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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 아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어른을 정화시켜 주죠. 보는 것만으로 세상 속에 굳어 버린 어른들의 마음들을 녹여 주니까요.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부모는 긴장하게 되죠. 부모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일깨워주죠. 그때는 아이가 스승 노릇을 해요. 대학 4학년이 된 제 큰딸도 그랬었죠. 엊그제 그 딸이 위험물산업기사 자격증 시험을 본다고 해요. 나는 전기기사 자격증도 도전해 보라고 권했어요. 어떻게 할진 모르겠어요. 다만 세상을 바르게 보고 따뜻하고 치열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제는 평소 알고 지낸 두 분과 광주에 다녀왔어요. 오가면서 오래전 천국을 보고 온 입신 이야기를 했어요. 계시록에 나오는 금빛 찬란한 그곳 말에요. 보좌 앞의 주님의 빛이 너무 강렬해서 주님의 발치밖에 볼 수 없었다고 하죠. 한 분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또 다른 한 분은 자기 아들이 초등학생 때 본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나도 살짝 얹었죠. 천장에 있는 내 영혼이 방에 누워 있는 내 육체를 봤다고, 천국에 막 올라가려는데 모기가 물어 못갔다고요. 그 황홀한 광경을 보고 있을 때 주님은 어깨를 툭툭 치며 ‘어서 가라’고 했다고 해요. 그 후 초등학생인 그 아들은 게임에서 벗어났고 지금껏 따뜻하고 치열하게 세상을 살고 있다고 하고요.
“겉보기에는 멀쩡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예의 바르게 대화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다가 갑자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두개골을 부수고 시체를 토막 내어 도시락처럼 싸 가지고 다니면서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라도 먹듯이”(98쪽)
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에 나온 이야기예요. 전염병이 온 지구를 강타해 모두가 좀비처럼 변한 모습을 그려준 것이죠. 그 문제를 외계에서라도 해법을 찾고자 전문가들로 구성된 우주선까지 띄우고요. 그곳에 유토피아가 있겠거니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우주선의 기장조차 전염병에 감염돼서 그 안에서도 물고 물리고 뜯고 뜯기는 공포가 계속되죠.
이 책엔 ‘너의 유토피아’ 외에 7편의 다른 단편이 담겨 있어요. 영생불사 연구소의 막내지만 웃기고 서글픈 현실 속에서도 버티면서 일하는 회사 이야기.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 인간이 만든 AI가 로봇을 태우고 인간을 구하려 돌아다니는 이야기. 인간 남편과 외계인 아내의 사랑 이야기. 인간의 출생과 성장과 노화의 한계를 담은 이야기. 성 소수자 이야기. 가정 폭력과 그것이 한 아이의 일생에 미치는 이야기. 과학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들에게 대항하는 식물의 반란 이야기 등이죠. 확실히 오징어 게임보다 이 책은 몰입감이 좋아요.
정보라는 작가 한강이 받은 부커상의 최종 후보에도 오른 이죠. 그녀는 왜 SF소설 환상소설을 주로 쓰는 걸까요? 감당하기 힘든 현실, 인정하고 싶지 않는 현실과 맞서 싸우는 게 불가능하지만 꿈은 꿀 수 있다는 거겠죠. 뒤틀린 정부의 거대권력에 맞서봐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만 소설 속에서만큼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그 목소리가 일그러진 세상을 일깨우고 집단 지성이 되면 점차 변화의 물결을 이룰 수 있잖아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대부분 변방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출3:1)
우리말 ‘호렙’의 히브리어 ‘호레브’(חָרַב)는 ‘광야’(desert)를 뜻해요. 원형동사 ‘하라브’(חָרַב)는 ‘황폐하다’ ‘말랐다’ ‘끝났다’는 뜻이죠. 호렙은 황무지와 다르지 않죠. 그런데 모세가 그 산에서 더디 내려올 때 이스라엘 백성이 황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죠. 그때 하나님께서 주동자들을 칼(출32:27)로 처단토록 했는데 ‘칼’이 히브리어로 ‘헤레브’(חֶרֶב)인데 원형동사 ‘하라브’와 똑같아요. 황폐한 곳에 하나님의 현현이 임하고 하나님 앞에 새롭게 헌신할 때 ‘하나님의 산’이 된다는 뜻이겠죠.
그 ‘호렙산’(왕상19:8)이 ‘시내산’(출19:1,신33:2)으로 불리기도 해요. 말장난 같지만 ‘떨기나무’가 ‘가시 덤불’(thorny bush)과 같은 잡초를 의미하는 ‘스네’(סְנֶה)이듯 ‘시내산’의 ‘시나이’(סִינַי)도 ‘가시’(thorny)를 뜻해요. 아마도 시내산도 그런 뜻이 있지 않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시 같은 애굽의 고통에 시달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며 사는 그곳이 ‘하나님의 산’이라고 말예요.
그러니 시내산과 호렙산은 같은 산맥에 속하는 두 고지대의 이름일 수 있겠죠. 유달산도 노적봉과 일등바위가 있듯이 말예요. 전통적으로 그 산이 ‘이집트’에 있다고 여겼는데 최근엔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 산이 어디에 있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그 의미는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삶의 환경이 황무지와 같고 가시 같은 난제로 가득차 있어도 하나님의 현현과 임재안에 거한다면 그곳이 입신의 세계요 하나님의 산(요4:21)이 된다는 거죠.
부디 제 딸과 대학생인 아들들도 그렇고 당신의 아들딸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유토피아 같은 환상을 꿈꾸기보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더 따뜻하고 더 치열하게 살았으면 하고 말예요. 국가 권력이 부패한 것 같으면 글로 바른 목소리 하나쯤은 내 보고, 하나님의 나라에는 공해도 없고 쓰레기도 없고 음식 찌꺼기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줄여나가면서 살게요. 그를 위해 따듯하고 치열하게 살도록 ‘어서 가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잖아요(마17:5). 그런 삶의 현장(롬12:1)이 호렙산이고 시내산이고 하나님의 산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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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일생과 편지 | 권 성 권 - 교보문고
바울의 일생과 편지 | 바울은 누가 뭐래도 복음 전도자였다. 그가 복음 전도자로 활동한 것은 그의 곁에 위대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나바, 디도, 실라, 디모데, 누가, 루디아, 야손,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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