기뻐하지 않겠느냐? 그런 너의 모든 생각과 안고 일어섬을 내가 지켜주지 않겠느냐?”

 

(찬양)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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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누구 다 알아주시고 인정해주시는 분이 아니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시죠.

산상수훈의 팔복도 어중이떠중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참된 제자로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말이죠.

 

하나님께서 자기주장이 강한 모세를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빚으셔서 온유한 심령으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에게 복종하듯 하나님께 복종한 다윗을 8년 넘게 컨트롤하셔서 온유한 심령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본문의 바울도 주님을 만난 뒤에 고향 땅 다소서 7년 넘게 다듬어주셔서 오늘의 모습처럼 사람에게 휘둘리거나 불의한 방법을 사용하기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맡기며 복종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진리와 생명의 길을 좇다가 원치 않는 억울함과 비방을 들어도 하나님께 복종하며 만사를 내어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바울을 세워주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정받아야 할 자리는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혜가 충만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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