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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WednesdaySermon/사도행전

내가 구원하여다가(행23:25-30)

by 권또또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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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열기)(발췌)지난 주가 광복 77주년 기념주일이었습니다.

오산학교 선생이던 다석(多夕) 류영모의 제자이자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되기도 했던 함석선 선생이 있습니다.

그가 1927년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쓴 ‘성서조선’의 주간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 책이 바로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인데 거기에 ‘해방’이란 글이서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이 해방에서 우리가 첫째 밝혀야 하는 것은, 이것이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는 것이다.

해방 후 분한 일, 보기 싫은 꼴이 하나 둘 아니지만 그 중에 참 분한 일은 이 해방을 도둑해 가려는 놈들이 많은 것이다.

그들은 자기네만은 이 해방을 미리 알았노라고 선전한다.

그것은 그들이, 이 도둑같이 온 해방을 자기네가 보낸 것처럼 말하여 도둑해가려는 심정에서 하는 소리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시대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면, 왜 8월 14일까지 그렇게도 겸손히 복종을 하고 있었던가?

그때에 한마디라도 미리 말하여 민중을 위로하고 용기를 가다듬어 준 것이 있다면. 이제 와서 새삼스레 선전을 하지 않아도 민중이 지도자로 모셨을 것이다.

 

그만두어라. 솔직하자. 너와 내가 다 몰랐느니라. 다 자고 있었느니라.

신사참배라면 허리가 부러지게 하고, 성을 고치라면 서로 다투어 가며 하고, 시국연설을 하라면 있는 재주를 다 부려서 하고,

영미를 욕하고, 전향하라면 참 ‘앗싸리’ 전향하고.

곱게만 보일 수 있다면 성경도 고치고 교회당도 팔아먹고.

신용을 얻을 수 있다면 네 발로 기어도 보이고 개소리로 짖어도 보여 준 이 나라의 지사, 사상가, 종교가, 교육자, 지식인, 문인에.

또 해외 유랑 몇십 년 이름은 좋아도 서로서로 박사파, 선생파, 무슨 계, 무슨 단,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인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세력 다툼을 하고.

중경 남경에선 중국인의 강낭죽을 얻어먹으며 자리 다툼을 하던 사람들이 알기는 무엇을 미리 알았단 말인가?

 

이 나라가 해방될 줄을 미리 안 사람은 하나도 없다.

또 설혹 어떻게 해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그래서 미리 싸웠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

미리 알았노라는 협잡꾼을 물리쳐라. 정치가 본래 협잡이니라.

협잡 아니라는 놈일수록 협잡이니라.

도둑같이 왔으면 주인 없는 해방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은 씨알(민중)의 것이 된다.

 

둘째로 알아야 할 것은 이 해방은 하늘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모른 것은 아무도 꾸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꾸미지 않고 온 것은 하늘의 선물이다.

이것은 하늘에서 직접 민중에게 준 해방이다.

아무도 여기에 대하여 공로를 주장할 중간적인 자가 없다.

종이 될 때 반항도 못 하고 되었던 것같이, 놓일 때도 아무 힘 쓴 것 없이 갑자기 뜻밖에 놓였다.

뜻밖이니만큼 기쁨이 더 크다.

이것은 아마 섭리가 우리의 기뻐하는 것을 보자고, 그리하여 착한 마음이 저절로 소성되는 것을 보자고, 일부러 하신 일이다.

 

대체 카이로 회담은 왜 있었으며, 포츠담 조약은 또 왜 있었으며 스탈린과 루즈벨트 밀담은 왜 있었나?

일이 왜 그렇게 극비밀리에 되었으며, 러시아는 왜 그렇게 약속을 어기고 재빨리 행동하여 전쟁의 종국이 벼락식으로 오게 되었나?

왜 원자탄이며, 왜 일본의 급작 항복인가?

아무리 과학적인 관찰로 하더라도. 이것을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계획적으로 보이지 않나?

 

모든 일이 어떤 합점을 향하여 갑자기 집중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그 한 점은 무엇일까?

남의 일은 또 몰라도, 적어도 우리 자리에서 보면 해방을 하루아침 하늘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라 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객관적인 사실을 우리는 모른다. 일의 뜻을 생각할 때, 그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습니까?

함석헌 선생은 해방을 ‘하늘의 선물’이라 말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죠.

미국이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그로 인해 엿새 후인 8월 15일에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항복할 것도, 우리가 해방을 맞할 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는 거죠.

하루아침에 해방이 주어질 것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해방은 그분의 말 그대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하루 아침에 해방을 맞이한 것과 같은 격이죠.

 

문제는 해방 직후죠.

함석헌 선생의 지적처럼 해방을 자기 공로로 과시하고 과장하는 정치인들과 파벌들이 득세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사분오열되고 급기야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치러야 했죠.

그때 도둑같이 맞이한 해방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여기며 겸손하게 받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서로가 존중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하수처럼 흐르게 하는 나라가 되었겠죠.

하지만 해방이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정치인들과 정파들이 싸우면서 국론이 분열되는 아픔을 겪었죠.

 

(적용)그런데 이것은 정치인들만 그런 게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죠.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지 불과 한 세기 만에 전국민의 4분의 1이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것 역시 일제강점기의 치욕과 한국전쟁의 격량 속에서 하나님께서 선물로 내려주신 은총이었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지도자들은 저마다 자기 공로라고 주장하고, 자기들 주장만이 옳고 상대를 무시합니다.

그로 인해 정치인들처럼 교회 지도자들 역시 세상의 지탄을 받아왔죠.

 

(적용)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내 공로로 돌리며 그 영광을 가로챈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죠.

광복을 하루 아침에 맞이하게 하신 것처럼, 내 삶에 일어난 놀라운 일이 하나님의 선물인데도 내 열심히 된 것인양 착각하며 나의 공로를 드러내는 모습 말이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인지,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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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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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배)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에 넘겨 유대인들에게 재판을 받게 했죠.

그런데 산헤드린 의원 중에 사두개파와 바리새가 다투며 바울도 다칠 위협에 처했죠.

그때 천부장 루시아는 군사를 동원해 바울을 빼내 안토니아 요새로 이동시키도록 했죠.

 

그런데 그 감옥 밖에서 음모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유대인들이 40여명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에게 연통을 넣어서 바울을 다시금 산헤드린 법정에서 세우게 했고, 그때 바울을 영내로 끌고 올 때 처단하겠다고 했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바울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암살단의 음모를 바울의 조카가 알게 되었고, 그날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가 알렸죠.

그러자 바울은 그 조카를 천부장 루시아에게 데려가서, 그 모든 암살 계획을 소상하게 알리도록 했죠.

 

그 모든 소식을 전해 들은 천부장 루시아가 어떻게 했습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천부장 루시아는 그날 밤 9시에 무장한 보병 200명, 기병 70명, 창병 200명을 동원했죠.

로마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까지 104km가 넘는 거리를 470명의 군인들에게 호송토록 한 것이죠.

물론 그들과 발걸음을 맞추도록 하기 위해 바울을 태울 짐승까지도, 곧 말까지 준비해서 바울을 태워 호송케 한 것입니다.

물론 470명의 군인들은 가이사랴를 70km를 앞둔 안디바드리에 당도해서는 70명만 바울을 데리고 갔죠.

 

(깨달음)그를 통해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유대인 40여명의 암살단이 바울을 죽이려는 사실을 알린 조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알리게 하신 일이었죠.

바울의 목숨을 호위하고자 470명의 군인들을 동원한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 때 낮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시는 아바 아버지임을 살펴봤죠.

 

(본문)오늘 본문은 그 후의 내용으로 천부장 루시아가 470명의 군인들을 보낼 때 써 보낸 편지내용이죠.

본문 25-26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원해)바울을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호송토록 한 사람이 천부장이죠.

천부장의 이름은 ‘글라우디오 루시아’인데, ‘글라우디오’는 로마식 이름이고 ‘루시아’는 헬라식 이름이죠.

그는 바울을 감옥에 가두고 채찍질하라고 했을 때 바울이 로마 사람임을 밝히자 자기 자신도 로마 사람이라고 밝히죠.

다만 자기 자신은 돈을 많이 들여서 로마 시민권을 샀다고 말했죠.

그래서 자기 이름 루시아 앞에 ‘글라우디오’라는 로마식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전개)그런데 그가 쓴 편지의 내용을 보면 그가 얼마나 출세지향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7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깨달음)이것이 사실입니까?

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이 본래부터 로마 사람인 줄 알았습니까?

그래서 로마 군대를 동원해서 바울을 구해낸 것이었습니까?

 

아니죠.

본래 천부장 루시아는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에게 폭행을 당할 때 그가 자객 4천명을 거느린 이집트인줄 알았었죠.

그래서 그를 유대인들의 손에서 빼내 감옥에 처 넣고 채찍질을 하려고 했었죠.

채찍질 하려는 그때 바울이 로마 사람이라고 밝히니까, 그때서야 자기도 로마 사람임을 밝혔죠.

더욱이 당시에 로마 사람을 채찍질하려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린 후에 그렇게 했어야 했죠.

그런데 천부장은 무조건 바울을 채찍으로 때려려고 했던 것이고, 자기 잘못이 드러나면 출세는 고사하고 옷을 벗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그때 천부장 루시아는 곧바로 채찍질을 멈추게 했던 것이죠.

 

더욱이 그가 바울을 구해낸 때가 언제였습니까?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에 넘겨 유대인들의 법에 재판을 받게 했죠.

그런데 그때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다투다가 바울도 다칠 것 같아서 바울을 꺼내도록 한 것이었죠.

왜죠?

바울을 살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맞아 죽으면 그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바울을 꺼낸 것이었죠.

 

그렇기에 본래부터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알고 바울을 건져 낸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일을 자기가 주도해서 건져냈고, 지금 로마 시민권자 바울을 총독에게 보낸다고 편지쓴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공로, 자기 자랑, 자기 치적을 내세우고자 하는 것이요, 그만큼 로마 총독에게 아부하고자 한 것입니다.

 

(전개2)이것은 본문 30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깨달음) 바울을 죽이려는 암살단이 있다고 바울의 조카가 천부장에게 알려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울을 고발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들조차 총독 앞에서 말하라고 했다는 것은 거짓이죠.

 

이것은 마치 자기 자신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있다는 것을 총독에게 과시하는 모습임을 알 수 있죠.

천부장은 그날 밤에 바울을 호송하도록 470명의 무장한 군인만 동원했지, 바울을 고발하는 자들까지 가이사랴로 가도록 조치한 일은 없었죠.

 

그렇기에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바울을 구하기 위해 470명의 무장한 군인을 동원한 분이 누구인지도 말입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 470명의 군인들을 무장시켜 바울을 호송토록 한 것은 바울을 위한 게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출세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죠.

바울을 호송토록 하신 분은 오직 바울을 감싸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온갖 허세와 권모술수를 통해 자기 출세만 꿈꾸는 인간이었던 것이죠.

 

중요한 것은 그가 바울을 몇 차례 만나고,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로서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자 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다는 사실이죠.

그만큼 그는 하나님의 나라나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기 영광 자기 출세 자기 공로만 내세우는 자였다는 점입니다.

 

(적용)그런 자들로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죠.

그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선물처럼 광복을 주셨을 때 정치인들이 다들 자기 공적 자기 출세의 기회로만 삼고자 한 것과 같기 때문이죠.

교회도 반세기만에 하나님께서 대부흥을 주셨는데 교회 지도자들이 자기 공적 자기 출세지향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원성)바울도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가 있죠.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13:4)

‘자랑하다’는 헬라어 ‘헤르페류오마이(περπερεύομαι)는 그 본래 단어가 ‘허풍선’이란 말입니다.

또 ‘교만하다’는 헬라어 ‘퓌시오’(휘υσιόω)는 ‘부풀리다’는 뜻입니다.

 

(깨달음)무엇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로 놀라운 은총을 덧입었을 때 천부장 루시아 같은 사람이 있으면 자기 업적이라고 허풍선을 떨고 부불린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광복을 맞이할때, 교회의 부흥을 맞이할때, 자기 허풍과 과장을 드러내는 걸 주님은 기뻐하지 않죠.

 

우리가 그와 같은 주님의 제자라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주일날도 살펴봤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바울처럼 그 어떤 선물을 받아도, 그 어떤 업적을 이루어도,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는 고백을 갖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문)그렇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주님께서 갑작스런 선물을 베푸실 때 내 공로나 허세나 과시보다 모두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신실한 제자로 살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시는 주님이시죠.

 

(주음성)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광복 77주년을 맞이했는데 그때의 광복을 누가 베풀어줬다고 생각하느냐?”

“194586일과 9일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을 세상 누가 예측이나 했느냐?”

그로부터 엿새 후인 8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항복한 것도, 우리가 해방을 맞이한 것도, 누가 예견한 일이었더냐?”

그와 같은 광복의 선물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지 않더냐?”

그 은혜 속에서 너희가 지금 자유와 번영을 맞이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것 아니더냐?”

 

그러니 내 사랑하는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하나님께서 너에게 선물과 같은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주실 때도 결코 너의 업적이나 너의 공로라고 자랑치 말도록 해라.”

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것도, 반세기만에 교회가 대부흥을 경험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 않더냐?”

그러나 정치인들이 이전투고 싸우고, 교계 지도자들이 파벌을 부추겨 자기 공로 자기 허세를 떨고 있을 때 세상에 지탄을 받는 것 아니더냐?”

오직 너는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로 그 모든 일에 겸손하게 고백하는 신실한 제자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찬양)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 있네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겠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저희 배부를 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 받겠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천국이 저희 것이라

 내게도 주소서 내가 복을 받기 원하네

오 내 주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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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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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닫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밤 9시에 470명의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가이사랴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세지향적인 천부장 자기 허세와 권모술수로 가득찬 그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그 모든 공적으로 자기 것으로 돌렸죠.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통해 하나님의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로 겸손하게 고백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자들을 통해 영광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광복 77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교회에 부흥을 이루게 하신 것도,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과 같은 역사를 이룰 때 오직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고 고백하며 사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와 같은 겸손하게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리는 자들을 통해 주님께서 더 복되고 귀한 선물과 같은 역사를 베풀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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