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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에는 ‘율법’, ‘제사’, ‘대제사장’ 등과 같은 말이 등장하기 때문에 구약의 해설서인가, 하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또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를 읽으면서 붙들어야 할 두 가지 메시지가 있음을 알 수 있죠. 첫째로 ‘뒤로 물러서지 말라’하는 권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늘의 은사와 성령을 맛보고서도 뒤로 물러가 이전의 유대교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꼴이 된다고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메시지는 ‘인내하라’는 권면이죠. 어떤 환란과 역경이 닥쳐와도 끝까지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고 살도록 말입니다. 그것이 로마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또 믿음의 초보 수준에 있는 히브리계 유대인들이 취할 믿음의 자세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뒤로 물러서지 말고, 무엇 때문에 인내하는 경주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까? 히브리서 11장은 그런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믿음’으로 밝혀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1절)라고 말이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기 할 수도 없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있어야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오히려 인내하는 경주자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선진들 곧 믿음의 삶을 산 인물들에 대해 차례로 증언해주었죠. 먼저 ‘아벨’, ‘에녹’, ‘노아’, 그리고 ‘아브라함’을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그 세대의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오직 믿음의 삶을 산 인물들이라고 했죠. 오직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모든 만물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았다고 말입니다.
물론 아벨도, 에녹도, 노아도, 그리고 아브라함도 연약한 인간이죠. 죄의 유혹과 시련의 아픔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사랑으로 그들을 감싸주셨기에 그들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죠. 우리도 그들처럼, 아니 그들보다도 더 연약한 죄인이요 인간 아닙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죄인인 나, 그런 연약한 나를 더 큰 당신의 사랑으로, 한없는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믿음의 경주로 삼아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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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래전 신영복 교수의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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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도 계속해서 믿음의 선진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어제 살펴본 아브라함을 계속 예로 들어줍니다. 본문 17-19절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의 어떤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이삭을 드린 믿음입니다. 당시 17살인 이삭은 자기 판단과 고집이 있었죠. 그런데도 순순히 아브라함에게 잡히고, 또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왜죠? 창세기 22장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함께 한 종들에게 이삭을 번제단으로 데리고 가면서 이야기하죠.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무얼 말합니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쳐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이루실 언약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설령 죽이신다 해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을 것” 곧 다시 살려줄 걸 믿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이삭, 야곱, 요셉에 관한 믿음을 언급합니다. 본문 20-22절입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무얼 말합니까? 믿음으로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했고, 믿음으로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했다는 것이죠. 특별히 요셉은 자신의 뼈를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왜죠? 영적으로 그 땅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땅이기 때문이죠. 근본적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가야 할 곳 곧 본향을 말하는 것이죠. 결국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그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 안착하는 미래의 현실을 지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23-31절에서는 모세부터 기생 라합까지, 그들에게 있었던 믿음에 관해 소개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을 따라 ‘장차 있을 일’을 믿고 나아갔듯이, 모세도 그런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부모는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에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주일날 말씀드린 내용과 일맥상통하죠.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하는 말씀 말입니다. 사람은 외모 곧 그가 지닌 역량에 초점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 속에 부여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지를 눈여겨보신다는 뜻이었죠. 만약 모세의 부모가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치 않고 바로의 역량과 힘만을 바라봤다면 결코 모세를 숨기지 않고 죽였겠죠. 하지만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믿음을 지녔던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에 순종할 수 있도록 모세의 부모의 마음을 붙잡고 계셨던 것이죠. 그래서 모세도 그 믿음의 본을 따라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다”(25절)고 밝혀주는 것이죠. 그런 믿음 속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떠났고, 홍해를 건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수아와 함께 7일간 여리고 성읍을 믿음으로 돌았고, 기생 라합도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받아줬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게 사람이 보는 외모나 역랑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철저히 순종하는 믿음을 불어넣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전자책]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 : 알라딘
역대기서가 무너진 유다의 재건 곧 패망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꾸는 설계도와 같다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재건하는 건축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페르시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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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울은 32절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는 사사시대의 인물들입니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1천년의 역사 가운데 300년 암흑기라고 했죠. 그때에 하나님이 왕으로 계셨지만 자기들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여 죄를 짓고 살았죠. 그 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는데, 이방 세력들의 압제가 그것이었죠. 그런데 그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사용했고, 12명의 사사를 들어 사용했는데, 특별히 본문은 네 명만 언급합니다.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을 물리쳤고, 바락은 가나안 왕 야빈을, 입다는 암몬을, 삼손은 블레셋을 물리친 하나님의 사사였죠. 그리고 다윗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두 번째 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사울을 왕에서 폐했으니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삼게 했습니다. 그 사울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다윗의 영향력이 커지는 모습이 사무엘상 16-31장까지, 그리고 사무엘하 전반에 걸쳐 다윗이 왕으로 통치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죠.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사무엘 선지자 외에도 다른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하고 말하죠. 왜죠? 그만큼 바울이 처형당할 시간이 임박해오고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33-40절을 통해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때로는 사자의 입을 향해 나아가고, 불의 세력을 멸하고자 하고, 어떤 이들은 결박과 옥에 갇히기도 했는데, 그것이 다 믿음의 증거를 지닌 모습이지 않더냐, 하는 것이죠. 그만큼 믿음의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봤기에 어떤 고난과 핍박도 견디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갔다는 뜻이죠.. 그러니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여, 당신들도 믿음의 선진들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하는 뜻입니다.
[전자책] 하나님의 시간표 : 알라딘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설교 말씀을 통해 나눈 예화다. 예화는 설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말씀의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간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화는 설교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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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성령님의 음성도 분명해지죠. 어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나라를 바라보며 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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