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주의 얼굴의 광채를(시80:1-19) google-site-verification=bWsZs7W0_gSPuMoDXujZISVmSBQHlpw3IxoqFPAwWOg
 

주의 얼굴의 광채를(시8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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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0편은 애통의 시입니다. 개인적인 애통의 시가 아니고 공동체적인 애통의 시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시편80편의 배경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망하게 된 시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두 가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목자이시라는 것입니다. 1절에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가나안 땅 전체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야곱가족이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로 애굽으로 이주해 400년 만에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애굽을 나와서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외면한 이스라엘 나라는 솔로몬 이후 열왕들이 통치하던 시기에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고 눈물을 삼키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하고, 선지자들이 외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처사였죠. 그래서 사방에서 침을 흘리며 서로 집어삼키려고 다투는 열방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하고 있는 게 ‘포도나무’입니다. 8절에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쫒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애굽에서 가져다가 가나안에 옮겨 심으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자라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라고 노래합니다. 그 뿌리가 깊이 박혀 땅에 가득하며, 그 그늘이 산을 가리고,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치게 하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죠.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는 이스라엘 나라를 북으로는 유브라데 강까지, 남으로는 이집트 국경까지, 동으로는 요단 동편 평야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지중해 바다까지 번성케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현실은 담장이 허물어지고, 아무나 과수원을 드나들며 포도를 따가고, 심지어 멧돼지에게 짓밟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목자 잃은 양 떼처럼, 멧돼지에게 짓밟힌 포도원처럼 변해버린 이스라엘 나라에게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오늙 읽은 시편 80편에는 몇 번에 걸쳐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얼굴빛’입니다.

3절에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또한 7절에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그리고 19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시편 기자는 탄식과 고백 사이에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시편기자가 반복해서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춰달라고 간구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패망한 이스라엘 백성들, 목자 없는 양 같은 처지에 있는 그들, 멧돼지에게 짓밟혀 쑥대밭이 된 포도원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그것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죠. 나라가 망하고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진 절망의 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비춰달라는 것,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다는 것, 그것이 곧 진정한 구원이라는 것이죠. 그래야 소통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고, 자신들의 잘못된 부분을 바르게 깨닫고,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시편기자는 지금의 이스라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하여 목자 없는 양, 짓밟힌 포도원이 된 것은 힘이 없고 재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구원은 쓰러져가는 나라가 다시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있는 것이죠.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과 관계 회복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얼굴빛을 자신들에게, 곧 오늘 우리에게도 비춰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죠.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최악의 괴물은 ‘메두사’일 것입니다. 메두사는 본래 신들도 반할 만큼 뛰어난 미모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테네 여신의 미움을 받아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죠. 고운 얼굴은 무섭게 부풀어 오르고, 깊고 맑은 눈은 핏발이 선 채 흉하게 튀어나왔습니다. 희고 가지런한 치아는 누런 멧돼지의 어금니로 바뀌었고, 긴 목은 비늘로 뒤덮였죠.. 그리고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었던 삼단처럼 길고 고운 머릿결은 한 올 한 올이 꿈틀거리는 독사로 바뀌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형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메두사의 진짜 저주는 그런 끔찍한 외모에 있었던 게 아닙니다. 지위의 추락 때문에 빚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메두사에게 진짜 저주는 관계의 단절입니다. 누구든지 메두사의 얼굴을 보는 사람은 돌로 변해버립니다. 그 까닭에 누구도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죠. 눈길이 마주칠까 두려워합니다. 신에게 사랑받고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얼굴을 한번 보기를 소원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외면하는 얼굴이 돼 버렸습니다. 그만큼 따뜻한 사랑의 눈길을 나눌 수 없게 된 것이죠. 그것이 메두사의 저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랑 가운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외면을 가져왔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순간, 인간의 삶이 가장 불행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받는 형벌은 실패와 좌절보다도 더 큰 형벌 곧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메두사의 저주가 그 누구와도 다정스런 눈길을 주고받지 못하고 아무와도 얼굴을 대면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저주는 하나님의 얼굴빛을 대하며 교제하지 못하고 친밀감을 나누지 못하는 모습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나라가 망하고, 눈물의 양식을 먹고 이웃의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에서도, 삶의 울타리가 무너져 인생의 열매가 짓밟히는 상황에서도, 그가 간구하는 주님의 얼굴빛을 비춰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얼굴빛을 비추시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간절한 소망, 곧 우리 자신의 간절한 바람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바람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 하면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있죠. 민수기 6장 24-26절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하는 말씀 말입니다.

 

과연 그 말씀을 누가 한 것입니까? 모세입니까? 아론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아론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할 때 이렇게 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의 얼굴빛을 받으며 교제하기를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는 훨씬 더 우리와 사랑의 교제, 친밀감을 나누길 원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전자책] 야긴과 보아스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BR 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쓴 것입니다.BR 이 책에는 사무엘서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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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가 본문의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 목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해 오고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여호와 이레되시는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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