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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20년간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시고자 3만명을 동원했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오는데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뛰었다.
그때 읏사는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고 그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를 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1. 법궤 곧 하나님의 궤는 제사장이 메고 가는 것이다.
법궤는 본래 레위인 중 고핫 자손이 메고 가는 것이었다. 고핫의 아들들 곧 게르손과 므라리도 메고 갔다. 훗날 여호수아가 요단을 건널 때도 제사장들이 가도록 한 이유다.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민4:15)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민7:9)
“이에 성막을 걷으매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메고 출발하였으며”(민10:17)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수6:12)
2. 수레에 싣고 갈 때 왜 소들이 뛰었는가?
법궤를 수레에 싣고 가는 게 아니라 메고 가는 것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소들이 뛰도록 한 것이다.
3. 왜 웃사가 죽임 당했는가?
궤가 20년간 머물러 있던 아비나답은 제사장 가문이다.
그러니 그 아들 웃사와 아효도 제사장 후예답게 법궤를 모셨을 것이다.
미드라쉬에서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https://www.sefaria.org/II_Samuel.6.4?lang=bi&with=Midrash&lang2=en
그렇다면 더더욱 하나님의 궤는 사람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웃사는 손으로 붙잡았던 것인가?
우리말 ‘붙잡다’는 히브리어 ‘아하쯔’(אָחַז)는 ‘자기 소유물처럼 여겼다’(창22:13,창25:26,출4:4)는 뜻이다.
그만큼 웃사는 하나님의 법궤를 온 중심을 다해 모시고자 한 자가 아니라 3만명 앞에서 주인행세를 하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고 자기 과시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4. 이 모습을 보노라면 모세가 광야에서 반석을 두 번 친 모습이 떠오른다.
하나님께서는 분명코 반석을 향해 명령하여 물을 내도록 했다(민20:8)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도록 했다(민20:12).
그렇다면 모세는 반석에게 명령한 후에 기다리면 될 텐데 반석에서 물이 나오지 않자 백성들에게 그렇게 말을 한다.
“반역자들아, 들어라. 이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해주랴?”(민20:10, 공동번역)
이른바 백성들을 향해 비꼬는 투로 말을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자기 누이 미리암이 죽은 후에 슬픔에 젖어 있던 때였다.
그런데도 백성들의 물을 달라고 하자 모세가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백성들에게 비꼬는 말로 한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기다리면 될 텐데 물이 나오지 않자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고 기록하고 있다(민20:11)
여기에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자기 과시이자 자기 자랑을 드러낸 웃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마치 웃사가 법궤 위에 손을 들어 올린 것과 똑같은 이치다.
https://www.jtsa.edu/torah/the-death-of-miriam/
그런데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상황에 대해 구전율법 미드라쉬는 그렇게 해석한다.
“처음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그 반석에게 명령했는데 물이 조금 새어 나오자, 모세가 참지 못하고, 다른 반석에게 말했다. 그래도 그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지 않자, 처음 명령한 그 반석을 향해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가 이 반석을 쳐 보겠다’하고 반석을 쳤다(출17:6). 그래도 나오지 않으니까, 한 번 더 그 반석을 친 것이다.”
https://www.sefaria.org/Numbers.20.10?lang=bi&with=Midrash%20Tanchuma&lang2=en
그만큼 모세는 자기 누이 미리암이 죽어서 슬픔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반석을 향해 명령하고 순종하면서 기다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모세는 조급증 걸린 것처럼 그 슬픔과 백성들의 원성을 참지 못한 채 반석을 향해 한 번 쳤고 물이 졸졸졸 나오자 한 번 더 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거드름 피운 웃사처럼 자기 과시를 드러낸 모습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일로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민20:12).
5. 오벧에돔은 왜 복을 누렸는가?
다윗이 그 법궤를 곧장 다윗 성으로 모셔오지 않고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머물게 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삼하6:12)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대상26:8)
오벧에돔의 자손이 62명이나 되고 그 자손이 모두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넘치는 복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오벧에돔’이란 이름의 뜻은 ‘오벧’이 ‘아바드’(עָבַד)로 ‘섬기다’는 뜻이고 ‘에돔’은 ‘붉다’(אֱדֹם)는 의미다.
오벧에돔은 웃사와 아효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하나님의 법궤를 잘 받들고 모셨던 것이다.
5.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법궤는 온 심령으로 모시고 삶으로 받들고 순종해야 복을 받는 것이다.
법궤에는 만나가 든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법궤를 온 심령으로 모시고 삶으로 받들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지 거드름을 피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기 과시를 삼거나 자기 자랑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직 심령으로 말씀을 받들고 삶으로 받드는 자에게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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